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갤러리 110여개 서울로 모은 아트페어 현장 반응은 어땠을까
안녕하세요.
9월 2일부터 6일까지 열리는 아트페어 '프리즈 서울'을 맞아 미술계가 시끌벅적한 한 주 였습니다. 이번 주말까지 페어를 찾는 발길들로 서울이 분주할 것 같은데요. '영감한스푼'은 오늘 개막한 프리즈 서울을 찾아 현장 분위기를 담아왔습니다. 방문객들은 '해외를 가야만 볼 수 있는 작품을 서울에서 보니 기분이 좋다'며 들뜬 분위기였지만, 이 흥분이 가라앉았을 때 누가 웃고 울게 될 지를 생각하면 냉정해지는 하루였습니다.
저희는 '프리즈 서울'에 앞서 해외 미술계 인사들이 한국 작가의 작업실을 방문하는 프로그램 'Dive into Korean Art' 프로그램에도 다녀왔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아트페어에서는 볼 수 없는 한국 작가들의 예술을, 작품이 전시된 미술관이 아니라 작가가 작업하고 호흡하는 스튜디오를 직접 보여주자는 취지로 기획되었습니다. 현장 분위기 오늘 함께 전해드릴게요.
○ 프리즈 서울, 현장은 들떴지만 실속은 누구에게..?:
프리즈 서울 현장에서 만난 컬렉터를 비롯한 예술계 인사들은 해외를 가야만 볼 수 있는 작품을 직접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아트페어 개최에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현장을 떠나 냉정히 돌아보면 보이는 것들이 몇 가지 있었는데요. 장기적으로는 외국 갤러리와 아시아 컬렉터의 접점만 강화되는 것은 아닌지, 여기서 한국 작가들이 더욱 소외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우려가 나왔습니다.
○ 해외 미술계 인사들이 찾은 한국 작가의 작업실
프리즈 서울 개최를 맞아 한국을 찾는 해외 미술계 인사들을 대상으로 작업실을 방문하는 프로그램, 'Dive into Korean Art'가 8월 29일부터 31일까지 서울과 경기 양평을 오가며 진행되었습니다. 현장에서 미술계 인사들은 이미 한국 작가에 대해 자신이 알고 있던 바를 토대로 진지하게 질문하거나 적극적으로 쌓여 있는 작품을 꺼내 보기도 했습니다.
○ 프리즈 서울, 현장은 들떴지만 실속은 누구에게?
프리즈 사진 제공
피카소, 에곤 실레부터 리히터까지 서울에서 보다니!
우선 현장에서 만난 컬렉터, 관람객, 큐레이터 등 사람들의 반응은 들떠있었습니다. 특히 '프리즈 마스터스' 섹션을 인상 깊었던 공간으로 꼽은 의견이 많았습니다. 이 공간에서는 피카소와 에곤 실레처럼 누구나 잘 아는 근대 미술 거장들의 작품을 볼 수 있었기 때문에 '관람'으로서 의미를 부여하는 측면이 보였습니다.
