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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벌·스펙, 성과와 무관하다는데 뭘 보고 뽑나…생물학·신경과학에 답 있다

입력 | 2022-08-29 13:43:00


기업의 입사 시험장에서 응시자들에게 난데없이 공중제비를 돌라고 하면 어떨까? 그리고 가장 멋지게 공중제비를 돈 응시자를 합격시키겠다고 한다면? 그게 대체 업무와 무슨 상관관계가 있냐며 황당해하는 반응이 나올 것이다.

극단적인 예시지만 어쩌면 현재 채용 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은 이와 별반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 현재 기업들이 채용에서 널리 활용하고 있는 선발 도구들이 입사 후 직무 성과와 무관하다는 실증 연구 결과가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학벌은 물론이고, 자격증이나 어학 성적과 같은 스펙, 인적성 검사 결과도 실제 직무성과와 관계가 없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오히려 반비례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채용 시장에 완전히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출처=셔터스톡



‘학벌, 스펙과 직무 성과는 관계 없다’…대규모 실증 연구로 증명

충남대학교 경영학부 박지성 교수가 지난 17일 한국경영학회 융합학술대회에서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현재 국내 기업들이 채용 과정에서 선발 도구로 활용 중인 학벌, 학점, 영어 성적, 자격증, 인적성 검사 등이 모두 선발 도구로써의 활용 가치가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박지성 교수와 한국경영학회 뉴로경영위원회, HR전문기업 마이다스인이 함께 진행한 이번 연구는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대기업, 중견기업, 중소기업 포함 국내 16개 기업, 6개 산업군에 재직 중인 4040명을 대상으로 직무 성과와 입사 당시 선발 기준의 상관관계를 분석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소수 공기업이나, 대기업만이 대상이 아닌, 여러 조직 유형과 산업군 등을 아울러 광범위하게 이뤄진 국내 실증 연구는 이번이 처음이다.

충남대 박지성 교수가 한국경영학회 융합학술대회에서 연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제공=마이다스인


연구에 따르면 학력 수준 0.07, 대학 순위는 0.00, 학점은 0.04, 영어 성적은 -0.00, 자격증 수는 0.03의 성과 상관도를 지닌 것으로 나타났다. 1에 가까울수록 상관관계가 높고, 0 미만 음수로 나타나면 반비례 관계에 있다는 걸 의미한다. 미국 노동부에서 권고하는 채용 검사 유용성 판단 기준에 따르면 0.11 이하는 ‘선발도구로서의 유용성이 낮아 활용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주목할 점은 여전히 많은 기업들이 서류 합격의 기준으로 삼고 있는 학벌 뿐 아니라 학점, 자격증, 인적성 검사, 면접 등 지금도 널리 사용되고 있는 선발 도구도 직무 성과와 연관성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는 점이다. 특히 일부 기업의 경우 인적성 검사와 면접 점수가 직무 성과와 각각 -0.03, -0.09로 반비례 관계에 있는 것으로 나오기도 했다.

연구에 참여한 마이다스인 이현주 수석연구원은 “국내 기업에서 현재 입사 시 확인하고 있는 학벌, 영어 성적, 인적성 등을 채용에 활용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박지성 교수는 “성과를 예측하지 못하는 채용 기준은 과감히 혁신하고, 직무성과를 제대로 예측할 수 있는 새로운 선발 도구를 모색할 필요성이 점차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모두가 ‘역량 평가’ 중요성 말하지만 기존 역량 모델은 한계 뚜렷


기업들도 학벌과 스펙을 비롯한 기존 선발 도구가 유효하지 않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깨닫고 있는 추세다. 블라인드 채용과 역량 중심 채용이 확대되는 이유도 그런 까닭이다. 그러나 블라인드 채용에 회의적이거나, 기존 채용 기준을 고수하는 곳들도 적지 않다. 역량 중심 채용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모두가 인정하지만, 역량을 어떻게 정의하고,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에 관해서는 여전히 막연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역량 모델은 대부분 심리학과 경영학에 기반을 두고 발전해왔다. 라일 스펜스 가 1993년 제시한 역량 모델이 대표적이다. 스펜서는 역량을 조직 구성원 중 높은 성과를 창출하는 고성과자로부터 일관되게 관찰되는 행동 특성으로 정의한다. 고성과자들은 지식, 기술, 가치의 상호작용에 의해 성공적 결과를 이끌어내는 행동을 취한다는 것이다.

