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 교훈 ‘제공권’ 중요성… NGJ로 北 방공망 무력화 가능
미 해군 주도로 개발 중인 ‘차세대 전자전체계(NGJ)’ 개념도. [사진 제공 · 미 해군]
소련군 후신인 러시아군도 지상군 맹종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에 1990년대 이후 졸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현재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개전 6개월 만에 공수(攻守)가 바뀐 형국이다.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군이 점령한 자국 영토 헤르손과 자포리자 등 남부전선을 주전장(主戰場)으로 정하고 엄청난 화력 공세를 퍼붓고 있다.
러시아 후방까지 타격하는 우크라이나군
미군의 현용 전자전기(電子戰機) EA-18G 그라울러. [뉴시스]
우크라이나는 특수부대 전력부터 드론, 전투기, 로켓, 탄도미사일까지 가용한 모든 자산을 총동원하고 있다. 크림반도와 러시아 본토의 원거리 표적을 미국이 제공한 것으로 보이는 에이타킴스(ATACMS) 전술탄도미사일이나 자국산 흐림(Hrim)-2 미사일, Tu-141 무인정찰기를 개조한 자폭형 무인기, 특수부대로 타격하는 식이다. 헤르손과 자포리자, 돈바스 전선과 같이 비교적 가까운 곳의 러시아군은 M141 ‘하이마스(HIMARS)’와 M270 다연장 로켓포(MLRS)에서 발사되는 장거리 유도로켓 유도형 다연장 로켓포(GMLRS), 전술 항공기인 MIG-29와 Su-24, Su-25 등을 투입해 공격하고 있다. 특수부대를 제외하면 모두 하늘에서 날아오는, 다시 말해 레이더로 포착 가능한 무기들이 러시아군 전략시설을 연일 강타하는 셈이다. 그럼에도 세계 최강으로 선전된 러시아군 방공무기들은 이렇다 할 활약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러시아군 방공시스템은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다.
앞서 지적한 것처럼 러시아군은 옛 소련군처럼 철저히 지상군 중심의 교리를 따른다. 소련군은 군종(軍種)에 서열을 두고 전투지휘권과 진급 우선권, 예산 배정에 차등을 뒀다. 서열 1위는 전략로켓군, 2위는 육군, 3위는 방공군, 4위는 공군, 5위가 해군이었다. 이런 서열에 따라 항공 작전도 육군이 주도했다. 서방 국가에선 공군이 항공 작전을 전담하는 게 상식이지만, 소련은 육군이 다층 방공전력을 갖추고 이를 방공군이 보조하는 형태의 교리를 택했다. 이에 따라 소련 육군은 소구경 기관포부터 미사일에 이르기까지 제대별 방공무기를 개발했다. 유효 사거리와 고도별로 다층방공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다. 가령 근거리 표적은 14.5㎜ 중기관총과 23·37·57㎜ 기관포가 맡고 보병 휴대용 지대공미사일, 차량·장갑차 탑재 지대공미사일이 겹겹이 방공망을 구축해 기동부대를 따라다니는 식이었다.
‘퉁구스카’ 등 구형 방공체계가 러시아 주력
러시아군의 ‘판치르-S1’ 복합 방공체계. [위키피디아]
러시아는 객관적으로 우크라이나를 압도하는 공군력을 보유하고 있다. 그럼에도 현재 전장의 제공권은 우크라이나가 장악하고 있다. 러시아군의 주요 방공자산은 대부분 파괴됐고 생존한 일부 전력도 레이더를 끈 채 숨어 다니기에 급급한 실정이다. 7월 초 우크라이나군은 하이마스와 GMLRS 전력을 조합해 러시아 방공자산을 파괴했다. 7월 하순부터는 MIG-29 전투기에 장착된 미국산 대(對)레이더 미사일(ARM)인 AGM-88 ‘고속 대방사 미사일(HARM)’로 러시아군을 제압하고 나섰다. HARM은 전파 방사원(放射原)을 추적해 레이더를 파괴하는 무기다.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러시아군 레이더는 켜는 족족 파괴되고 있다.
