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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토니안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와 함께 9월 내한하는 에스토니아인 지휘자 파보 예르비(왼쪽 사진)와 발트 3국 연주가들로 구성한 크레머라타 발티카를 이끌고 5년 만에 한국을 찾는 라트비아 출신 바이올리니스트 기돈 크레머. 빈체로·크레디아 제공
이 나라들이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뉴스의 조명을 받고 있다. 라트비아는 소련 시절 건립된 높이 80m의 전승기념탑을 25일 쓰러뜨려 해체했다. 에스토니아는 최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멘토 알렉산드르 두긴의 딸인 다리야 두기나가 암살된 뒤 범인이 에스토니아로 도주했다고 러시아가 발표하면서 긴장이 높아졌다. 리투아니아는 6월 러시아 본토와 떨어진 러시아령 칼리닌그라드로 가는 철도 화물 통행을 제한해 러시아와 갈등을 빚은 바 있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라트비아는 크레머 외 지휘자 마리스 얀손스와 안드리스 넬손스,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 소프라노 크리스티네 오폴라이스, 바이올리니스트 바이바 스크리데 등을 배출했다. 리투아니아는 소프라노 아스미크 그리고리안과 여성 지휘자 미르가 그라지니테틸라 등이 유명하다. 기자는 이달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넬손스가 지휘하는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콘서트와 그리고리안이 주역으로 출연한 푸치니 오페라 ‘3부작(Il Trittico)’을 큰 감동으로 관람했다. 이들을 염두에 두고 계획한 일은 아니었지만 발트 3국 음악가들은 유럽 음악계에서 큰 존재감을 나타내고 있었다.
소련 시절 세 나라의 음악가들은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오늘날의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대표되는 러시아 음악계의 강력한 영향력 아래 육성됐다. 이번에 내한하는 파보 예르비의 부친 네메는 레닌그라드음악원에서 전설적인 지휘자 예브게니 므라빈스키의 지도를 받았다. 크레머도 모스크바음악원에서 거장 다비트 오이스트라흐 문하로 소련을 대표하는 바이올리니스트가 됐다.
그러나 이 음악가 중 많은 수가 소련에 등을 돌렸다. 네메 예르비는 1980년 가방 두 개와 200달러만 들고 가족들과 함께 미국으로 망명했다. 이번에 내한하는 아들 파보가 열일곱 살 때였다. 그는 미국에서 음악 교육을 이어갔다. 크레머도 같은 해 소련을 떠나 독일에 정착했다. 친한파 첼리스트로 유명한 마이스키도 1970년 체포돼 감옥과 노동교화소, 정신병원에 차례로 수용된 뒤 이스라엘로 망명했다. 러시아 스승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간직한 채 이들은 러시아를 경계할 수밖에 없는 예술가가 되었다.
이번 내한에 앞선 이메일 인터뷰에서 파보 예르비는 이렇게 밝혔다. “전쟁이 우리 국경 근처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은 소련이 에스토니아를 점령했던 괴로운 기억을 떠올리게 합니다. 개개인은 피해자를 돕기 위해 가능한 모든 일을 하고 폭력과 침략을 실패로 만들어야 합니다.” 크레머도 같은 의견을 분명히 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현대 유럽 역사에서 가장 수치스러운 일 중 하나입니다. 이웃 나라를 침략하는 일을 절대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