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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문해력 논란, 문해력 아닌 소통력 저하 때문” [이진구 기자의 對話]

입력 | 2022-09-05 03:00:00

서영아 국가문해교육센터장




《최근 우리 사회에서 ‘심심(甚深)하다’(마음의 표현 정도가 매우 깊고 간절하다)의 의미를 놓고 문해력 저하 논란이 일었다. ‘심심한 사과’의 ‘심심’을 ‘하는 일 없이 지루하고 재미없음’으로 이해한 누리꾼들이 공지 글을 올린 업체에 부적절한 표현이라고 항의를 한 것. 댓글 하나에서 시작된 이 문제 제기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동조하면서 사회적 이슈로 번졌다. 서영아 국가문해교육센터장은 “문해력은 단순히 어떤 단어의 뜻을 알고 모르는 능력을 말하는 게 아닌데 최근의 문해력 논란은 다소 초점이 어긋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서영아 국가문해교육센터장은 “특정 단어를 아는지 모르는지로 문해력의 높고 낮음을 말할 수는 없다”며 “우리도 그렇고 OECD, 유네스코 등 국제기구에서도 그런 방식으로 문해력을 평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이진구 기자

―심심하다 외에도 사흘, 금일(今日) 등의 뜻을 모른다고 문해력 논란이 일지 않았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 성인 문해 능력 조사’는 문해력을 ‘가정, 일터 등 일상생활에서 문서화된 정보를 이해·활용하고, 지식과 잠재력을 넓힐 수 있는 능력’으로 정의한다. 성인이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능력을 말하는데, 단순히 어떤 특정한 단어를 알고 모르는 걸 가지고 문해력이 있다, 없다고 하지 않는다. 모르면 찾아보면 되니까.” (뜻을 몰라도 찾아보면 문해력이 있다는 것인가.) “그렇다. 아는 단어라는 게 사람마다 차이가 있고, 또 알게 되는 시기가 다르기 때문에 특정 시점에 어떤 단어를 아는지 여부가 문해력을 가늠하는 기준이 될 수는 없다. 무엇보다 그런 대표성을 부여받는 단어나 문장들이 없다. 당연히 단어 뜻을 물어보는 식으로 문해력을 평가하지도 않고.”

―그런데 왜 그렇게 사회적 이슈로 번졌을까.

“정확히 알 수야 없겠지만 묘하게 논리가 확대된 면이 있는데… 문해력(文解力)을 글자 그대로 문자를 읽고 이해하는 좁은 의미로만 생각하다 보니 벌어진 일이 아닌가 싶다. 그러다 보니 ‘이런 단어도 몰라?’ ‘그럼 글도 이해 못 하는 것 아니야?’ ‘어쩌다 교육이 이렇게 된 거지?’ 이렇게 커진 게 아닌지…. 단어를 알고 문장을 이해하는 게 기본적으로 필요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심심하다’ 논란도 차분하게 생각하면 그렇게까지 문해력 논란으로 번질 일은 아닐 수 있다.”

―어떤 면에서 그런가.

“‘심심하다’도 그렇고 최근 대부분의 문해력 논란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벌어진다. SNS는 약관을 읽고, 동의하고, 가입하는 절차를 거쳐야 이용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모르거나 애매한 부분이 있다면 검색도 하고 친구들에게 묻기도 했을 거다. 문해력의 진정한 의미인 일상생활을 영위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단지 실생활에서 잘 안 쓰는 단어 뜻을 몰랐다고 문해력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다시 말하지만 문해력은 단어 실력 테스트가 아니다. 어휘력이 부족하다고는 할 수 있겠지만…. 오히려 최근 문해력 논란은 문해력이 아니라 소통력 저하 때문이 아닌가 싶다.”

최근 문해력 논란을 촉발시켰던 한 업체의 공지 문. 논란이 일자 업체 측은 ‘심심한’을 ‘진심으로’로 수정했다.



―소통력 저하?

“내가 모를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인터넷 검색을 하거나 주변에 물어보려는 마음…. 상대가 모르면 ‘그 단어는 이런 뜻이다’라고 알려주려는 마음. 그런 마음이 있었다면 논란 자체가 벌어지지 않았을 거다. 그런데 한쪽은 왜 이런 단어를 쓰냐며 언성을 높였고, 다른 한쪽은 그런 것도 모르냐, 한심하다며 조롱했다. 문해력 저하가 아니라 소통력 저하가 더 큰 문제가 아닌지…. 그래서 우리가 문해 교육을 할 때도 단순히 글과 문장을 이해하는 걸 최종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모르는 것을 묻고, 서로 협력해 생활에 필요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까지 경험을 시킨다. 그런 면에서 보면 ‘심심하다’ 논란은 또다른 측면에서 문해력 저하를 보여주는 게 아닌가 싶다. 한 번만 찾아보거나 물어봐서 모르는 걸 알아냈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테니까.”

―실제 문해력은 어떻게 평가하나.