HARM의 사거리는 90㎞에 불과하기에 러시아군이 사거리 150~400㎞인 S-300·S-400 방공시스템으로 쉽게 제압할 수 있을 듯했다. 문제는 방공시스템의 레이더를 24시간 내내 가동할 순 없다는 점이다. 게다가 미군 위성과 정찰기가 러시아 방공시스템의 운용 상황을 실시간 감시하고 있다. 러시아군에 방공자산이 분명 존재하는데 제 역할을 못 하고 숨기 급급한 상황인 것이다. 결국 침공군인 러시아군이 전장 각지에서 우크라이나 전투기와 헬기의 공습에 시달리는 ‘공수 역전’이 벌어졌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한국이 새겨야 할 전훈(戰訓)은 제공권 장악의 중요성이다. 북한과 중국은 옛 소련군 교리를 모방하면서도 더 촘촘한 방공망을 운용하고 있다. 그렇기에 한국군은 강력한 방공망 제압 능력을 갖추는 데 많은 관심을 갖고 투자해야 한다. 당장 미군만 하더라도 방공망 제압 능력을 높이고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걸프전 이후 미군이 수행한 군사작전은 대부분 적 방공망을 제압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美 전자전기로 일방적 공세 가능
러시아 서부 벨고로드주의 석유 저장시설이 4월 1일(현지 시간) 우크라이나군 헬기의 공격으로 불타고 있다. [뉴시스]
미군은 이 시스템과 연동해서 사용하고자 ‘사거리 연장형 차세대 대레이더 미사일(AARGM-ER)’도 개발했다. 사거리가 기존 HARM의 3배가 넘는 300㎞에 달하고 스텔스 설계로 적 방공시스템에 탐지되지도 않는다. 현재 이들 시스템 개발은 미 해군이 주도하고 있다. 미 의회는 지난해 7월 F-15EX 등 전투기 플랫폼에도 NGJ와 AARGM-ER 패키지를 통합할 수 있도록 준비하라며 공군에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미 공군은 아직 F-15EX에서 NGJ를 운용할지 여부를 결정하지 않았다. 이미 F-15EX에 ‘이글 수동·능동형 경고 및 생존체계(EPAWSS)’라는 강력한 자체 방어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 굳이 추가 비용을 들이면서까지 NGJ를 탑재할 필요성을 못 느끼기 때문이다. 다만 수세적 방어 장비인 EPAWSS와 달리 NGJ는 공격적인 장비로 용도가 다르다. 의회의 압박도 상당해서 미 공군이 NGJ를 완전히 외면할 순 없는 상황이다.
NGJ로 서해상 北·中 전력 교란 가능
미 공군 F-15EX에 NGJ 시스템 통합이 결정되면 한국 공군도 F-15K 성능 개량 과정에서 NGJ 도입을 추진해야 한다. F-15K에서 NGJ를 운용하면 북한 전역은 물론, 서해 상공이 대부분 교란 가능 범위에 들어간다. 북한이나 중국군 전투기와 레이더, 군함이 NGJ 사거리에서 적대적 행동을 취하는 순간 눈이 멀고 한국군의 일방적 공격 대상이 된다는 뜻이다. F-15K의 NGJ는 그 어떤 무기보다 강력한 전략적 억제력을 제공할 것이다.
물론 NGJ는 전략자산이기에 한국군 도입이 쉽지 않겠지만 최근 국제 정세를 보면 희망은 있다. 미국은 호주에 EA-18G를 판매하고 핵잠수함까지 제공하겠다며 오커스(AUKUS) 레짐을 출범한 바 있다. 한국도 한미동맹을 격상하는 한편,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대한 기여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최근 호주와 필리핀의 정권교체로 느슨해진 반중(反中) 동맹 보완 필요성을 미국에 어필한다면 NGJ 도입도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특히 NGJ를 도입하기로 한 호주가 미국의 반중 동맹에서 점점 뒷걸음질치고 있는 상황은 한국에 좋은 기회다. 정부와 군 당국은 미국의 NGJ 전력화 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 새로운 ‘게임 체인저’를 손에 넣을 수 있도록 매진해야 한다.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
<이 기사는 주간동아 1354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