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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종양 수술후 나를 위한 삶 시작… “동네아저씨로 사는 게 너무 행복” [서영아의 100세 카페]

입력 | 2022-09-03 03:00:00

[이런 인생 2막]설레는 인생 찾은 유창선 정치평론가
수술 후유증 탓 예순에 다시 걸음마
편 가르는 세상은 성찰의 자유 없어
재활 과정서 달리기 재미에 빠져



유창선 박사는 ‘카공(카페공부)족’이다. 매일 오전 9시면 동네 카페에 착석해 공부와 글쓰기를 시작한다. 수십 년간 방송국을 오가면서 자투리 시간에 카페를 활용하던 습관이 몸에 붙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한국의 1세대 정치평론가로 꼽히는 유창선 박사(62)는 요즘 ‘두 번째 삶’이란 표현을 많이 쓴다. 3년 전 느닷없이 찾아온 뇌종양 수술로 죽음의 문턱을 밟았고, 8개월 사투 끝에 생환했다. 그 뒤 삶의 모든 게 바뀌었다. 지난달 29일 서울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나이 예순, 걸음마부터 다시 시작하다
2019년 뇌 자기공명영상(MRI) 검사에서 연수(숨골) 부위에 꽤 오래된 종양이 발견됐다. 연수는 생명 유지에 중요한 반사중추와 뇌 신경세포들이 몰린 부위다. 의사는 종양의 위치가 나쁘다며 ‘(종양 자체는) 양성이지만 악성’이라 했다. 10시간에 걸친 대수술로 종양은 깨끗이 제거됐지만 엄청난 후유증이 남았다. 혈압 조절이 안 돼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앉기만 해도 의식을 잃었고 혀가 마비돼 말을 할 수 없었다. 식도 괄약근이 열리지 않아 8개월 동안 튜브로 경관식을 했다.

그의 얘기를 듣다 보면 자기 발로 걸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를 실감하게 된다. “악전고투 끝에 조금씩 회복돼 걸어서 화장실에 가고 세면대에서 세수를 할 수 있게 된 날, 인간으로서 당당함을 느꼈다. 걷는 것, 먹는 것, 말하는 것, 무엇 하나 당연하게 되는 건 없었다. 그게 가능하다는 게 얼마나 대단하고 감사한 일인지.”

입원할 때는 열흘 정도면 퇴원할 줄 알았지만, 8개월(대학병원 2개월, 재활병원 6개월) 뒤에야 집에 돌아갈 수 있었다. 걷는 것부터 다시 시작하는 삶, 그에게 예순 살은 그렇게 찾아왔다.


그는 ‘살아있음을 확인하려고’ 수술 이틀 뒤부터 중환자실 침대에 누워 휴대전화에 글을 썼다. 두 달 뒤에는 시사주간지에 칼럼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써낸 책이 퇴원 전 세상에 나온 ‘나를 위해 살기로 했다’(사우)이다. 최근에는 ‘나이 든다는 것은 생각만큼 슬프지 않다’는 부제가 붙은 에세이집 ‘나를 찾는 시간’(새빛·사진)을 펴냈다.

―‘나를 찾는다’는 표현의 의미는….

“‘행복하고 싶은’ 내 본성 앞에 정직한 삶을 살겠다는 겁니다. 수술 뒤 만신창이 몸을 안고 투병과 재활의 시간을 거쳤습니다. 이렇게 되니 오히려 긍정의 정서가 지배하더군요. 가장 힘이 됐던 것은 나를 살리려고 애쓰던 가족이었습니다. 최후에 돌아갈 곳은 가족이구나. 인생 마지막에는 가족과 함께 사랑하며 늙어가고 가족 안에서 죽어가겠구나. 그때까지 남은 시간 어떻게 좋은 사람으로 나이 들어갈 것인지 모색해야겠다고.”

―그간 행복을 뒷전에 두고 살아온 건가요.


“세상이 불행해 보이는데 나만 행복해선 안 될 것 같은 중압감을 젊은 시절부터 안고 살았죠. 나이 들어서도 나는 솔직히 행복한데 그런 표정을 지어서는 안 될 것 같은 허위의식이랄까, 엄숙주의가 있었어요. 하지만 이제는 페이스북에도 행복하다는 표시를 합니다. ‘오늘 달리니까 너무 좋다’ ‘한강 풍경이 너무 예쁘다’…. 그게 가장 자연스럽고 내 본성에 정직하게 사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의 중압감을 내려놓고 자신으로 돌아가니 자연스레 ‘동네아저씨’로 살아가게 됐다. 글 쓰고 운동하며 가족과 교감하는 생활. 이것이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정도로 기쁘고 소중하다고 한다.
○진영이 갈린 세상서 자유로운 외톨이의 길 선택
대학 시절 학보사 기자였고 운동권 서적 출판으로 몇 개월 구치소 생활도 했다. 현실 정치에 발을 담그기도 했지만 스스로 정치인이 될 마음이 도무지 생기지 않았다. 그즈음 우연히 방송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정치평론을 직업으로 하는 길로 나섰다. 마침 ‘노풍(盧風)’을 타고 시사프로그램 바람이 불면서 정치평론가로서 전성기를 맞았다. 종편도 없던 시절, 공중파에만 하루 5∼6개씩 출연했다. 다만 그는 당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서도 비판할 것은 비판하면서 ‘노빠’들로부터 공격을 받아야 했다.

