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성남시 분당구 아파트 단지 모습. [동아DB]
2000년대 중후반까지 경기 분당과 일산 신도시를 거론할 때면 관용구처럼 쓰이던 표현이다. 그만큼 분당과 일산은 주거환경이 좋았고 부동산시장에 미치는 영향도 서울 강남을 위협했다. 하지만 그 후 분당과 일산은 시중의 관심에서 조금씩 멀어져갔다. 지은 지 20년이 넘어가면서 노후 아파트라는 이미지가 부각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다 최근 다시 1기 신도시가 주목받고 있다. 1기 신도시는 분당과 일산, 중동, 평촌, 산본 등 5곳이다. 이번에는 재건축 가능성을 둘러싼 논란이다. 불을 붙인 것은 정부가 8월 16일 발표한 주택 270만 채 공급을 핵심으로 한 ‘8·16대책’이다. 시중에서는 1기 신도시 재건축을 포함한 구체적인 계획이 포함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정부는 “연구용역을 하반기에 하고, 2024년 중 재정비 마스터플랜 수립을 추진한다”고 짤막하게 언급하는 것으로 정리했다.
신도시 주민 반발에 화들짝 놀란 정부
이에 신도시 주민들의 반발이 폭발했다. 이들은 “대선 과정,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당선 후 국정과제 등을 통해 (현 정부가) 시종일관 연내 마스터플랜 수립과 특별법 제정을 약속해놓고선 뻔뻔스럽게 달랑 몇 줄로 2024년으로 연기한다고 발표한 건 1기 신도시 주민을 우습게 본 결과”라며 불만을 감추지 않았다. 여기에 8월 19일 더불어민주당 소속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정부가 2024년에나 마스터플랜을 수립하겠다고 밝힌 것은 2기 및 3기 신도시에 비해 상당히 후순위로 미룬 것으로 사실상 공약 파기”라며 거들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정부는 즉각 대응에 나섰다. 최상목 대통령경제수석과 한덕수 국무총리가 8월 19일 잇따라 “공약과 대통령의 약속대로 최대한 빠른 속도로 1기 신도시 재정비가 이뤄질 수 있도록 총력을 기울이겠다”며 진화를 시도했다. 이어 윤석열 대통령은 22일 국무회의에서 “정부가 (1기 신도시 관련 내용을 포함한) 주택 정책을 발표했지만 국민에게 전달하는 과정에서 신뢰를 얻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고 질책했다.
8월 23일에는 신도시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국토부)의 원희룡 장관이 다시 등판해 “1기 신도시 재정비를 위한 마스터플랜 일정을 최대한 앞당기겠다”며 진화에 나섰다. 장관 취임 100일을 맞아 진행한 이날 출입기자단과 간담회에서 원 장관은 “지난번 대책(8·16대책)에서 신도시에 대한 구체적인 소개가 적었고, 1기 신도시 주민들이 기대하고 궁금해하던 부분들에 부족함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당장 9월 중 마스터플랜 연구용역을 발주하고, 5개 신도시별로 전담 마스터플래너(MP·총괄기획자)를 지정하겠다”고 덧붙였다. 또 “단 하루도 우리(국토부)로 인해 사업 추진이 지체되는 일이 없도록 장관직을 걸고 말씀드린다”고 거듭 강조했다.
하지만 분당 주민들은 “마스터플랜 수립을 내년 상반기까지 마무리해달라”며 정부를 향한 압박의 고삐를 풀지 않고 있어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일련의 과정에서 확인됐듯이, 1기 신도시 재정비 문제는 윤석열 정부를 지속적으로 괴롭히는 ‘뜨거운 감자’가 될 공산이 크다. 표만 의식해 정치적으로 단순하게 접근해서는 안 되는 이유도 여기 있다.
이 논문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1기 신도시 아파트는 36만5000채. 이 가운데 재건축 대상으로 여겨지는 준공 후 30년 넘은 아파트는 4.0%에 해당하는 1만4454채, 25년 이상~30년 미만 아파트는 66.5%인 24만3154채다.
문제는 올해부터 준공된 지 30년을 넘어서는 아파트가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연말이면 16.7%(6만1000채)로 두 자릿수가 되고, 내년에는 33.4%(12만2000채)로 2배가량 늘어난다. 이어 2024년이면 52.8%(19만3000채)로 전체의 절반을 넘어서고, 2026년에는 70.4%(25만7000채) 수준까지 올라선다.
신도시 노후 아파트 빠른 속도로 증가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백마마을 1단지 아파트. [뉴스1]
지은 지 30년이 넘었다는 사실은 주택 시설 및 설비 노후화, 주차시설 등 주거환경 만족도 저하를 유발하고, 이는 아파트 수요 감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미 이런 우려는 현실화하고 있다. 논문에 따르면 지난해 9~10월 1기 신도시 내 아파트 소유자 54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거주 이유로 ‘직장과 근접’을 꼽은 응답자가 32.4%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양호한 교육환경’(17.0%), 잘 조성된 ‘도시공원과 녹지 환경’(13.7%) 순으로 높았다.
