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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년 전 발굴된 우물 속 유해 정체는…800년 전 몰살당한 유대인들

입력 | 2022-08-31 12:41:00


18년 전 발굴된 중세 우물 속의 유해들이 12세기에 사망한 유대인이었던 것으로 마침내 밝혀졌다. 최신 유전자(DNA) 염기서열 분석법이 발전한 덕분이다.

지난 2004년, 영국의 인부들은 노리치의 쇼핑몰에서 800년 된 우물을 발견했다. 우물 안에는 17구의 유해가 놓여 있었다.

이들이 왜 우물에 들어가게 됐는지는 오랫동안 고고학자들의 고민거리였다. 우물 속 유해들은 다른 매장지의 유해들과는 사뭇 달랐다. 가지런한 형태의 다른 매장지 유해들과는 달리 우물 속의 유해들은 구조가 뒤틀리거나 다른 유해들과 조금씩 섞여 있었다. 고고학자들은 유해들이 사망한 직전이나 직후에 우물로 던져졌기 때문에 이와 같은 현상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해왔다.

30일(현지시간) 미국 CNN에 의하면, 과학자들은 이들에게 정확히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내기 위해서 뼈에 보존돼 있던 DNA를 추출했다. 최신 염기서열 분석법을 통해 6구의 유해에서 추출된 DNA를 분석한 결과, 그들 중 4명이 친척 관계였으며 3명은 자매 사이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가장 어린 유해는 5살에서 10살 사이로 추정됐으며, 생전에는 파란 눈과 붉은 머리를 가졌다. 무엇보다, 이번 분석을 통해 그들 모두가 아슈케나즈 유대인이라는 것이 사실상 확정되었다.

연구원들은 우물 안의 유해들이 동유럽과 북유럽 등지에서 주로 활동한 아슈케나즈 유대인들과 비슷한 유전적 조상을 공유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 유대인 공동체는 1066년 영국을 침공한 윌리엄 1세에 의해 소환된 유대인들의 후손이다. 유대인들은 종교적, 문화적인 이유로 주로 공동체 내에서 결혼하는 문화를 가졌는데, 이로 인해 발현하는 특정한 유전적 특성이 이번 연구 결과의 결정적인 증거였다. 이 유전적 특성은 유대인들에게 주로 발병하는 치명적인 유전병인 테이-삭스 병을 유발하기도 한다.

연구원들은 발견된 유해들이 모두 도시에서 발생한 반유대주의 소요 사태 중에 사망했다고 밝혔다.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법에 의하면 유해는 1161년에서 1216년 사이의 어느 시점에 우물 속으로 던져졌는데, 당시에 발생한 가장 유력한 사건은 1190년 3차 십자군 전쟁으로 인한 유대인 학살이다. 당시 수많은 유대인이 화형당하거나 자신들끼리 목숨을 끊었다.

이번 조사 결과 덕분에 연구진들은 유대인 공동체의 초기 구성 과정과 그들이 가졌던 유전 질환에 대한 역사적, 유전학적 공백을 메울 수 있었다. 진화 유전학자이자 런던 칼리지 대학의 마크 토마스 교수는 유대인의 무덤을 발굴하는 것이 엄격하게 금지되어왔기 때문에, 미상의 유해에서 우연히 이런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은 대단히 고무적인 일이라고 밝혔다.

다만, 연구진은 이 유해들이 1190년의 3차 십자군 전쟁으로 인해 사망한 것인지는 단언할 수 없다고 밝혔다. 1174년에 일어난 도시 내 대반란 시기와도 겹치기 때문이다.

한 연구원은 이번 조사 결과는 새로운 과학 기술이 역사적 사건을 재조명하는데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지 보여줬을 뿐 아니라, 지난날 일어났던 참혹한 학살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직시하게 한다고 말했다.

【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