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주 한국테니스진흥협회(KATA) 사무차장이 한 대회에서 우승한 뒤 우승컵을 들고 포즈를 취했다. 고미주 사무차장 제공.
고미주 한국테니스진흥협회(KATA) 사무차장(55)은 남편 곽종배 인천연수구체육회 회장(60)의 권유로 연애시절인 22살 때 처음 라켓을 잡은 뒤 30년 넘게 코트를 누비고 있다.
“본격적으로 테니스를 친 것은 결혼하고 첫 애를 낳은 뒤인 1996년부터예요. 부부들끼리 모여 테니스 치는 모임이 있었는데 서로 애도 봐주며 테니스를 즐기는 재미가 너무 좋았어요. 운이 좋았죠. 선수 출신 부부도 있어서 잘 배울 수 있었어요. 전 잘 못 쳤는데 라인 그어주고 심판도 봐주면 선수 출신들이 포핸드 백핸드 난타를 쳐줬죠. 그러면서 실력이 쌓였어요.”
고미주 한국테니스진흥협회(KATA) 사무차장(왼쪽)이 2019년 한 프로아마대회에서 테니스 스승인 공기훈 코치와 짝을 이뤄 우승한 뒤 포즈를 취했다. 고미주 사무차장 제공.
한국 동호인 테니스에서 고 사무차장은 유명인사다. 지금까지 동호인 대회에서 130회 가까이 우승을 차지했다. 여성부는 개나리부(초급)와 국화부(고급)가 있는데 국화부에서 랭킹 1위를 무려 12년 연속하기도 했다. 동호인 대회는 가능한 많은 사람이 참가할 수 있도록 복식과 혼합복식만 열린다. A~E 등급이 있어 챔피언끼리는 한 조가 될 수 없는 규정도 있다. 고 사무차장은 30대 때 남편 곽 회장과 혼합복식에 출전해 2번 우승한 적도 있다.
“처음엔 남편에게 배웠고 나중엔 개인 레슨을 받았어요. 아직 게임할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29세 때 첫 대회에 나가서 개나리부 결승까지 올랐는데 30세 이상만 참가 가능하다고 해서 실격당한 적이 있죠. 30세 때 개나리부 우승했고 바로 국화부로 올라가서도 우승했죠. 국화부에서만 120번 넘게 우승했습니다.”
2019년엔 ‘테니스 스승’인 공기훈 코치와 짝을 이뤄 업스트림테니스 동호회 초청 국내 최강 프로암 혼합복식 인비테이셔날에서 우승해 상금 600만 원을 받기도 했다. 운동선수 출신은 아니었지만 ‘스포츠 본능’이 있었다. 그는 “대회 처음 나가면 대부분 떨지만 전 어떤 상황에서도 떨지 않았다. 그게 장점인 것 같다. 운동선수는 아니었지만 학창시절 달리기는 잘했다”고 했다. 테니스 입문 초창기엔 “코트에서 살았다”고 할 정도로 거의 매일 테니스를 친 것도 실력 향상의 원동력이었다. 그는 “집 앞 테니스코트로 유모차 끌고 가서 하루 종일 있다 집에 왔다. 그 땐 정말 테니스에 미쳐 살았다”고 했다.
고미주 한국테니스진흥협회(KATA) 사무차장이 경기 남양주체육문화센터 테니스코트에서 백핸드 스트로크를 하고 있다. 22세에 테니스 라켓을 처음 잡은 그는 30년 넘게 코트를 누비며 건강하고 행복한 인생을 개척하고 있다. 남양주=이훈구 기자 ufo@donga.com
“가끔 제가 테니스 선수를 했으면 어땠을까도 생각해봤어요. 주위에서 선수했으면 정말 잘했을 것 같다고 해서요. 운동신경 좋은 딸도 선수 했으면 어땠을까 생각도 해봤죠. 하지만 이렇게 즐기고 있는 게 더 좋은 것 같아요.”
동호인 최강으로 군림하며 얻은 혜택도 많다. 라켓부터 유니폼, 운동화까지 후원을 받았다. 윔블던, US오픈, 프랑스오픈, 호주오픈 등 테니스 4대 메이저대회도 현장에서 많이 봤다. KATA가 챔피언들에게 주는 기회였다.
