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전 유럽이 전례 없는 에너지 위기를 맞은 가운데 영국 에너지당국이 “10월 전기 요금이 1년 전보다 약 3배 급등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미 7월 소비자물가가 10%를 넘어선 상황에서 에너지 급등이 물가 추가 상승 등 경제에 큰 충격을 가하고 저소득층의 삶을 위협할 것이란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26일 파이낸셜타임스(FT)는 올해 성탄절 상당수 영국인이 ‘난방’과 ‘음식’ 중 하나만 골라야 할 것이라며 현 사태를 “국가 비상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러시아의 침공 6개월을 맞은 우크라이나 역시 수십 년 만에 가장 추운 겨울을 경험할 것으로 보인다. 당국은 올 겨울 난방시간 단축 및 난방온도 저하 등을 예고하며 각 가정에 “담요 등을 비축하라”고 권고했다.
● 英 에너지요금, 1년 만에 3배 상승
26일 영국 에너지 규제기관 ‘오프젬’은 10월 가구 에너지 요금 상한을 현재 연 1971파운드(약 311만 원)보다 80% 높은 연 3549파운드(약 560만 원)로 책정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10월 요금 상한이 1277파운드(약 201만 원)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1년 사이 무려 2.8배 뛴 셈이다. 2020년부터 올해 3월까지 영국 에너지 요금 연간 상승률은 10% 안팎이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올해 4월 약 54% 상승하면서 서민들의 부담이 커졌다.영국은 소비 전력의 40%를 천연가스에 의존하고 있다. 러시아산 가스의 의존도는 독일 등 유럽 주요국에 비해 낮은 편이다. 하지만 주요 에너지업체가 모두 민영화돼 정부의 개입 여지가 적다. 원가 상승분이 고스란히 소비자가격 인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필수재로 소비를 줄이기 어려운 품목인 에너지 요금이 비싸지면 저소득층의 큰 타격이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현재 영국 저소득층이 소득의 25%를 에너지 비용으로 쓰고 있지만 조만간 40% 이상으로 오를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가디언은 28일 “전기요금 급등으로 굶는 아이들이 늘어날 수 있다. 보편적 무상 급식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 우크라 “겨울 난방 시간 줄이고 온도 낮춘다”
소비 가스의 40%를 유럽에서 수입해오는 우크라이나는 올 겨울 상당한 에너지 대란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국영 가스사 ‘나프토가즈’의 유리 비트렌코 회장은 이날 가디언 인터뷰에서 “옛소련 시절에 만들어진 중앙난방 체계를 예년보다 더 늦게 가동시키고 더 일찍 끄겠다”며 담요와 따뜻한 옷을 미리 비축하라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올해 난방 온도를 17~18도로 낮출 것”이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는 통상 매년 12월~다음해 3월까지 실내온도를 21~22도로 유지할 수 있는 난방을 공급했다. 비트렌코 회장은 “올 겨울 총 40억㎥ 상당의 천연가스 수입이 필요하다”며 이를 위해 국제사회로부터 100억 달러(약 13조5000억 원)의 지원이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서방의 재정 지원이 없다면 가스 부족으로 정전이 발생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카이로=강성휘 특파원 yolo@donga.com
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