“최근 논란이 된 것처럼 단어 뜻을 아는지를 묻지는 않는다. 3년마다 18세 이상 성인 4400만 명 중 1만 명 정도를 표본 추출해 직접 대면 조사를 하는데 숫자 읽기, 지명 쓰기 등 아주 기본적인 것부터 약 복용량 이해 및 측정, 인터넷 정보 이해, 전기요금 계산 등 다소 어려운 것까지 주관식·객관식 43개 문항을 풀게 한다. 3분의 2 이상을 맞히면 일상생활에 필요한 충분한 문해력이 있다고 평가하는데, 학력으로 비교하면 중학교 졸업 이상 수준을 말한다.”

―‘일상생활에 어려움이 있는 정도’라는 게 감이 잘 안 오는데….

“2020년 조사에서 성인 4400만 명 중 200만 명(4.5%)이 기본적인 읽기, 쓰기, 셈하기가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기본적인 읽기, 쓰기, 셈하기는 되지만 일상생활 활용이 쉽지 않은 사람도 180만 명(4.2%)이나 된다. 이런 분들 중에는 은행에서 통장을 만들지 못해 평생 통장 없이 사는 분들도 있다. 또 500만 명(11.4%)은 가정, 여가 등 단순한 일상생활에는 활용 가능하지만 경제활동 등 복잡한 일상생활에 활용하는 건 쉽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모두 880만 명(20.2%)에 달하는데 성인 5명 중 한 명이 문해력이 낮아 일상생활에 어려움이 있는 셈이다.”

서센터장은 문해력 수준이 낮을수록 정치에 대한 관심이 떨어져 분석적인 사고를 높히기 위해 문해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장승윤기자 tomato99@donga.com


―지금 대한민국에 ‘문맹’인 분들이 200만 명이나 된다는 건가.

“문맹, 까막눈이라는 말이 너무 안 좋아서 우리는 비문해자라고 부르는데 고령층이 많기는 하지만 10∼40대도 있다. 이분들은 그래서 거의 집에서 멀리 나가질 않는다. 버스를 탈 수도 없고, 글을 모르니 길을 잃기도 쉬우니까. 당연히 소득도 굉장히 낮을 수밖에 없다. 대도시, 고학력 분들이 들으면 ‘설마…’ 하겠지만 인구주택총조사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 저학력 인구가 400만 명 정도나 된다.” (저학력이라면….) “중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중퇴 이하를 말한다. 성인 10명 중 한 명 정도가 중학교 중퇴 이하다.”

―선진국은 문해력 강화를 굉장히 중요한 정책으로 시행하는 것 같던데….

“프랑스는 성인의 약 7%가 문해 수준이 낮은 걸로 보고 있다. 이 때문에 비문해퇴치사무국이라는 국가 정책기구를 두고 있고, 정기적으로 국민의 문해 수준을 조사한다.” (낮다는 게 어느 정도를 말하는 건가.) “읽고 쓰기, 셈하기가 안 되거나 글을 읽고 쓰기는 해도 일상생활에 활용이 미흡한 수준이라고 보면 된다. 이 때문에 국가가 정책적으로 관련 광고도 낸다.”

―‘아는 게 힘이다’ 이런 종류인가.

“하하하. 자동차 광고처럼 보이는 포스터인데 설명을 읽으면 자동차 광고가 아니라 다른 광고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리고 설명 아래 ‘주변에 이 광고를 자동차 광고로 이해하는 사람이 있으면 글을 모르는 것이니 가까운 교육기관을 소개해 줘라’고 돼있다. 국제기구들도 문해력을 중요하게 여기는 건 마찬가지다. OECD는 조사 지표를 만들어서 회원국끼리 문해 능력 수준을 비교하고 있다. 물론 조사도 하고 있고. 유네스코(UNESCO), 유럽연합(EU)은 문해 능력을 사회경제적 발전은 물론이고 민주주의 가치 실현을 위해서도 반드시 갖춰야 할 기초 능력으로 여기고 있다.”

―문해력과 민주주의가 어떻게 연결된다는 건가.

“조사를 해보면 문해력 수준이 낮을수록 정치에 대한 관심이 떨어지는 경향을 보인다. 반대로 문해력이 높으면 정치 관심이 높다.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구성원들이 비판적이고 분석적인 사고를 해야 하고, 사실과 의견도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런데 문해력이 떨어지면 이런 사고를 하기 어렵다.” (우리 사회가 자꾸만 남의 말은 안 듣고 극단적으로 치닫는 걸 보면 확실히 문해력이 떨어진 것 같기는 하다.) “하하하. 그렇게 생각할 수도….”

※세계적인 인지신경학자인 메리언 울프 교수는 저서 ‘다시, 책으로’에서 “민주주의의 가장 큰 걸림돌은 비판적이고 분석적인 시민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고, 수준 높은 읽기를 할 수 없는 이들은 비판적이고 분석적인 사고를 하지 못한다. 문해력 저하가 민주주의의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가문해교육센터성인 문해 교육을 위해 2016년 출범한 국가평생교육진흥원 산하 기구. 전국 지자체, 학교, 평생교육시설, 비영리 민간단체 등과 함께 연간 7만여 명을 교육하고 있으며, 3년마다 전국 성인문해능력조사를 시행하고 있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