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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키아 작품 1141억 낙찰, 경매사는 어떤 기분이었을까?[영감 한 스푼]

입력 | 2022-08-27 11:00:00

필립스 옥션 프라이빗 세일즈 디렉터
헨리 하일리 인터뷰




헨리 하일리. 사진:필립스 제공. Haydon Perrior for Thomas de Cruz Media

올해 한국, 어쩌면 아시아 미술 시장의 가장 큰 관심사일 ‘프리즈 서울’ 아트페어 개막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큰 아트페어가 열리면, 페어 자체도 큰 행사이지만 이것을 계기로 많은 미술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서울에 몰려들면서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만들어질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 뉴스레터도 미술시장에 관한 이야기를 준비해봤는데요. 프리즈 서울 기간에 맞춰 한국에서 전시를 여는 글로벌 경매사 ‘필립스’의 주요 경매를 책임지고 있는 경매사이자, 프라이빗 세일즈 디렉터인 헨리 하일리를 인터뷰로 미리 만났습니다.

영국에서 미술사를 공부하고, 2008년 필립스에서 일을 시작한 하일리는 파블로 피카소의 ‘La Dormeuse’가 5780만 달러(약 776억 원)에 낙찰된 2018년 3월 런던 경매는 물론, 최근 장 미셸 바스키아의 ‘무제’(악마)가 필립스의 경매가 최고 기록인 8500만 달러(약 1141억 원)를 세운 5월 뉴욕 경매에도 망치(경매봉)를 잡고 있었습니다. 경매사로서 그런 순간을 겪으면 어떤 느낌이 드는지부터, 그가 보는 미술 시장의 전망에 대한 이야기까지 들어봤습니다.


1141억 바스키아 작품 경매사, 런던 활동 작가 작품 들고 서울에 오다1. 필립스는 일본의 컬렉터 마에사와 유사쿠가 소장하고 있는 장 미셸 바스키아의 작품 ‘무제’의 2022년 5월 경매를 위해 1년 여의 과정을 거쳤다.

2. 경매봉이 ‘쾅’하고 내리치며 낙찰되는 순간을 위해 세일즈 담당자부터 카탈로그 편집자, 수장고 관리자까지 수많은 사람이 협업을 한다. 그리고 마지막 퍼포먼스는 경매사의 몫이다.

3. 팬데믹 이후 미술시장 수요가 폭발했지만 여전히 경제적 불확실성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하일리는 올해 10월 런던 경매가 테스트 마켓이 될 것이라고 봤다.

아버지가 선물한 경매봉을 항상 가지고 다니는 경매사

필립스 경매를 진행하고 있는 헨리 하일리. 사진: Thomas De Cruz Media Haydon Perrior

김민(김): 5월 장 미셸 바스키아의 1982년 작품 ‘무제’(악마) 경매 얘기를 안할 수가 없습니다. 당시에 어땠나요?

헨리 하일리(하): 모든 경매는 진행 전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들여 준비를 합니다. (이 준비 과정에는 경매를 하기 전 전시를 구성하는 것부터, 카탈로그를 만들고 또 잠재적인 구매자와 협의하는 과정 등 여러 물밑 작업이 있다.) 보통은 6개월을 준비한다면, 바스키아는 1년 여의 기간이 있었죠. 오랫동안 준비했기에 더 설레고, 결국 필립스 경매 역사상 가장 높은 가격을 기록한 작품이 됐습니다.

김: 경매 당일엔 어떤 기분이었나요?

하: 정말 긴장되었지만, 무척 흥분되는 날이기도 했습니다. 이 때 경매가 현장에 가득찬 사람들을 보는 것이 오랜만이었거든요.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는 대부분 스크린과 카메라만을 쳐다보며 경매를 했엇죠.

김: 현장 분위기도 달랐겠네요.

하: 멋졌습니다. 이렇게 큰 작품이 경매에 오르면 수많은 감정들이 교차하거든요. 많은 분들이 함께 고생하기도 했고. 내가 마지막 경매봉을 내려친다는 게 행운이라고 생각했어요.

김: 2018년 피카소 작품 경매는 어땠나요?

하: 젊은 경매사로서 정말 흥분되는 일이었어요. 필립스는 원래 동시대 미술 작품을 다루는 것으로 유명하고, 지금도 그 명성을 이어가고 있죠. 당시 근대 작품을 다루기 시작한 초기였기 때문에 필립스에도 의미가 있었습니다.

김: 중요한 경매를 여러 번 진행했는데, 자기만의 준비하는 방식이 있나요?

하: 10년 넘게 경매를 해왔는데, 비교적 어린 나이에 경매사가 된 것이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준비는… 경매마다 다른 방식이 있어요. 저의 경매 준비를 도와주는 트레이너가 있고, 그녀와 함께 사전 준비는 물론 경매가 끝난 뒤 제 퍼포먼스를 하나하나 분석하는 시간도 가집니다. 때로는 그녀가 저의 인생 코치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2022년 5월 경매에서 아시아의 익명 컬렉터에게 낙찰된 장 미셸 바스키아의 ‘무제’(1982)

김: 혹시 경매봉을 따로 갖고 다니나요?

