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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이정은]‘1폰 2번호’ 시대

입력 | 2022-09-02 03:00:00


정관계와 재계 유력 인사들의 재킷이나 바지 주머니가 이상하게 두툼한 것은 대개 휴대전화를 두 개씩 넣어 다니기 때문이다. 과도한 업무 연락에 시달리거나 공적으로 노출돼 있는 인사들 상당수가 업무폰 외에 개인폰을 따로 갖고 다닌다. “당신에게 알려준 것은 내 개인폰 번호”라고 은근히 귀띔하기도 한다. 그만큼 상대에게 신뢰를 갖고 있다는 메시지다. 번호를 분리할 필요가 있는 이들에게 묵직한 휴대전화 두 개를 챙겨 다니는 수고로움은 감내해야 할 대가였다.

▷1대의 스마트폰으로 2개의 전화번호를 동시에 쓸 수 있는 서비스가 이달부터 시작됐다. 앞으로는 스마트폰에 직접 장착하는 유심(USIM)칩 외에 기기 안에 내장돼 있는 e심을 병용해 2개의 회선을 동시에 사용할 수 있다. 세컨드폰을 가뿐히 내려놓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휴대전화를 한 개만 사용해온 이들에게도 반가운 소식이다. 기존 통신사 서비스를 유지하면서 알뜰폰의 저렴한 데이터를 이용하거나 해외출장 시 현지 국내요금제를 선택할 수 있는 혜택이 열렸다.

▷이른바 ‘듀얼심’의 기술 자체는 새로운 게 아니다. 독일기업 지멘스가 관련 기술의 특허를 낸 게 1990년대였다. 핀란드 통신업체 베네폰이 2000년 내놓은 첫 듀얼심 휴대전화 ‘트윈폰’은 기기 뒷면에 유심칩 두 개를 나란히 꽂아 사용하는 형태였다. 칩을 4개까지 장착할 수 있는 쿼드(quad) 모델이 나오기도 했다. 현재 듀얼심 서비스를 운용하는 통신사는 2020년 말 기준으로 전 세계 69개국 175개. 해외에서는 이미 상용화된 서비스이건만 한국은 유심칩 판매수익 감소를 우려한 통신사들의 견제 등으로 도입이 늦어졌다.

▷휴대전화 번호가 주민등록번호보다도 자주 쓰이는 핵심 개인정보가 돼 버린 세상이다. 통화와 문자 송수신 같은 기본 커뮤니케이션 외에 본인 인증, 금융 거래 등에도 전화번호 입력은 필수다. 각종 웹사이트 가입부터 배송 정보 입력, 식당에 대기 순번을 걸어놓는 일까지 번호 노출을 요구받는 상황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본캐’ 번호를 함부로 갈아치울 수 없으니 ‘부캐’ 번호가 필요해진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다. ‘1폰 2번호’ 사용이 프라이버시와 디지털 정체성의 문제로 직결될 수 있다는 말이다.

▷이 서비스를 시행 중인 해외 국가에서는 번호를 2개 쓰면서 바람을 피우다 배우자에게 적발되는 사례들이 종종 뉴스가 되기도 한다. 듀얼심을 악용하려는 사람들도 생겨날 것이다. 그래도 2025년이 되면 전 세계 스마트폰의 절반 이상이 듀얼심을 탑재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각자의 필요에 따라 최적화된 방식으로 휴대전화를 이용, 관리하는 게 관건일 것이다. 한국의 ‘투넘버 시대’는 어떻게 열릴지 궁금해진다.

이정은 논설위원 light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