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관계와 재계 유력 인사들의 재킷이나 바지 주머니가 이상하게 두툼한 것은 대개 휴대전화를 두 개씩 넣어 다니기 때문이다. 과도한 업무 연락에 시달리거나 공적으로 노출돼 있는 인사들 상당수가 업무폰 외에 개인폰을 따로 갖고 다닌다. “당신에게 알려준 것은 내 개인폰 번호”라고 은근히 귀띔하기도 한다. 그만큼 상대에게 신뢰를 갖고 있다는 메시지다. 번호를 분리할 필요가 있는 이들에게 묵직한 휴대전화 두 개를 챙겨 다니는 수고로움은 감내해야 할 대가였다.
▷1대의 스마트폰으로 2개의 전화번호를 동시에 쓸 수 있는 서비스가 이달부터 시작됐다. 앞으로는 스마트폰에 직접 장착하는 유심(USIM)칩 외에 기기 안에 내장돼 있는 e심을 병용해 2개의 회선을 동시에 사용할 수 있다. 세컨드폰을 가뿐히 내려놓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휴대전화를 한 개만 사용해온 이들에게도 반가운 소식이다. 기존 통신사 서비스를 유지하면서 알뜰폰의 저렴한 데이터를 이용하거나 해외출장 시 현지 국내요금제를 선택할 수 있는 혜택이 열렸다.
▷이른바 ‘듀얼심’의 기술 자체는 새로운 게 아니다. 독일기업 지멘스가 관련 기술의 특허를 낸 게 1990년대였다. 핀란드 통신업체 베네폰이 2000년 내놓은 첫 듀얼심 휴대전화 ‘트윈폰’은 기기 뒷면에 유심칩 두 개를 나란히 꽂아 사용하는 형태였다. 칩을 4개까지 장착할 수 있는 쿼드(quad) 모델이 나오기도 했다. 현재 듀얼심 서비스를 운용하는 통신사는 2020년 말 기준으로 전 세계 69개국 175개. 해외에서는 이미 상용화된 서비스이건만 한국은 유심칩 판매수익 감소를 우려한 통신사들의 견제 등으로 도입이 늦어졌다.
▷이 서비스를 시행 중인 해외 국가에서는 번호를 2개 쓰면서 바람을 피우다 배우자에게 적발되는 사례들이 종종 뉴스가 되기도 한다. 듀얼심을 악용하려는 사람들도 생겨날 것이다. 그래도 2025년이 되면 전 세계 스마트폰의 절반 이상이 듀얼심을 탑재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각자의 필요에 따라 최적화된 방식으로 휴대전화를 이용, 관리하는 게 관건일 것이다. 한국의 ‘투넘버 시대’는 어떻게 열릴지 궁금해진다.
이정은 논설위원 light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