하: 네. 아버지가 저에게 주신 아주 소박한 나무로 만든 경매봉을 갖고 다닙니다. 행운의 상징처럼 어딜 가든 항상 가져가죠.

김: 아버지가 선물로 주셨다구요?

하: 맞아요. 저희 부모님이 저의 가장 큰 팬이에요. 특히 아버지는 제가 하는 모든 경매의 매분 매초를 꼼꼼히 모니터하세요. 경매봉도 아버지가 주신 건데, 지금은 수많은 상처가 나있어요.

김: 혹시 케이스도 따로 있나요?

하: 아니요. 듣고보니 특별한 케이스를 하나 장만해야겠어요. 아주 소박한 경매봉이라서 그냥 가방에 넣고 다녀요. 비록 케이스는 없지만 정말 소중히 다루고 있어요. 잃어버리면 엄청난 충격에 빠질 것 같거든요. 저와 함께 전 세계를 여행했거든요. 일반적인 경매는 물론 기부 경매를 하러 중동이나 몬테네그로에도 가고, 도쿄 뉴욕과 유럽 전역을 돌아다녔죠.

김: 바스키아 작품도 그 경매봉으로 내려쳤겠군요?

하: 맞아요.

런던에 있는 하일리와 줌으로 진행된 인터뷰. 그는 프리즈 기간 전시를 열기 위해 서울에 온다.



경매봉 내려치기까지, 준비와 순발력 사이
김: 준비 과정에 대해 이야기해주셨는데, 경매를 보면 이게 궁금했어요. 치밀한 준비와 순발력, 둘 중에 뭐가 더 중요한가요?

하: 오, 그거 좋은 질문이에요. 왜냐면… 정말 둘 다 중요하거든요. 저는 보통 경매 전날 저 혼자 혹은 코치와 함께 치밀하게 연습을 해요. 모든 출품작을 하나하나 검토하죠. 그래야 ‘준비가 됐다’는 마음이 들거든요. 심리적인 것 같긴 해요.

그런데 현장의 반응을 보는 순발력도 정말 중요하고 이건 준비할 수가 없는 부분이에요. 모든 경매에는 예상하지 못한 장애물과 난관이 있어요. 그래서 경매가 다 다르죠. 그래서 현장을 빨리 파악하고는 눈치와 결단력이 있어야 해요. 경매사를 그냥 보면 아주 쉽게 일을 하는 것 같지만, 동종업계 사람으로서 볼 때는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지가 보인답니다.

이를테면 가격을 살짝 올린 제안을 받아들일 건지, 어떤 것은 거절할 건지, 또 그 뒤에 다시 그 제안으로 돌아갈 것인지, 혹은 좀 더 가격을 높여 부르도록 압박을 할 것인지를 순간순간 판단해야해요. 특히 압박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어서 판단하기가 어렵죠. 그런데 또 압박을 하면 비드가 나오기도 하니 여기서 엄청난 차이가 생겨나요.

게다가 전화로 응찰하는 고객도 있죠. 그럴 때도 여러 가지를 감안해야 해요. 예를 들면 홍콩에서 오는 반응과 뉴욕에서 오는 반응의 속도차가 있거든요. 마지막으로 현장에 있는 사람들의 보디 랭귀지도 봐야해요. 몸짓만 보고 이 사람이 아직 관심이 있는지, 혹은 흥미가 떨어졌는지를 파악해야 해요. 그걸 토대로 결정을 내리는 건 배짱도 있어야 하는 거구요.

김: 엄청난 집중력이 필요하겠어요.

하: 맞아요. 경매를 진행할 때는 모르지만 내려오고나면 극도의 피로가 몰려와요. 엄청나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던 거죠.

다나 슈츠, Untitled Sculpture, 2001, 캔버스에 유채, 121 x 97.5cm. 사진 필립스 제공

김: 개인적으로 컬렉팅도 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선호하는 작가나 작품이 있나요?

하: 저는 도자기와 회화 작품을 좋아하는데. 제 컬렉션을 다 공개할 순 없지만 이번에 함께 전시를 여는 영국 갤러리 ‘아티스트룸’의 프로그램을 좋아해요.

창립자 마일로 아스테어가 소개하는 예술가들도 흥미로워요. 최근 제가 작품을 소장한 영국 작가 포피 존스(Poppy Jones)도 마일로가 소개한 아티스트에요.

아티스트룸은 비교적 젊은 갤러리이고, 함께 준비한 전시도 런던 젊은 작가들의 활기찬 현장을 보여줄 거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영국왕립예술학교(RCA)와 슬레이드예술학교를 중심으로, 이곳의 흥미로운 여성 작가들이 많거든요. 런던의 지금 미술 현장이 무척 흥미롭고 이런 부분을 한국에도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김: 전시의 제목이 ‘신 낭만주의자들’(New Romantics)이죠. 제목은 어떻게 붙여졌나요?