이런 분위기는 집값에도 영향을 미쳤다. 논문에 따르면, 한국부동산원 통계를 분석한 결과 분당의 공동주택 가격(2020년 기준)은 ㎡당 평균 1164만 원으로, 인접한 판교(1712만 원)의 68% 정도에 불과했다. 평촌은 756만 원으로 인접한 인덕원(972만4000원)의 78% 수준에 머물렀다.
게다가 1기 신도시의 경쟁력은 갈수록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3기 신도시가 위협적이다. 1기 신도시는 서울로부터 20~25㎞ 떨어져 있지만 3기는 서울과 거리가 10~20㎞로 절반 이하다. 또 수도권광역급행전철(GTX) 등이 신설되면 서울을 오가기도 쉽다. 논문은 이런 분석 결과를 토대로 “주택의 구조, 주차장 등 거주 시설, 공간 입지 등에서 새롭게 건설하는 3기 신도시로 노후화가 시작된 1기 신도시 거주자들이 이동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결국 정치적 이유를 떠나 1기 신도시 노후화에 대비한 재정비 방안 마련은 시급한 과제다. 그렇다면 지역주민들 요구대로 용적률을 대폭 높이는 방식으로 재건축을 허용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까. 전문가들 의견은 다르다. 따져야 할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선 1기 신도시가 재건축 사업성을 갖췄는지 여부다. 분당의 계획 인구가 39만 명, 일산은 27만6000명이다. 이 정도 대규모 도시를 재건축하는 데 드는 비용이 새로운 신도시 조성 비용보다 비쌀 수 있다는 반대 의견이 적잖다.
게다가 1기 신도시도 지역마다 재건축 추진에 따른 이해가 엇갈릴 수 있다. 일반적으로 재건축은 용적률이 180% 이하일 때 사업성이 있고, 200%를 넘어서면 사업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된다. 현재 제3종 일반주거지역의 재건축 허용 용적률이 250∼300% 이내로 제한돼 있기 때문이다.
용적률 완화 안 하면 사업성 낮아
문제는 1기 신도시의 평균 용적률이 일산(169%)을 제외하곤 모두 사업성 기준인 180%를 크게 웃돈다는 점이다. 분당(184%)은 그나마 경계선에 있고, 나머지 중동(226%), 산본(205%), 평촌(204%)은 모두 200%를 넘는다. 결국 용적률 측면에서만 보면 일산과 분당 정도만 재건축 사업성 요건을 갖춘 셈이다. 이런 이유로 지역주민들은 용적률 규제 완화를 요구하고 있다.
또 다른 문제도 있다. 중동, 평촌, 산본은 기존 시가지 주변에 신시가지 형태로 신도시를 조성하는 바람에 넓지 않은 부지에 고밀도로 개발됐다. 용적률을 높여 재건축을 추진하더라도 늘어나는 주거 시설에 맞는 생활 인프라를 추가로 설치할 용지 확보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반면 분당과 일산은 농지 등 빈터를 이용해 비교적 넉넉한 밀도로 도시를 조성했다. 상대적으로 추가 인프라 용지 확보가 쉽다.
1기 신도시마다, 또 아파트 단지별로 “우리부터 먼저 하겠다”면서 정치적인 힘겨루기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 재건축 시기를 둘러싼 이전투구가 빚어질 경우 상상하기 힘든 혼란 상황이 펼쳐질 수도 있다.
3기 신도시 역시 1기 신도시 추진에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대표적인 곳이 일산이다. 서울에서 더 가까운 곳에 자리한 창릉신도시 입지가 일산신도시보다 더 나은 것으로 평가된다. 안전진단 통과도 미지수다. 1기 신도시는 첫 신도시 건설이라 워낙 튼튼하게 지은 데다 바다모래 파동 이후 주기적으로 구조안전 보강이 이뤄졌다. 그 결과 현 안전진단 기준으로는 재건축 허가가 떨어질 개연성이 매우 낮다는 분석이 적잖다.
1기 신도시만 재정비할 경우 인접한 원도심과의 불균형 개발이 심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여기에 2050년까지 온실가스 순배출량을 ‘0’으로 만든다는 계획 하에 추진되는 탄소중립 정책도 걸림돌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2030년까지 폐기물을 2018년의 절반 수준으로 줄여야 한다. 하지만 대규모 재건축이나 리모델링이 추진되면 건설 폐기물이 대량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
재정비를 추진하면서 발생할 이주 대책도 쉽지 않은 문제다. 원 장관도 8월 23일 간담회 자리에서 “1기 신도시 30만 채는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구) 아파트와 똑같은 숫자”라며 “이주 대책 문제 등을 고려하지 않으면 전세 폭등과 함께 계획 전체가 차질을 빚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처럼 1기 신도시 재건축 문제는 까다롭고 복잡한 요소들로 뒤얽혀 있다. 섣불리 접근했다가는 본전도 못 찾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뜻이다. 정부가 ‘솔로몬의 지혜’를 발휘하길 기대해본다.
황재성 기자는…
동아일보 경제부장을 역임한 부동산 전문기자다. 30년간의 기자생활 중 20년을 부동산 및 국토교통 정책을 다루는 국토교통부를 취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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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재성 기자 jsonhng@donga.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1354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