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선 허투루 사람을 사귀기도 하지만, 이 어르신은 전혀 딴판이지.
흥 나서 글씨 쓰면 성인의 경지요, 취한 후 뱉는 말은 거칠 게 없지.
백발이 되도록 늘 한가롭게 지내기에 그저 푸른 구름만이 눈앞에 있었지.
(世上謾相識, 此翁殊不然. 興來書自聖, 醉後語尤顚. 白髮老閑事, 靑雲在目前. 床頭一壺酒, 能更幾回眠.)
―‘취한 뒤 장욱에게 주다(취후증장구욱·醉後贈張九旭)’ 고적(高適·약 704∼765)
당대의 서예가 장욱(張旭)은 술에 잔뜩 취한 후 붓을 내갈기는 기벽(奇癖)이 있어서 ‘장전’(張顚·미치광이 장욱), 또 초서(草書)의 대가라 하여 ‘초성(草聖)’이라 불렸다. 두보가 이백 등 8인을 뽑아 음주의 신선이라고 묘사한 적이 있는데, 여기서 장욱을 ‘술 석 잔이면 초서의 성인이 되지. 관모도 벗은 채 왕공(王公) 앞에 나아가, 종이 위에 휘호하면 글씨는 마치 구름 같고 안개 같았지’라 했다. 장욱에게 글씨와 술이 한 몸처럼 따라붙었다는 얘기다. 고적은 장욱보다 나이도 훨씬 어렸고, 장안에서 잠시 교류한 것 외에 그와 별 깊은 인연은 없었다. 하나 시인은 가식 없고 명리에 초연했던 이 노인의 인품을 오래 흠모했던 모양이다. 취기가 오른 어느 날 시인은 문득 장욱의 삶을 부러운 듯 떠올렸고 경의(敬意)를 표하고 싶었을 것이다.
사람이 서로 사귄다고 해서 꼭 진정성이 있는 건 아니다. 말로는 절친이라면서도 위선적일 때도 있기 마련인데 이분은 전혀 그렇지 않다. 대취한 채 붓을 잡지만 그 글씨는 신묘한 경지에 이르고, 꾸밈이나 거짓이 없으니 언사도 거침 없다. 평생 한가롭게 지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세상사에 무심한 채 푸른 하늘과 구름과 술을 곁에 두었기 때문일 것이다. 노인을 이리 흠모하긴 했어도 실제 고적은 변방의 전선을 오가는 등 관직 생활에 무척 적극적이었다.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