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 고인돌 훼손, 왜 생겼나
경남 김해시 구산동 도시개발사업 과정에서 발견된 지석묘(위 사진). 올 7월 말 구산동 지석묘 정비 공사 현장은 매장 문화재가 묻혀 있는 지층 상당수가 굴착 공사로 인해 훼손됐다. 이한상 대전대 교수 제공
이소연 문화부 기자
《문화재를 둘러싼 안타까운 참변이 또다시 벌어졌다. 최근 훼손된 ‘세계 최대 규모 고인돌’ 경남 김해시 구산동 지석묘(고인돌) 얘기다.
2006년 땅속 10m 지점에서 발견된 구산동 고인돌은 윗돌 무게 350t, 길이 10m, 묘역 규모 1615m²로 세계 최대 규모의 고인돌로 평가받는다. 유적지에서 발굴된 토기는 기원전 1세기 사용된 것으로 가락국 건국 시기로 알려진 서기 42년보다 앞선다.
하지만 김해시는 2020년 6월부터 이달 초까지 정비 사업을 진행하다 유적지 문화층(특정 시대 문화 양상을 알려주는 지층)을 훼손한 사실이 드러났다. 많은 이들이 즐기는 문화유산으로 만들려 했던 의도의 정비사업이 어쩌다 문화재를 망가뜨리는 결과를 낳았을까. 이한상 대전대 역사문화학과 교수는 “지방자치단체가 큰 예산을 들인 정비사업이라도 문화재 보존이란 핵심 가치를 놓치면 모두 물거품이 될 수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문화재보존 전문가 현장에 없어
학계에서는 이번 사고의 가장 큰 원인으로 정비사업 전반에 걸친 의사결정 과정에서 “매장문화재에 정통한 전문 학예연구사가 빠진 구조”를 문제 삼았다.
김해시 가야복원과는 2021년 10월 경상남도에 김해 구산동 지석묘를 정비하겠다는 ‘현상변경 허가 신청서’를 제출했다. 현행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땅 위에 있는 문화재 위치를 바꾸는 현상 변경이 발생할 경우에 시·도지정문화재는 각 지자체로부터, 국가지정문화재는 문화재청으로부터 사전 허가를 받아야 한다. 김해시는 2021년 11월 경남도로부터 착공 허가를 받았다.
하지만 김해시는 구산동 지석묘 유적지 내 상석(上石) 주변부 문화층 20cm가량을 중장비로 파헤치고 굴착 공사를 진행하면서도 문화재청 허가를 받지 않았다. 이유는 단순했다. “매장문화재보호법의 존재 자체를 몰랐다.” 정비 사업을 2년 동안 진행하며 문화재 전문가가 없다 보니 기본적인 프로세스를 파악하지 못했던 것이다.
○10년간 전국 문화재 유존지역 훼손 345건
매장문화재 유존지역에서 지하 땅을 굴착하는 공사는 지자체는 물론 민간기관과 개인 모두 문화재청과 사전 협의를 해야 한다. 유존지역이란 지표 조사 결과 매장문화재가 땅 밑에 묻혀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되는 곳을 일컫는다. 지층은 한번 훼손되면 다시 복구가 불가능해 공사 전 사전 발굴 조사를 선행해야 한다. 하지만 현장에선 매장문화재법에 대한 인식 자체가 허술하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2020년부터 현재까지(28일 기준) 지자체가 매장문화재 유존지역을 훼손해 지자체장이 고발당한 사례도 5건에 이른다.
지난해 1월 강원 영월군이 영월읍 하송리 일대 도로 확·포장 공사를 진행하면서 매장문화재 유존지역을 훼손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해당 지역에는 고려시대 절터로 추정되는 문화재가 매장돼 있어, 굴착 공사를 시행할 경우 문화재청과 협의해야 하나 지자체 담당자가 이를 누락했다. 그 결과 1000m²에 이르는 매장문화재 유존지역이 파헤쳐졌고, 절터에 남아 있던 기둥 등이 상당 부분 망가졌다.
○더 이상 전문인력 양성 미뤄선 안 돼
지자체가 매장문화재를 관리할 전문성이 부족하다면 가장 확실한 해법이 있다. 매장문화재 유존지역에 대한 모든 인허가 권한을 문화재청으로 일원화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현재 불가능하다. 현행법상 땅 위 문화재 관련 공사는 문화재보호법, 땅 밑 공사는 매장문화재보호법을 따른다. 당초 매장문화재보호법은 하나의 법체계에 속해 있었으나 2011년 따로 제정해 관리 주체를 나눴다. 문화재청에 집중된 업무를 지자체로 분산해 부담을 줄이고, 지역문화재의 관리 권한을 지자체로 넘기기 위해서였다.
지자체가 유적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관리하는 학예 연구 인력을 확충하지 않으면 문화재 훼손은 도돌이표처럼 반복될 수밖에 없다. 아쉽게도 현행법에는 지자체가 문화재의 보존·관리 및 활용 등 업무를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학예인력을 배치하도록 의무화하는 규정이 없다. 올해 기준으로 전국 지자체에 고용된 학예직이 1000여 명에 이르지만 정규직은 몇몇에 불과하다. 임기제 학예직이 ‘개발’과 ‘문화재보존’이라는 상반되는 이익이 맞부딪칠 때 제대로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박윤정 문화재청 발굴제도과장은 “임기제 직원 입장에선 자신의 고용 유지가 달려 있다 보니 쉽게 목소리를 내기 힘든 구조”라고 지적했다.
국회도 이런 문제점을 인지하고 있다. 지난해 6∼10월 지자체의 지정문화재 수와 매장문화재 면적에 비례해 학예인력을 의무적으로 배치하도록 하는 ‘문화재보호법 일부개정법률안’ 3건이 발의된 상태다. 하지만 현재까지 법안 통과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제도와 현장 환경 개선, 동시에 이뤄져야”
학계에서는 해당 법의 통과만 기다릴 게 아니라 전문 학예 인력이 문화재 정비사업 과정에 반드시 관여하도록 지자체 내부 규정을 손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한상 교수는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학예 인력을 업무에서 배제하면 언제든 유명무실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유적 보존은 한번 어긋나면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피해를 남긴다. 이 교수는 “문화재 보존을 토지 개발이나 사업을 막는 존재로 여기기보다 지역 문화산업을 발전시키는 매개체로 여기는 인식의 변환이 필요하다”며 “제도를 고침과 동시에 현장에서 관련 업무 환경을 개선해야 고질적인 문제를 풀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소연 문화부 기자 always9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