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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임’ 김재형 대법관 “입법·정치영역 문제가 법원 문 두드리는 일 많아져”

입력 | 2022-09-02 13:41:00


4일로 6년간의 임기가 끝나는 김재형 대법관(57·사법연수원 18기)이 2일 퇴임사를 통해 “입법으로 해결해야 할 모든 문제를 사법부가 나서서 해결하려고 해서도 안 되고 그렇게 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김 대법관은 이날 오전 대법원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입법이나 정치의 영역에서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한 사안인데도 법원의 문을 두드리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며 이 같이 말했다. 이어 “그러나 입법과 사법의 경계가 분명한 것은 아니다. 입법과 사법은 어느 한 쪽이 다른 한 쪽에 절대적인 우위에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법률의 해석과 적용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면 법원이 해결할 수 없다고 당당하게 밝혀야 하겠지만 저는 너무 쉽게 문제를 넘기지 않고 사법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지에 관해 힘 닿는 데까지 고민을 했다”고 밝혔다.

김 대법관은 올 4월부터 미쓰비시가 특허권 2건에 대한 특별현금화명령에 불복해 낸 재항고 사건의 주심을 맡았지만 이 사건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주심 교체로 심리 장기화가 불가피해지면서 손해배상 소송에 최종 승소하고도 4년 가까이 배상을 받지 못한 피해자들의 배상이 더 늦어지게 됐다. 일각에서 “대법원이 외교적 파장 등 소송 외적인 문제를 고려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김 대법관의 퇴임사를 이와 연결짓는 해석도 나온다.

김 대법관은 또 “우리 사회는 대법원 구성의 다양화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지만 대법관을 보수 혹은 진보로 분류해 어느 한쪽에 가둬두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법관이 보수와 진보를 의식하게 되면 법이 무엇이고 정의는 무엇인지를 선언하는 데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굳이 말하자면 저는 보수도 아니고 진보도 아니다. 그렇다고 그 중간도 아니다. 사법 적극주의와 사법 소극주의 가운데 어느 한쪽을 선택하고자 하지 않았다”며 “저는 여전히 법적 이성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또 “마주하고 있는 문제를 피하거나 미루지 않고 정면으로 다루고자 했고, 사안의 실체를 직시하고 올바르게 판단하려고 노력했다”며 “제가 한 판결이 여러 의견을 검토해 최선을 다해 내린 타당한 결론이기를 바랄 뿐”이라고 덧붙였다.

전북 임실 출신인 김 대법관은 명지고,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연수원을 마친 1992년부터 서울서부지법, 서울민사지법에서 판사로 일했다. 이후 1995년 서울대 법대로 옮겨 21년 동안 민사법을 연구하고 강의했다.

김 대법관은 서울대 재직 시절 학계를 대표해 민법,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 등의 개정위원으로 여러 입법 과정에 참여했다. 또 한국언론법학회 이사, 한국민사법학회 이사, 대법원 비교법실무연구회 운영위원, 민사판례연구회 회원 등으로 활동하며 학계와 실무의 가교(架橋) 역할도 충실히 수행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6년 대법관 취임 이후에는 2018년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최초 무죄 판결, 사적 공간에서 상호 합의로 이뤄진 동성 군인 간의 성관계를 처벌해서는 안 된다는 판결의 주심을 맡는 등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선 판결을 여럿 이끌었다.


퇴임식이 2일 열렸다. 김 대법관은 주심을 맡고 있는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을 위한 미쓰비시중공업 자산 매각명령 사건에 대해 퇴임식 이전까지 판단을 내리지 않았다.



김태성기자 kts571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