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기재부 제공
윤석열 정부 첫 예산안의 핵심은 민간에 맡길 수 있는 재정 투입은 줄이고 취약계층과 청년 지원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급증하는 나랏빚과 향후 경기 둔화에 대비해 재정 여력을 남겨둬야 한다는 위기감이 깔려 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30일 국무회의에서 “우리 미래세대에게 빚더미인 나라를 물려줄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 성장은 민간에 맡기고 정부는 취약계층 지원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5일 예산안 사전브리핑에서 “재정을 쏟아부어 경기를 부양하는 식의 단순하고 쉬운 발상으로 대응하기에는 여건이 굉장히 좋지 않다”고 말했다. 물가가 치솟는 상황에서 대규모 재정투입이 오히려 인플레이션 악화 등의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번 예산안에서 산업·중소기업·에너지 분야 예산을 올해보다 5조6000억 원(18.0%) 줄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불어난 손실보상 예산 등 한시적 지원을 줄인 결과다. SOC와 일자리 예산도 각각 올해보다 2조8000억 원(10.2%), 1조5000억 원(4.9%) 줄였다. 다만 반도체와 원자력발전 등 미래전략산업 투자는 늘리기로 했다.
국정과제를 위한 예산은 11조 원만 반영됐다. 당초 정부가 필요 재원으로 추산했던 연간 42조 원(5년간 209조 원)에 훨씬 못 미치는 규모다. 김완섭 기재부 예산실장은 “(취임) 첫해이기 때문에 사업 설계비 같은 작은 투자가 일단 이뤄진다”며 “뒤로 갈수록 투자 규모가 늘어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 100조 넘던 국가채무 증가폭, 66조로 낮춰
정부는 내년 예산안에서 역대 최대 폭인 24조 원을 지출 구조조정했다. 통상 10조 원 안팎이었던 예년 구조조정 규모를 훌쩍 뛰어넘는다. 이에 따라 3년 연속 100조 원을 넘겼던 국가채무 증가폭도 내년에는 66조 원으로 쪼그라들었다. 문재인 정부 때는 5년간 국가채무가 404조 원 늘었지만, 이번 정부에선 임기 마지막 해를 제외한 4년(2022~2026년) 동안 298조 원만 증가한다. 지난 정부가 세운 계획과 비교하면 2025년 국가채무는 136조6000억 원,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7.4%포인트 축소된다. 내년도 국가채무비율은 49.8%로 50%선을 넘지 않게 유지한다.
이런 건전재정 목표는 당분간 국세수입이 호조를 보일 것이라는 전망에 근거하고 있다. 정부는 내년 국세가 400조5000억 원 걷힐 것으로 보고 있다. 세수 호황으로 전망치를 끌어올린 2차 추경(396조6000억 원) 때보다도 3조9000억 원 늘어난 규모다. 정정훈 기재부 조세총괄정책관은 “자산시장 둔화로 양도소득세는 감소하지만 임금 상승으로 근로소득세가 늘어나고, 법인세도 올해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올 하반기(7~12월) 경기 둔화 우려가 커지는 데다 ‘2022년 세제개편안’에서 감세가 예고돼 정부 전망이 낙관적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물가가 오르면서 명목성장률이 유지되는 내년에는 세수 추계가 크게 엇나가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다만 그 이후에는 세수 전망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세종=최혜령 기자 herstor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