하: 지금 런던의 젊은 작가들에게서 18세기 낭만주의의 흔적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낭만주의가 전통을 깨고 나와서 상상에 더 집중하고, 자연과 풍경으로 돌아가거나, 개인적인 표현을 강조했다는 차원에서요. 지금 젊은 작가들이 이러한 경향을 갖고 있다고 봤습니다.

김: 그렇다면 윌리엄 터너나 존 컨스타블 같은 작가와 연관이 있다고 봐도 될까요?

하: 맞아요. 즉각적인 느낌을 살린 풍경이나, 초상화도 마찬가지죠. 여기에 더해서 시각예술뿐 아니라 음악과 문학으로도 확장된 낭만주의 정신도 관련이 있어요. 이번에 소개하는 작가들이 실제로도 서로 친하고 좋은 친구들이거든요. 함께 하려는 마음을 갖고 있어요.

김: 이번 전시가 런던의 젊은 예술 현장 일부를 볼 수 있다고 이해하면 되겠군요.

하: 정확해요. 몇 년 전 헤이워드 갤러리에서 열렸던 전시 ‘Mixing it Up: Painting Today’를 참고하셔도 좋을 거에요. 다만 ‘영국인’ 작가가 아니라 런던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국적의 작가들이 참여했습니다. 홍콩에서 온 작가도 있고, 중국 본토 출신 작가도 있어요.


헤르난 바스, Hide Out, 2009년, 패널 위 린넨에 아크릴, 213.4 x 182.9cm


젊은 작가 선호하는 젊은 컬렉터 두드러지는 한국 시장
김: 지금의 미술 시장을 어떻게 보고 있나요? 팬데믹 직후에는 미술 시장이 급격히 팽창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이게 계속될까요? 아니면 경제 상황이 불확실하니 컬렉터들이 더 신중해야 할까요?

하: 팬데믹 직후에는 시장이 빠르게 정상화되고 심지어 폭발하는 양상을 보여서 저희도 놀랐어요. 필립스뿐 아니라 모든 경매사들이 역대 최고가 기록을 최근에 세웠고요. 필립스는 작년에 12억 달러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팬데믹이 시장에 예측하기 어려운 변화를 준 것은 맞아요. 다만 미술 시장이 또 얼마나 역동적이고, 빠른 시간에 변할 수 있는지도 보여주었죠.

미술 시장 팽창에서도 더욱 흥미로웠던 것은 젊은층의 움직임이에요. 최근 20년 동안 활발히 활동하는 젊은 작가들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쏟아졌습니다. 저는 이게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 미디어의 역할이 컸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글로벌 경제가 불확실하죠. 팬데믹 상황에는 놀라면서도 기뻤지만, 이제는 상황이 어떤지 파악하려고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에요. 다만 아직까지 시장에 조정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 것 같아요. 지금으로서는 10월 런던 경매가 그런 움직임을 실험해보는 ‘테스트 마켓’이 될 것 같습니다.

김: 혹시 한국의 ‘아트페어 오픈런’에 대해 들어보셨나요?

하: 네. 한국 시장의 성장이 놀라워요. 지난해 필립스에서도 한국 컬렉터의 경매가 258% 성장했어요. 저희가 이번에 한국에서 전시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물론 유럽과 미국에서도 수요가 폭발하면서 ‘대기 리스트’가 넘쳐나는 상황은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젊은 작가들의 작품이 더 빨리 경매 시장으로 오는 경향도 있어요.


헨리 하일리의 경매 장면. 사진: Haydon Perrior for Thomas Cruz Media

김: 아시아 미술 시장의 특징은 뭐라고 보시나요?

하: 아시아에는 동시대 미술에 관심을 가진 밀레니얼 컬렉터가 많다고 생각해요. 3040 컬렉터가 같은 세대 작가를 응원하는 경향이 있고, 심지어 20대도 있고요.

김: 아시아만의 특징인가요?

하: 물론 다른 지역에서도 그런 현상은 있습니다. 글로벌한 현상인데, 아시아에서 특히 두드러진다고 말하는 게 정확할 것 같아요.

김: 마지막으로 NFT 예술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하: 저는 전문가는 아니지만, 새로운 매체가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준 것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어요. 일부 작품은 장기적으로 버틸 여지도 있다고 보고. 그런 것들이 크립토 마켓의 양상에 달려있기도 해서. 중장기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전시 정보
신(新)낭만주의자들-New Romantics
캐서린 번하드, 이시 우드, 헤르난 바스, 애니 모리스, 다나 슈츠 등 23명
2022.8.31 ~ 2022.9.6
이유진갤러리
필립스·아티스트룸 기획



※‘영감 한 스푼’은 국내 미술관 전시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아래 링크로 구독 신청을 하시면 매주 금요일 아침 7시에 뉴스레터를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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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