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화제의 드라마를 본다는 것은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주인공 우영우(박은빈 분·오른쪽)는 로펌 태산의 대표이자 자신의 어머니인 태수미(진경 분)에게 자기 내면의 성채를 넘어 진정으로 타인에게 다가가는 모습을 보인다. ENA 제공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 화제의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끝났다. 이 드라마를 둘러싼 관심의 상당 부분은 이른바 장애인의 재현 문제에 있다. 한국 드라마 역사상 최초로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인물을 원톱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주인공 우영우는 자폐 스펙트럼의 현실과는 동떨어진 게 아니냐는 논란이 벌어졌다.
얼핏 보기에 우영우는 자폐 스펙트럼을 겪는 전형적인 인물로 보인다. 외부와의 소통에 애를 먹는다. 상대방 눈을 선뜻 맞추지 못한다. 남의 기분을 잘 알아차리지 못한다. 분위기를 읽어내지 못한다.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만 한다. 관계의 윤활유 역할을 하는 ‘쿠션어’를 쓸 줄 모른다. 낯선 공간을 두려워한다. 건물 회전문에 진입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이런 우영우는 실로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전형적인 인물인지 모른다.
그러나 우영우는 예외적이다. 예외적으로 귀엽고, 예외적으로 머리가 좋고, 예외적으로 좋은 동료가 많다. 우영우를 혼전 임신한 생모는 화려한 인생을 좇아 우영우를 버렸지만, 다행히 우영우에게는 헌신적인 아버지가 있다.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듯 명문대를 수석 졸업하고, 입학이 어렵다고 소문난 서울대 로스쿨에 당당히 진학한다. 취업난에도 불구하고 거대 로펌에 정규직으로 취직한다. 수십 년간 대학생들을 관찰해 온 내 경험에 따르면, 이런 사람은 현실에 없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우영우(가운데·박은빈 분)가 로펌 동료 신입 변호사들과 함께 법정에 선 장면. ENA 제공
그들보다 훨씬 더 타인과 소통에 서툰 우영우는 일반 대학원이 아니라 로펌에 갔다. 세속의 사교성과는 담을 쌓은 우영우가 그만 회사에 가고 만 것이다. 과연 이 드라마는 전형성과는 거리가 멀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전형적 장애인에 대한 드라마도 아니고, 전형적 로펌에 대한 드라마도 아니다. 장애인에 대한 무관심이 팽배한 이 사회에서 장애를 주제로 한 드라마가 갑자기 인기를 얻을 리야. 여러모로 전형성을 벗어난 이 드라마가 어떻게 해서 대중적 호소력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일까. 남녀 간 사랑을 다루어서? 글쎄, 알콩달콩한 러브라인이 펼쳐지긴 하지만, 적당한 선에서 멈추고 더 나아가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도대체 무엇에 대한 드라마란 말인가. 이 드라마는 인간의 보편적 문제인 자아와 타인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자폐적인 것과 이기적인 것은 같지 않다는 이야기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어느 정도는 가지고 있을 자폐적 성향은 반사회적인 악덕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내향성은 오히려 타인에게 다가갈 수 있는 귀중한 통로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개와 달리 고양이는 얼핏 자기 세계가 확고한 내향적이고 자폐적인 동물처럼 보인다. 그래서 우영우는 자기가 고양이처럼 반사회적 존재라고 자학한다. 나만의 세계에 갇힌 나는 당신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없어요. 이렇게 애인에게 이별 통고를 한다. 그러나 내향적인 것과 이기적인 것은 엄연히 다르다. 고양이도 개 못지않게 집사를 사랑한다. 이 깨달음으로 인해 우영우는 마침내 내면의 회전문을 통과해 타인에게 다가갈 수 있게 된다.
세상에 널리고 널린 이른바 보통 사람들은 우영우 같은 상황에 놓이면 대개 자기중심적 태도를 보인다. 버림받은 상처를 이기지 못하고, 분이 풀릴 때까지 세상에 저주를 퍼붓는다. 진상을 왜곡하면서까지 분풀이를 해버린다. 왜 내 기분을 몰라주는 거야! 우영우는 다르다. 엄마에 대한 분노의 제물이 되지 않는다. 자기에게는 좋은 엄마가 아니었지만, 동생에게라도 좋은 엄마가 되어달라고 말할 때, 우영우는 그 누구보다도 깊은 내면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러면서도 내면의 성채를 넘어간 사람이었다. 타인에게 다가간 사람이었다. 진정 사회적인 사람이었다. 생모는 조용히 우영우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 청문회장에 나아가 탐내던 법무부 장관 자리를 포기한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과시적인 사교 행위가 아니라 내면적인 자기 갱신이야말로 타자의 교감을 불러온다는 기적 같은 이야기다.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