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긴밤/루리 글, 그림/144쪽·1만1500원·문학동네
이야기는 길지 않다. 세상에 마지막 남은 흰바위코뿔소 ‘노든’과 버려진 알에서 태어난 어린 펭귄이 주인공. 코끼리 고아원에서 지내다 험난한 세상으로 발을 내디딘 노든은 자유와 행복을 맛보다가 어느 날 동물원에 갇힌다. 그곳에서 펭귄과 만나 친구가 된 뒤 둘은 수없는 긴긴밤 동안 얘기를 나눈다. 코뿔소와 펭귄은 마침내 동물원을 빠져나가 바다에 가기로 하는데…. 아무리 힘들어도 둘은 포기하지 않고 길을 걷는다.
이호재 기자
한 가지 더 눈여겨볼 대목은 이 책에 담긴 사회적 메시지다. 노든은 2018년 아프리카 케냐의 자연보호구역에서 45세로 영원히 잠든 마지막 수컷 북부흰코뿔소 ‘수단’이 모델. 또 루리 작가는 베트남전쟁 때 미군이 투하한 폭탄 탓에 웅덩이가 파이고 빗물이 고인 베트남의 ‘폭탄연못’ 사진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도 한다. 환경을 파괴한 인간의 원죄에 대한 작가의 고민이 묻어 있는 점이 어른들의 눈높이를 충족한 것 아닐까.
최근 한 아동문학 작가에게 들은 하소연이 있다. “우리나라는 유난히 아동문학을 아이들만 읽는 작품으로 한정하려는 경향이 있어요.” 너무 ‘뻔한 교훈’과 빡빡하게 들이민 ‘학습용 정보’를 전달하려는 목적성이 강하다는 지적이다. 동화책을 하나의 완성된 예술작품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분위기도 한몫한다. 이수지, 백희나 등 해외에서 극찬받는 작가들의 작품도 우리나라에선 ‘아동도서’로만 취급받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우리도 이미 알고 있다. 좋은 작품은 독자의 나이를 가리지 않는다. 프랑스 작가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1900∼1944)의 ‘어린 왕자’는 영원한 어른들의 동화다. 영국 작가 조앤 K 롤링(57)의 ‘해리포터’ 시리즈에 열광하는 건 성인들이 더하다. 어쩌면 가벼이 넘어갔던 아동문학 중에 우리네 인생을 보듬어줄 숨은 명작이 있었던 건 아닐까. 얼른 서점 아동도서 코너에 가서 책을 펼쳐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