동물병원 통합의료시스템 개발 ‘인투씨엔에스’… 야생동물 구조대원의 헌신에 감명 허대표, 통합의료시스템 개발 매진… 진료-경영-고객관리 등 망라 국내 동물병원 10곳중 6곳 도입… 야생동물 위한 시스템도 개발 “15년간 1000만 개체 진료 데이터 맞춤 사료-용품 추천까지 계획”
동물병원 ERP 시장을 개척하다시피 한 인투씨엔에스는 특허가 많다. 허성호 대표이사가 동물의약품 처방 용량과 비용을 자동 계산하는 시스템 등 특허 8건을 설명하고 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2011년 8월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로 너구리 한 마리가 구조돼 왔다. 덫에 걸려 다리가 썩어가는 채였다. 너구리의 고약한 체취에 살이 썩는 냄새까지 더해져 당시 현장에 있던 허성호 인투씨엔에스 대표이사(49)는 코를 막고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구조센터의 수의사와 야생동물재활사는 싫은 표정 하나 없이 징그러운 구더기들을 일일이 떼어내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너구리 다리를 깔끔하게 수술해줬다.
그날 저녁, 오랜 치료를 끝낸 고라니를 놓아주는 과정도 허 대표는 지켜봤다. 고라니를 차에 태우고는 최대한 깊은 숲속까지 두어 시간 이상 산속을 달렸다. 주위는 어두워져 헤드라이트까지 켜야 했다. 늦은 시간 깊은 산속까지 들어가 고라니를 놓아주는 그들의 얼굴에 피로감이나 지친 모습은 없었다. 오히려 방생 직후 그들 얼굴에는 뿌듯함과 기쁨이 가득했다. 허 대표는 그 표정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산을 나오면서, 월급을 더 받는 것도 아닌데 정성을 들이는 이유를 물었더니 “지구는 사람만 사는 곳이 아니다”란 답이 돌아왔다. 센터의 수의사는 웃으며 가볍게 말했지만 허 대표에겐 결코 가볍게 느껴지지 않았다. 동물병원 운영에 필요한 통합의료관리 시스템을 만들고 있던 허 대표에게 그날은 밥벌이로만 하던 일에 사명감이 스며든 날이었다.
○ 동물병원 통합의료관리 시스템 1위 회사
동물병원에서 한 수의사가 시스템에 전송된 영상을 보며 보호자에게 질병을 설명하고 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동물병원의 의료기기들은 사람을 환자로 받는 동네 의원보다 관리 소프트웨어(SW)와 연동이 더 많이 되는 편이다. 예컨대, 동물 혈액을 채취해 분석기기에 넣으면 자동으로 필요한 성분을 분석하고 전자차트에 올리는 식이다. 동물병원 중에는 수의사 혼자 운영하는 곳이 적지 않아 임상장비들의 작동이 끝나면 결과 값을 사람의 손을 빌리지 않고 전자차트에 기록될 수 있도록 인투씨엔에스가 더욱 신경을 썼기 때문이다.
반려동물 놀이터나 호텔 등에서 반려동물의 접종증명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이를 위해 인투씨엔에스는 반려동물의 접종내역과 예약, 방문내역을 보호자가 앱으로 볼 수 있도록 해주는 동물수첩 애플리케이션 ‘인투펫(IntoPet)’도 개발했다. 반려동물이 크게 다쳤거나 큰 병에 걸렸을 때는 동물병원 간 협업이 필요한데, 1·2차 동물병원 간에 협진이 가능토록 해주는 기능도 통합의료관리 시스템에 담았다.
○수익 생각 않고 만든 야생동물 의료관리 시스템
개와 고양이가 주를 이루는 동물병원과 달리 야생동물을 보호해야 하는 기관은 다루는 동물의 종류가 훨씬 더 많다. 야생동물구조관리센터 같은 경우 야생동물의 주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어서 개체 구분을 하는 것도 여느 동물병원 프로그램과 달라야 한다.허 대표가 2011년 8월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에 있었던 것은 그해 초 그 센터에서 야생동물을 위한 통합의료관리 시스템을 만들어 달라고 의뢰해서였다. 2007년 창업 이후 동물을 아끼는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차마 그 부탁을 거절할 수 없어 어려운 일을 맡은 터였다. 특수기관에서 의뢰해온 SW는 공들여 프로그램을 만들어도 그 제한된 용도 때문에 다른 곳에서 사갈 가능성은 거의 없다. 센터의 제작 예산이 넉넉한 것도 아니었다. 허 대표는 “돈을 생각했다면 절대 하지 못했을 일”이라고 했다.
이런 행보 덕분에 지금은 국립생태원, 종복원기술원, 야생동물구조관리센터, 동물원, 아쿠아리움 등 다양한 동물보호기관에서 인투씨엔에스의 시스템을 이용한다.
인투씨엔에스의 기술 덕분에 야생동물도 한 번 치료를 받은 개체는 다음에 구조됐을 때 병력(病歷)을 추적할 수 있어 더 빠른 치료가 가능해졌다. 수의사라도 모든 동물의 모든 질병에 대한 치료 방법을 아는 것은 아닌데, 시스템 덕분에 특정 종의 특정 질병에 대한 치료 방식을 선후배들과 공유하기도 쉬워졌다.
○오랜 인내 끝에 이제야 반려동물 산업 각광
아주대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하고 프로그래머로서 할 수 있는 일을 찾던 허 대표는 2001년 지인과 함께 창업했다. 아이템을 찾던 중 지인을 통해 수의사를 소개받고, 동물병원에 제대로 된 EMR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어려서부터 동물을 좋아하긴 했지만 수의사라는 직업에 대해서도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래도 도전을 택한 건 당시 아무도 진출하지 않은 영역이라 할 일이 많아 보였기 때문이다.반려동물 산업은 최근에야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반려동물이나 동물병원,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에 대한 통계도 제각각인 실정이다. 15년 이상 반려동물 진료 데이터를 모은 인투씨엔에스는 전국에 반려동물은 1200만 마리가 있고,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은 800만 명이 있는 것으로 추산한다.
○“반려동물 생애 주기별 질병 예측”
올해 6월에는 반려견 모발로 건강 상태를 분석하는 회사(헤어벳)를 인수해 인투바이오로 사명을 바꿨다. 이 데이터들도 개발 중인 AI에 활용할 예정이다. 올해 안에 반려견의 심장 상태를 24시간 모니터링할 수 있는 웨어러블 기기도 내놓는다. 수의사들이 진찰하지 못하는 기간의 데이터를 수집하기 위해서다.
허 대표는 “소프트웨어 개발 회사에서 반려동물 진료 빅데이터와 AI를 활용한 반려동물 산업 플랫폼 기업으로 도약할 것”이라고 했다.
용인=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