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
건강이 나빠져 물러날 가능성을 시사했던 프란치스코 교황(86)이 28일(현지 시간) 이탈리아 라퀼라를 방문해 자진 사임한 옛 교황의 겸손함을 칭송했다. 일각에선 교황 사임이 임박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날부터 이틀간 라퀼라 산타마리아 디 콜레마조 성당을 방문했다. 중부 도시 라퀼라에는 가톨릭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스스로 사임한 첫 교황 첼레스티노 5세(1215∼1296)의 유해가 안치돼 있다. 교황 임기는 종신제여서 선종(善終) 전까지 재임하도록 돼있다. 그러나 첼레스티노 5세는 즉위 5개월 만인 1294년 12월 교황 직을 내려놨다. 중세 작가 단테는 ‘신곡’에서 ‘겁을 먹고 큰 지위를 버린 사람’으로 평가 절하하기도 했다.
하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날 “(첼레스티노 5세는) 권력을 포기함으로써 겸손에서 오는 힘을 보여줬다”고 말했다고 교황청 관영 바티칸뉴스가 전했다. 무릎 질환으로 휠체어를 타고 온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팡이를 짚고 첼레스티노 5세 묘역에서 기도했다.
앞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6월 라퀼라 방문 계획을 발표한 뒤 조기사임설이 나오자 로이터통신 인터뷰에서 “(사임은) 전혀 생각해본 적 없다”고 일축했다. 그러면서도 2016년 역대 교황 중 두 번째로 자진 사임한 베네딕토 16세를 언급하며 “훌륭한 본보기”였다고 여지를 남겼다. 베네딕토 16세도 사임 4년 전인 2009년 라퀼라를 찾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달 말 언론 인터뷰에서도 “(사임의) 문은 열려 있다”고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28일 첼레스티노 5세를 칭송하자 외신들은 “교황의 이번 행보에는 조만간 사임하려는 뜻이 담겨 있다”며 “다시 한번 조기 사임 가능성에 불이 붙었다”고 전했다.
교황은 라퀼라 방문 전날인 27일 유흥식 추기경를 비롯한 새 추기경 20명에 대한 서임식을 거행했다. 이례적으로 휴가철인 8월에 서임식을 한 것은 1807년 이후 처음이다. 이로써 교황 선출회의(콘클라베) 투표권을 가진 추기경 132명 중 프란치스코 교황이 임명한 인물은 83명(63%)이 됐다. 차기 교황 선출 과정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관측도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새로운 바티칸 헌장을 논의하기 위해 29~30일 주재하는 추기경 회의에서도 조기 사임 논의는 비공식적으로 이뤄질 전망이다. 모로코 크리스토발 로페즈 로메로 신임 추기경은 미국 워싱턴포스트(WP)에 “조만간 우리는 차기 교황을 선택해야 하기 때문에 (이번 추기경 회의에서) 서로를 알아 가야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 회의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사임을 발표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내놓는다. 다만 새 교황 선출을 위해서는 콘클라베에서 3분의 2 이상의 지지해야 하는 만큼 프란치스코 교황이 내년 새 추기경을 추가로 임명해 자신의 후계 구도를 마무리한 뒤 사임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