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S오픈 끝으로 27년 선수생활 은퇴… 18세 첫 우승후 메이저 23회 정상 산후 우울증-번아웃에도 코트 복귀 ‘여자 흑인 선수’ 유리천장 깨뜨려 엄마-벤처투자자로 인생 2막
세리나 윌리엄스가 3일 US오픈 테니스 대회 여자 단식 3회전에서 패한 뒤 미국 뉴욕 빌리 진 킹 테니스센터 메인 경기장 아서애시 코트를 가득 채운 관중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윌리엄스는 “제 편에서 수십년간, 말 그대로 수십 년을 응원해주신 모든 분께 감사하다”며 눈물을 흘렸다. 뉴욕=AP 뉴시스
“난 한 번도 포기한 적이 없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세리나 윌리엄스(41·미국)는 3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US오픈 테니스 대회 여자 단식 3회전에서 아일라 톰랴노비치(46위·호주·29)에게 1-2(5-7, 7-6, 1-6)로 패한 뒤 이렇게 말했다.
윌리엄스는 이날 게임 스코어 1-5로 뒤진 3세트 7번째 게임에서 30-40으로 뒤져 탈락 위기를 맞았다. 이미 승부의 추가 기울고 경기 시간도 3시간을 넘긴 상태였지만 윌리엄스는 선수 생활 내내 그랬던 것처럼 포기를 몰랐다. 듀스가 여덟 번 이어진 뒤에야 윌리엄스가 받아친 공이 네트에 걸리며 경기가 끝났다.
윌리엄스는 이후 임신 2개월 차에 출전했던 2017년 호주 오픈까지 메이저 대회에서 통산 23차례 우승을 차지했다. 프로 선수가 메이저 대회에 출전할 수 있게 된 오픈 시대(1968년) 이후 남녀 단식을 통틀어 최다 우승 기록이다. 2012년 런던 대회에서는 올림픽 금메달도 목에 걸었다.
윌리엄스는 부상, 산후 우울증, 번아웃 등 어려움을 겪은 뒤에도 늘 다시 코트로 돌아와 승자가 됐다. 은퇴를 선언하고 참가한 이번 대회 때도 1회전을 통과하지 못할 것이라는 평가가 우세했다. 하지만 윌리엄스는 2회전에서 세계 랭킹 2위 아네트 콘타베이트(27·에스토니아)까지 꺾는 반전으로 자신이 늘 한계를 이겨내는 선수였음을 상기시켰다.
선수 생활 내내 ‘여자 흑인 선수’인 자신에게 놓였던 유리천장을 깨온 윌리엄스의 유산은 이미 다음 세대로 이어지고 있다. 윌리엄스가 시작할 때만 해도 테니스는 ‘백인들의 스포츠’로 여겨졌지만 현재 여자 테니스 세계 랭킹 30위 안에 이름을 올린 선수 중 10명이 흑인이거나 흑인 혼혈이다.
코트를 떠나는 윌리엄스는 이제 ‘여자 은퇴 선수’ 위에 놓인 천장도 기꺼이 깨뜨릴 준비를 마쳤다. 지난달 9일 패션잡지 ‘보그’를 통해 은퇴 의사를 밝힌 윌리엄스는 “‘은퇴’보다는 ‘진화’가 내 결정을 더 잘 설명한다”고 강조했다. 윌리엄스는 이날 경기 후에도 “새로운 나를 알아볼 준비가 됐다. 또 사실 (코트 바깥) 세상 관점으로 보자면 여전히 나는 엄청 어리다. 밝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윌리엄스는 이날 경기를 마친 뒤 “생애 최고의 여정이었다. 이 순간을 즐길 수 있어서, 내가 세리나여서 너무 감사하다”고 말했다. 1999년 전설의 시작을 알렸던 빌리 진 킹 테니스센터 메인 경기장 ‘아서애시 코트’는 윌리엄스 인생 1막의 끝이자 2막의 시작을 알리는 무대가 됐다.
임보미 기자 b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