고미주 한국테니스진흥협회(KATA) 사무차장이 경기 남양주체육문화센터 테니스코트에서 라켓을 들고 활짝 웃고 있다. 남양주=이훈구 기자 ufo@donga.com
메이저대회 현장을 지켜보며 메이저 22승을 거둔 라파엘 나달(36·스페인)의 팬이 됐다.
“어떤 상황에서도 볼 하나도 포기하지 않는 투지가 너무 좋아요. 정말 열심히 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요. 나달 플레이를 본 사람은 다 나달 사랑에 빠져요.”
테니스에 대한 열정이 넘친 그를 본 성기춘 KATA 회장(72)이 2000년 초반 사무차장으로 영입했다. 1987년 만들어진 여성테니스 동호회 풀잎클럽의 회장을 최근까지 맡기도 했다. 고 사무차장은 개인사업을 하면서도 20년 넘게 동호인 테니스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로 2019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받았다. 그는 “언제 이런 상을 받아보겠냐?”며 “가문의 영광”이라고 했다.
“테니스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딸 결혼할 때였죠. 저와 남편이 한조, 사위와 사돈이 한조로 복식을 치기도 했어요. 지금도 가끔 사돈 만나서 테니스 칩니다. 또 테니스의 장점은 다양한 분야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사업가, 의사, 변호사, 정치인까지…. 테니스도 치고 세상 돌아가는 얘기도 하고. 그 재미도 쏠쏠합니다.”
고미주 한국테니스진흥협회(KATA) 사무차장이 동호인 테니스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로 2019년 문화체육관광부 상을 받은 뒤 포즈를 취했다. 고미주 사무차장 제공.
요즘은 테니스를 주 3~4회 치고 있다. 매주 화요일 모이는 풀잎클럽과 매주 화요일 목요일 일요일 치는 명문클럽을 나가고 있다. 동호인 남녀 최고수들이 모인 명문클럽은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테니스를 친다. 그는 집이 있는 인천에서 경기 남양주체육문화센터 테니스코트까지 오가며 테니스를 치고 있다.
고 사무차장은 최근 열린 2022서울컵 동호인테니스대회에서 32강에서 졌다. “개나리부에서 우승하고 올라온 국화부 초보에게 경험 기회를 주기 위해서 함께 나갔는데 졌다”고 했다. 이젠 우승도 중요하지만 테니스 자체를 즐기고 있다.
“이젠 제가 ‘언니’ 소리를 가장 많이 들어요. 그만큼 나이를 먹었단 얘기겠죠? 대회 우승하려면 연습도 많이 해야 하고, 그렇다보면 손목도 아프고. 이젠 즐기려고 합니다. 다른 것도 좀 하면서 살고 싶어요. 주 3~4회 치면서 이젠 인생을 건강하게 즐길 겁니다.”
고미주 한국테니스진흥협회(KATA) 사무차장(오른쪽에서 두 번째)과 남편 곽종배 인천연수구체육회 회장(오른쪽)이 2020년 딸 결혼 상견례를 인천 송도의 테니스코트에서 한 뒤 양가 가족들과 포즈를 취했다. 왼쪽에서 세 번째와 네 번째가 사돈 부부. 오른쪽에서 세 번째가 고 사무차장 딸, 그 옆이 사위다. 왼쪽은 고 사무차장 사돈 아들 부부. 고미주 사무차장 제공.
고 사무차장은 최근 골프에도 입문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여파로 테니스 코트는 한때 폐쇄됐지만 골프장은 폐쇄되지 않아 골프에 발을 들여놓게 됐다. 그는 “테니스는 일정한 공간에서 다양한 기술을 발휘하며 격렬하게 뛰는 맛이 있다면 골프는 자연 속에서 마음의 여유를 찾으며 즐길 수 있다”고 했다. 테니스와 골프가 주는 재미가 다르기 때문에 함께 즐길 생각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테니스가 더 좋다.
“테니스는 생활이죠. 매일 밥 먹듯 안 하면 안 되는…. 가족보다 동호인들과 더 자주 만나요. 누가 안 나오면 무슨 일이 있나 걱정이 되죠. 평생 이렇게 살다보니 이젠 테니스 없인 살 수 없을 것 같아요. 테니스 때문에 행복하고 건강합니다.”
양종구기자 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