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0월
▽단골 손님을 주로 받는 가게는 간판이 작습니다. 심지어 간판 없이 영업을 하는 곳도 있습니다. 예약 손님들만으로 말이죠. 보일락 말락 하게 숨겨두기도 합니다. 위치가 크게 중요하지 않으니 골목 2~3층에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서울 ‘힙지로’나 청담동 골목길엔 꼭꼭 숨어 있는 레스토랑이나 와인바가 있습니다. 신비주의 전략이기도 하고, 손님 입장에선 친구들을 데리고 골목골목을 지나 간판도 없는 곳을 훅 열고 들어가면 친구들에게 “와, 넌 어떻게 이런 델 다 아냐!”고 칭찬듣기에도 좋죠. 반면 유동인구가 많은 곳은 ‘뜨내기’ 손님을 붙잡기 위해 간판이 크고 눈에 띄게 화려하죠.
2000년대 초반 수원의 한 상가 건물
홍콩 관광청 홈페이지
미국 뉴욕 타임스퀘어 / 동아일보DB
아는 글씨는 인지가 되니 텍스트(문자·내용) 정보를 머릿속에서 해독해야 합니다. 반면 모르는 글자는 정보가 아닙니다. 그냥 낯설고 비현실적인 이미지죠. 이색·이국적인 도시의 멋들어진 장식품입니다. 현실이 아닌 것은 모두 낭만적이니까요. 지난 5월21일자 고양이눈썹에 ‘낭만에 대한’ 이야기를 참고하시죠.
▽최근 각 지방자치단체들이 간판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기존 간판들도 보기 흉하지 않게 정비 중입니다만, 규제와 관련 없는 유리창에는 여전히 큰 글씨를 붙인다던가, 출입문을 2개 만든 뒤 열어 둬 입간판 역할을 하게 하는 편법도 유행합니다.
간판도 건물 외관 디자인의 일부이고 우리 곁에 상존하는 도시의 일부입니다. 미우나 고우나 같이 가야 할 도시의 소재이지만 이왕이면 오래 보아도 지루하지 않게 잘 꾸미면 좋겠습니다.
2021년 2월
2021년 12월
페이스북 캡쳐 / 이분들에겐 저 간판이 무척 ‘힙’해 보였나 봅니다.
영화 스틸컷 / ‘블레이드 러너’(1982년)에서 묘사된 2019년의 LA. 당시엔 일본의 ‘경제 침공’이 미국인들에겐 공포의 대상이었다고 합니다. LA 거리의 간판을 통해 디스토피아를 묘사했습니다.
영화 스틸컷 / 속편으로 제작된 ‘블레이드 러너 2049’(2017년)에는 한글 간판들도 종종 등장합니다. 한류의 영향이라 봐도 될까요?
신원건기자 laput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