"프리즈 마스터스 섹션에서 피카소 같은 고전 작품은 물론 고대 유물까지 볼 수 있어서 신기했어요. 데이미언 허스트 나비 작품이 있는 로빌란트 보에나 갤러리도 기억에 남습니다. 벨기에에서 온 귀여운 컬렉터 부부도 보고 저처럼 소규모로 컬렉팅하는 사람에게는 서울에서 이런 것을 볼 수 있다니 너무 즐거운 기회였어요! 저는 작품은 키아프에서 구매할 생각입니다. 젊은 작가인 장종환에 관심이 있어요." (홍진희, 컬렉터)
"해외에서 본 프리즈 아트페어는 실험적 느낌이 있어서 전시를 보는 것 같았는데 상대적으로 프리즈 서울은 상업적 느낌이 강했어요. 그럼에도 프리즈 마스터스 홀은 전시장처럼 느껴졌고, 함께 온 큐레이터들 모두 이 공간을 베스트로 꼽았습니다." (강정하, 금호미술관 큐레이터)
프리즈 사진 제공
"게르하르트 리히터와 게오르그 바젤리츠 같은 작품을 집에 두고 보기는 쉽지 않으니, 여기서 지금 샴페인을 들고 앉아서 감상하고 있었어요. 인상 깊었던 부스를 꼽는다면 단연 가고시안 이죠. 애콰벨라 갤러리도 오늘 보니 재밌었어요. 저는 원래 현장보다 pdf나 이메일로 구매를 하는 편이에요. 전체적인 분위기를 보고 또 내가 몰랐던 좋은 가격의 작품이 있나 알아볼 계획입니다. 지금은 글래드스톤 갤러리의 빅토르 만에 관심이 가네요." (익명 요청, 컬렉터)
1시간 만에 15점 판매한 하우저&워스
프리즈 서울 개막 첫날 오픈 1시간에 15점을 팔았다고 발표한 메가 갤러리 하우저&워스. 이 사진 속에서 가운데와 왼쪽 그림 작품이 팔렸다고 합니다. 하우저&워스 제공
유명 작가들이 대거 포진해있는 '메가 갤러리' 하우저&워스는 첫 날 판매 리포트를 발표했는데, 오픈 1시간 만에 15점을 팔았다고 합니다. 공개된 내용에 따르면 팔린 작품들 대부분은 한국의 컬렉터나 사립 미술관, 그리고 일부 아시아 컬렉터가 구매한 것으로 보입니다.
주요 판매 작품을 보면...
조지 콘도의 'Red Portrait Composition'(2022), 한국의 사립 미술관, 280만 달러
니콜라스 파티, 'Clouds'(2022), 아시아 컬렉터, 32만5000달러
안젤 오테로, Organic Summer(2022), 한국 사립 컬렉션, 17만5000달러
에이버리 싱어, JUUL(2021), 한국 사립 컬렉션, 15만 달러
근데...다 외국 작가에요
현장 취재를 마치고 든 생각은, 프리즈 주최측이 오래 전부터 강조해왔던 '한국 미술과의 연결성' 부분입니다. 사실 어떤 것을 강조한다는 것은 역으로 그 부분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맹점일 수도 있잖아요? 프리즈 서울을 보면서 해외에서만 볼 수 있는 작품을 본다니 즐거웠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판매'가 되는 것은 외국 작가라는 점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즉, 프리즈 서울의 본질이 외국 갤러리가 한국에 와서 작품을 파는 것이라면, 그게 어떻게 한국 미술과 연결이 되고 도움이 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남는다는 거죠. 현장에서 외국 작가에 관심이 간다는 이야기를 해 주신 컬렉터도 많았습니다.
"저는 김창열과 마이클 스코긴스 등의 작품을 컬렉팅해왔어요. 제가 기존 소장한 것과 결은 다르지만 뉴욕 기반의 Skarstedt 갤러리가 눈에 띄었습니다. 이 부스 앞에 KAWS 작품이 있었는데 코로나로 오랫동안 보지 못한 작품들을 직접 봐서 좋았어요. 미국 작가들이 좋았습니다."(우정우, 컬렉터)
다만 이러한 큰 미술 행사가 서울에서 열리는 것만으로 여러 가지 부대 효과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휠체어를 타고 '프리즈 서울' 현장에 온 김구림 작가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요.
"갤러리들은 아무래도 경쟁을 생각할 수밖에 없으니 프리즈 아트페어가 달갑지 않을 수 있겠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이렇게 나와서 작품을 보니 좋아요. 특히 젊은 작가들이 해외에 가지 않고 가까운 곳에서 작품을 보고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면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김구림, 작가)
"제가 알고 있던 대만이나 홍콩의 아시아 컬렉터 외에도 못 보던 컬렉터들이 서울을 방문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유럽에서 현장을 취재하러 온 에디터들도 많았어요. 이들이 프리즈만 보지 않고 키아프도 보고 갈테니, 전반적인 붐업이 이뤄지지 않을까요?"(이장욱, 스페이스K 큐레이터)
제작진은 이번주 프리즈 서울을 비롯해 여러 행사들을 취재하며 서울을 찾은 해외 미술인들이 한국 미술 '시장'의 성장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만, '한국 미술'은 잘 모른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오히려 미술보다는 K팝과 K컬처 이야기 하는 경우가 더 많기도 했고요. 그래서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었지만... 결국에는 메가 갤러리들을 '메기'로 삼아 한국 미술이 더 긴장하고 성장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의 의견도 들려주세요!
