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미국 인플레감축법 승자가 테슬라인 까닭[특파원칼럼/김현수]

입력 | 2022-08-30 03:00:00

경제안보 앞세운 미래 산업 주도권 전쟁
韓, 민관 전략자산 동원해 협상력 높여야



김현수 뉴욕 특파원


“요놈 참 빠르네!(This sucker‘s quick!)”

지난해 5월 미시간주 포드 자동차 공장을 찾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예정에 없던 픽업트럭 F-150 전기차를 시승하며 이같이 말했다. 대통령의 농담 섞인 소감은 언론을 도배해 포드는 홍보 효과를 톡톡히 봤다.

이달 16일 바이든 대통령이 북미산(産) 전기차에만 소비자 보조금 7500달러(약 1007만 원)를 주는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서명했을 때 F-150 시승 장면이 떠올랐다. 내연기관 차량 시대 한국 독일 일본에 밀린 미국이 미래 전기차에선 주도권을 쥐겠다는 의지가 그때도, 이번에도 선명하게 느껴졌다.

인플레감축법은 1인 연소득 15만 달러 이하인 미국 중산층 소비자가 살 수 있는 가격대 차량(세단 5만5000달러,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및 픽업트럭 8만 달러 이하)에 보조금을 몰아줘 전기차 대중화를 이끌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다만 미국에 일자리를 가져오는 자동차 기업과 중국산 배터리나 배터리 핵심 광물을 쓰지 않는 자동차가 ‘주인공’이 돼야 한다는 의도를 담았다. 처음에는 북미산 아닌 미국산 전기차로만 한정하려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인플레감축법으로 현대차·기아 전기차는 보조금이 끊겼지만 포드 F-150 전기차는 보조금을 계속 받는다. 제조사별 20만 대까지만 지원을 받도록 한 규정 때문에 보조금이 끊겼던 제너럴모터스(GM)와 테슬라도 내년부터 보조금을 받게 된다.

특히 뉴욕 월가는 테슬라를 승자 중의 승자로 꼽는다. 내년 테슬라의 첫 픽업트럭 ‘사이버트럭’이나 SUV ‘모델Y’가 보조금 대상이 되면 소비자 반응이 상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작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테슬라는 없어서 못 판다”며 보조금 지급에 심드렁한데도 말이다.

향후 복잡한 배터리 핵심 광물 조건이 문제라지만 미 정치매체 폴리티코 등에 따르면 바이든 정부가 예외조항을 붙여 유예해 줄 가능성이 높다. 공공재에 미국산을 쓰도록 한 ‘바이 아메리칸 법’도 각 주가 처한 상황에 따라 적용을 유예해 준 사례가 있다.

인플레감축법은 시작일 뿐이다. 앞으로 미국에서는 테슬라와 GM 포드를 승자로 만들어줄 각종 법과 제도가 쏟아질 것이다. 미래 산업 주도권을 놓고 벌이는 전쟁은 이미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2030년부터 내연기관 차량 판매 금지에 나선 영국 정부가 최근 하이브리드 차량 판매 금지 시기도 앞당기려 하자 하이브리드 차량 글로벌 강자인 도요타가 영국에서 공장을 철수하겠다고 어깃장을 놓았다는 보도가 나왔다. 도요타는 이 보도를 부인했다. 하지만 이는 탄소 감축, 미국과 중국 무역 갈등 등을 명분 삼아 세계 각국 정부와 주요 기업이 산업 주도권을 놓고 줄다리기하는 일이 늘었다는 방증이 아닐 수 없다.

내수시장이 작아 반드시 수출이 필요한 한국으로서는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협상력을 높일 수 있는 전략적 자산이 있다. 미래 전기차 공급망에서도 반도체와 배터리는 핵심을 차지한다. 최근 미국에 투자한 재계 고위 관계자는 “외교 무대에서 좀 더 당당할 자격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생각보다 반도체 같은 한국 산업이 보유한 전략적 가치가 컸다고 말했다. 앞으로 한국 기업은 경제안보를 앞세운 글로벌 산업전쟁에 더욱 내몰릴 것이다. 민관(民官)이 큰 그림을 그리며 손을 맞잡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