스펜서는 역량을 빙산에 빗대어 도식화한 모델을 제시했다. 출처=한국경영학회 뉴로경영위원회


스펜서는 역량을 빙산에 비유해 눈에 보이는 표면적 요소인 기술과 지식, 수면 아래 보이지 않는 요소인 태도와 가치관 같은 자기 개념, 특성과 동기 등 내적 속성 두 층위로 나뉜 것으로 도식화한다. 이때 기술과 지식은 교육과 훈련으로 개발 가능하지만, 수면 아래 요소들은 개발이 어렵다. 그래서 채용과 선발 과정에서 적합한 자질을 지니고 있는지 파악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러한 내적 속성은 보이지 않는 요소이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행동을 관찰해 경험적으로 정의해야 한다는 한계가 생긴다. 무엇보다도 기존 역량 개념에서는 능력, 역량, 기술, 태도, 지식 등 여러 개념이 혼재되어 사용되며, 상황과 조건, 환경과 시대에 따라 그 정의가 바뀐다는 점, 그리고 관찰과 측정되지 않는 내적 요인들은 어떻게 평가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도 한계로 지적됐다. 현재 역량의 개념과 모델의 기반은 자극과 행동이라는 결과를 통해 사람을 이해하는 행동심리학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

역량이란 ‘사회적 상호작용을 돕는 신경적 경향성’…생물학·신경과학 기반 통합역량모델이론 제시돼

마이다스아이티 자인연구소는 이날 학회에서 기존 역량 모델 한계를 극복하는 대안으로 생물학과 신경과학 기반 통합역량모델이론(Neuro Competency model Theory 이하 NCT)을 제시했다. NCT는 생물학적 항상성으로부터 우리 뇌의 자극과 반응에 관한 판단메커니즘, 전전두피질의 역할과 기능, 기억과 학습을 통한 역량의 형성과 강화메커니즘을 정리한 이론이다.

NCT에서는 역량을 ‘유사 자극과 반응 메커니즘이 반복강화로 형성되어 고정화된 신경적 경향성’으로 사회적 동물로 진화한 인간이 바람직한 사회적 상호작용을 만드는 힘으로 정의한다.  이를 바탕으로 긍정성, 적극성, 안정성, 대인력, 전략력, 조절력, 통합력이라는 7가지 기반역량을 제시하였다.

출처=한국경영학회 뉴로경영위원회


그렇다면 이 NCT를 실제 채용 과정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마이다스인은 지난 2018년 이미 NCT에 기반한 AI역량검사 솔루션을 개발해 국내 최초로 선보인 바 있다. 마이다스인의 AI역량검사 솔루션은 자기보고식 검사와 영상면접과 더불어 뇌신경과학 기반 게임을 측정 도구로 활용한다.

9가지로 구성된 각 게임은 전전두피질(Prefrontal Cortex)의 7가지 영역과 관련된 역량을 측정한다. 게임으로 뇌에 자극을 가하고, 그 자극에 대한 반응을 반복 수집하며 무의식적인 행동 패턴과 특성을 측정하는 방식이다.

마이다스인은 AI역량검사에서 뇌신경과학 기반 게임을 활용하고 있다. 출처=한국경영학회 뉴로경영위원회


마이다스인에 따르면 이같은 AI역량검사 솔루션의 타당도는 0.51로 나타났다. 미국 노동부가 채용 검사 유용성을 판단할 때 ‘매우 유용함’의 기준점으로 제시하는 0.35를 훨씬 상회하는 수치다.

NCT 이론 발표를 맡은 마이다스아이티 자인연구소 최원호 실장은 “기존 채용에서 선발 기준으로 삼았던 학벌, 스펙, 인적성 검사 등의 효과성은 매우 낮다. 이는 성과를 달성하는데 요구되는 인재의 역량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며 “신경과학 기반의 통합역량모델이론은 우수 인재 선발을 위한 새로운 기준을 제시할 수 있으며, 나아가 역량기반의 경영과 교육에 많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동아닷컴 IT전문 권택경 기자 tk@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