○ 해외 미술계 인사들이 찾은 한국 작가의 작업실
경기 양평의 김나영, 그레고리 마스 작가 작업실을 찾은 사람들. 왼쪽부터 아론 세자르 영국 델피나 파운데이션 창립이사, 지아지아 페이(전 유대인미술관 디지털 디렉터), 카린 카람 아트시 글로벌 영업&파트너십 부사장.
이런 가운데 프리즈 서울 개막을 앞둔 8월 31일, 경기도 양평에 해외에서 활동하는 큐레이터, 마케터, 기획자, 작품 판매 플랫폼 운영자 등 다양한 인사들이 모였습니다. 8월 29일부터 2박 3일간 진행된 'Dive into Korean Art'에 참가한 것인데요. 예술경영지원센터가 한국 작가를 알리기 위해 마련한 프로그램이었습니다. 프로그램 기획자인 김주원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실장, 윤혜정 국제갤러리 이사, 정일주 퍼블릭아트 편집장의 이야기와 함께 현장 분위기를 소개드리겠습니다.
"프리즈에 가면 이미 보던 것들이 또 나올 거에요"
31일 양평 작업실 방문에는 카린 카람 아트시(Artsy) 글로벌 영업&파트너십 부사장, 지아지아 페이 전 유대인미술관 디지털 디렉터&구겐하임 디지털마케팅 부국장, 크리스찬 루이텐 'Avant Art-online' 창립자, 아론 세자르 영국 델피나 파운데이션 창립이사 등 다양한 분야의 구성원이 참가했습니다.
그런데 미국 뉴욕에서 활동하고 있는 지아지아 페이가 프로그램 참여 소감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을 하더군요.
"'프리즈 서울'은 어차피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메가 갤러리들이 올 것이고, 그러면 거기서 보게 될 풍경도 미국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에요. 이미 봤던 것들보다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을 경험하고 싶은데, 작업실 방문이 그런 점에서 좋은 기회죠." (지아지아 페이, 미술관 디지털마케팅 전문가)
이 프로그램이 기획된 것도 같은 의도에서였습니다. 정일주 편집장은 이런 이야기를 들려 주었습니다.
"현대미술을 주도하는 작가 중엔 아트페어와 전혀 무관한 사람도 짐작보다 많아요. 예를 들어 첫날 작업실을 공개했던 최우람이나 이예승, 김아영, 전준호&문경원의 작품이 프리즈나 키아프에 자주 걸리진 않으니까요. 페어에 맞춰 방문한 인사에게 시장과는 상대적으로 거리가 있더라도 역량있는 작가를 다양하게 소개하고 싶었습니다."(정일주, 퍼블릭아트 편집장)
작업실이라서 할 수 있는 이야기
양평 서용선 작가의 작업실
특히 이들이 미술관이 아니라 작품이 쌓여 있는 작업실을 찾았다는 것도 새로운 포인트였습니다. 참가자들이 자유롭게 작업실을 돌아다니다가 작품을 꺼내어 보기도 하고, 또 작가에게 질문을 던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한 작가의 작품을 두고 미술관 큐레이터는 "우리 미술관 천고가 높아 디스플레이가 가능하다"고 묻고, 온라인 플랫폼 관계자는 "당신 작품을 온라인으로 소개할 때 유의할 점이 무엇인가"를 물었습니다. 레지던시를 운영하는 재단 이사는 "이렇게 조용한 곳에서 작업을 하면 기분이 어떠냐"고 묻기도 하더라구요.
현장에서는 '한국 미술을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으니 온라인으로도 이런 정보를 많이 공유해달라'거나, '해외 미술계와 한국 미술계의 교류가 더욱 많아지기를 바란다'는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관심은 충분하니, 재밌는 걸 어서 던져달라는 분위기였다고 해야할까요? 그런 점에서 오늘 레터는 한국에서 열심히 작업하고 계신 작가나 큐레이터분들에게 동기 부여가 되는 내용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영감 한 스푼’은 국내 미술관 전시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아래 링크로 구독 신청을 하시면 매주 금요일 아침 7시에 뉴스레터를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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