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열 사회부 차장
“박현숙 씨예요. 가끔 이렇게 먼저 전화를 주시네요.”
박 씨의 남편 허승민 소방위는 2016년 5월 강원 태백 강풍 피해 현장을 수습하다 머리를 다쳐 세상을 떠났다. 백일 된 딸 소윤이를 남긴 채였다. 박 씨는 그저 평범하게 딸을 키우고 싶어 눈물을 꾹 참고 아무렇지 않은 듯 지내보려 했다. 하지만 끝내 곪은 눈물이 덧나고 공황장애까지 겪으며 고통의 시간을 보냈다. 히어로콘텐츠팀은 박 씨와 같은 ‘남겨진 사람들’을 5개월간 취재했고, 그 결과물이 이번 시리즈였다.
TAPS는 ‘동반자적 연대’라는 원칙 아래 순직 군인 유가족으로 구성된 ‘돌봄 전담팀’도 운영한다. 유사한 경험을 한 사람들끼리 슬픔을 나누고 돕도록 하는 게 심리 안정에 가장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에 따른 것이다. 다른 유족을 돕고 싶은 유족은 순직 1년 후부터 일정한 교육과 훈련을 받은 뒤 돌봄 전담팀에 합류할 수 있다.
국내엔 이런 시스템이 전무하다. 먼저 TAPS와 같은 유족 지원 전문단체가 없다. 사단법인 성격의 유족회가 있지만 예산과 인력이 턱없이 부족해 ‘24시간 헬프라인’은 꿈도 꾸지 못한다. 순직소방공무원추모기념회의 연간 예산은 1억 원 안팎인 반면 전미순직소방관재단(NFFF)은 매년 100억 원을 유족 지원에 쓴다.
만약 국내에도 유족들을 위한 헬프라인이 있었다면, 순직 사고 발생 직후부터 TAPS의 ‘돌봄 전담팀’과 같은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면 박 씨는 본인이 원했던 대로 ‘아무렇지 않게’ 지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팀장과의 통화에서 박 씨는 다른 유족들을 도울 방법을 고민하고 있었다. 만약 TAPS처럼 ‘돌봄 전담팀’을 운영하는 유족 지원 전문단체가 국내에도 있었다면 박 씨는 그 누구보다 앞장섰을 것이다.
유가족들의 ‘선택권’은 지금보다 넓어져야 한다. 상담이 필요할 땐 24시간 전문가와 통화할 수 있고, 다른 유족을 돕고 싶을 땐 마음껏 도울 수 있는 선택권. 그리고 그 선택을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전문단체. ‘일류 보훈’을 추구한다는 현 정부가 깊이 고민할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