방송은 외풍에 약해 정권이 바뀌자 고정출연 프로그램에서 줄줄이 하차 통보를 받았다. 방송이 출마자들의 대기소같이 변해가는 것도 거북함을 넘어 모욕감을 안겨줬다. 갈수록 진영이 갈라지자 그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고독의 길을 택했다. 어느 한 진영에 속하는 순간, 자기 진영에 대해 성찰하는 자유를 잃는 게 두려웠다. 박근혜 정부 때는 3년 동안 동네 독서실에 들어가 인문학 공부를 하고 인문학 책을 써내기도 했다.

―건강은 어떠십니까.

“이제 일상생활은 조심조심 정상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혀의 마비가 조금 남았고 근육통도 심합니다. 식도를 보톡스 치료로 열고 삼키는 훈련을 해 먹을 수도 있게 됐어요. 이 정도로 회복된 것도 기적이라고들 합니다. 남은 후유증은 제가 안고 살아가야죠.”

모든 프로그램에서 하루아침에 하차당한 뒤 인터넷방송으로 시사평론을 이어간 시절도 있었다. 2009년 아프리카TV 시절. 유창선 씨 제공

그는 여전히 ‘정치평론가’다. 방송은 사실상 은퇴했지만 신문 잡지 등 8개 매체에 고정칼럼을 쓴다. 매일 늦어도 오전 9시 이전에는 집 근처 카페에 착석해 공부와 글쓰기 작업을 한다. 페이스북을 통한 소통도 부지런히 하고 있다.

그는 인터뷰 중 “끝난 줄 알았는데 끝난 게 아니었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 예컨대 생계 문제도 궁금했는데, 원고료 수입이 꽤 된다고 자랑한다.

“제가 병원에 있을 때 큰아이가 취직했는데 퇴원하면 매달 용돈을 주겠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한 1년 주더니 슬그머니 그만 뒀네요. ‘어? 나름 버네?’라고 생각했는지…. 다행히도 아내가 들어놓은 연금저축이 있었고 곧 국민연금도 타게 됩니다. 살림 규모를 많이 줄이고 수입 지출 열심히 계산하면서 살고 있죠. 둘째딸도 최근 취직이 돼 두 아이 모두 앞가림은 하게 됐으니, 저희 부부만 잘 살면 됩니다.”

3개월 전 우연히 트레일런(달리기) 모임에 참석하면서 새로운 세상에 눈을 떴다.

“제가 몸을 치유하려고 엄청나게 걸었어요. 그걸 아는 지인이 같이 걷자며 불러줬는데, 10여 명이 처음엔 걷다가 ‘이제 뜁시다’ 하고 달리기 시작하는 거예요. 혈압이 불규칙해 걷는 것도 조심하던 때거든요. 그런데 그분들 따라 조금 달려 보니 기분이 너무 좋더라고요. 제가 달린 건 500m 정도지만 그분들의 에너지가 전해져 오는 듯했어요. 그 뒤로 혼자서도 그 기분을 느끼기 위해 많이 달렸습니다. 사람 몸은 신기해서 뭐든 꾸준히 하면 조금씩 늡니다. 이제는 한 번에 5km 정도는 달릴 수 있어요.”

‘달리기는 장비빨’이라며 운동복이나 장비 쇼핑에도 푹 빠져 있다고 한다.

“아침에 눈뜨면 늘 뉴스 검색부터 했는데 요즘은 러닝복 쇼핑코너를 보고 있습니다. 그런 제 모습이 좋아요. 석양이 떨어지는 한강다리를 달리며 건너는 기분이란…. 이걸 모르고 죽었다면 억울했을 겁니다.”
○후유증 남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다
6월 현 정부에서 자리 제안을 받았지만 정중히 거절했다. 인생에서 가장 고즈넉하게 동네아저씨로 살아가는 시간을 흔들고 싶지 않았다. 정부 일을 한다면 여기저기 쓰는 글에 구애받거나 비판할 자유를 잃는다는 얘기이기도 했다.

―수술이 없었다면 박사님의 60대는 어떻게 흘러갔을까요.

“여전히 방송 출연하고 글 쓰고 살았겠죠. 이 고즈넉한 세계의 느낌을 끝내 몰랐을 수도 있고요. 투병 이후 다른 인생을 맛본 지금, 그런 생각만 해도 한숨이 나옵니다. 몸은 불편해졌지만 삶의 질은 오히려 좋아졌어요. 하고 싶은 것 하며 수시로 ‘참, 좋다’는 느낌이 옵니다. 평생 느껴보지 못한 충만함이 문득문득 다가와요. ‘와, 참 좋구나’ 하고. 가령 3∼4년 전만 해도 내가 달리기하는 모습은 상상도 못했죠. 내가 이러고 살고 있을 줄이야.”

그는 9월과 10월 각각 열리는 마라톤대회 5km 단축코스에 도전한다. “이 정도도 감사한 일”이라면서도 내년에는 10km 코스에 나설 것을 꿈꾼다.

―책 표지의 ‘나이 든다는 것은 생각만큼 슬프지 않다’는 뜻은….

“평소 나이 60을 넘으면 인생을 정리하는 시간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요즘 앞날에 대한 기대, 꿈, 설렘을 가질 수 있다는 걸 체감하고 있어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 거죠.”




서영아 기자 sy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