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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에 펼쳐진 피카소-실레… “뉴욕 모마에 온 기분”

입력 | 2022-09-05 03:00:00

국제-국내 최대 아트페어 ‘프리즈 서울’-‘키아프’ 가보니
세계 최정상 갤러리들 첫 한국 진출… 수십억원대 작품 1시간 만에 ‘완판’
김환기-박현기 등 韓거장들도 주목… 내년엔 ‘송현동 부지’서 열릴 가능성



영국 리처드 내기 갤러리는 프리즈 서울에서 ‘Self Portrait’(왼쪽 사진) 등 에곤 실레의 작품만으로 부스를 차렸다. 스위스 하우저앤드워스 갤러리는 조지 콘도의 ‘Red Portrait Composition’(가운데 사진)을 중앙에 배치했으며, 미국 카스텔리 갤러리는 로이 릭턴스타인의 개인전을 구성했다. 작품은 ‘Profile Head’. 프리즈 서울 제공


“잠시도 쉴 수가 없네요. ‘국보급 명작’들이 워낙 많아 앉지도 못하고 내내 돌아다녔습니다.”(컬렉터 이영상 씨)

“너무 도떼기시장처럼 미어터지는 건 ‘옥에 티’네요. 프랜시스 베이컨(1909∼1992) 작품은 사진을 찍기는커녕 제대로 보지도 못했어요.”(관람객 김모 씨)

소문난 잔치엔 역시 먹을 게 많았다. 다만 먹기가 너무 힘들었다.

2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개막한 아트페어 ‘프리즈 서울’과 ‘한국국제아트페어(KIAF·키아프)’는 올 하반기 국내 미술계의 최대 이슈다운 면모를 선보였다. 세계적인 박물관급 작품들이 즐비해 구매자가 아니어도 눈 호강을 멈출 수 없었다. 2일 VIP 오픈 때도 성황이었지만 일반 관람객이 입장한 3, 4일엔 수만 명이 몰려들어 발 디딜 틈이 없을 지경이었다.

이름만으로도 가슴이 두근대는 거장들의 작품이 쏟아진 ‘프리즈 마스터스’ 섹션은 최고의 하이라이트. 파블로 피카소(1881∼1973), 앙리 마티스(1869∼1954), 에곤 실레(1890∼1918)…. 미국 애쿼벨라 갤러리스나 영국 리처드 내기 갤러리 부스는 그림 앞에 다가서기도 힘들 정도였다. 3일 현장에서 만난 한 40대 관람객은 “모마(MoMA·뉴욕현대미술관)에 온 듯한 기분”이라며 감탄했다. 단체 관람객들은 해외여행을 온 것처럼 동선을 미리 짜서 움직이기도 했다.

세계 최정상으로 꼽히는 거고지언(미국)과 하우저앤드워스(스위스), 리슨 갤러리(영국)도 프리즈에서 처음 국내에 진출했다. 하우저앤드워스는 2일 미국 화가 조지 콘도(65)의 2022년 작 ‘Red Portrait Composition’이 280만 달러(약 38억 원)에 팔리는 등 15점이 오픈 1시간 만에 다 팔렸다. 15∼19세기 고지도와 고서를 선보인 영국 대니얼 크라우치 레어북스와 이집트 특집 섹션을 마련한 영국 데이비드 에런 갤러리도 많은 관심을 모았다. 에런 갤러리 관계자는 “한국 컬렉터들도 꽤 많은 작품을 구매했다”고 귀띔했다.

아시아 최초로 한국에서 개최하는 아트페어 ‘프리즈 서울’이 2일 한국국제아트페어(키아프)와 동시 개막했다. 키아프는 코엑스 1층, 프리즈 서울은 3층에서 열리고 있다. 키아프와 프리즈는 올해부터 5년간 공동 개최한다. 2일 만난 사이먼 폭스 프리즈 최고경영자는 “30년 전 프리즈가 잡지로 출발한 뒤 지금껏 아트페어로 이어졌다. 프리즈 서울도 100주년까지 이어지지 말란 법은 없다”고 말했다. 뉴시스

프리즈를 통해 한국 작가들을 ‘큰 무대’에 소개하려는 국내 갤러리의 노력도 눈에 띄었다. 국제갤러리는 김환기(1913∼1974) 작품을 전면에 내세웠고, 현대갤러리는 국내 비디오아트의 선구자인 박현기(1942∼2000)를 부각시켰다. 학고재갤러리도 류경채(1920∼1995) 등 한국 미술사에 굵직한 족적을 남긴 거장들을 선보였다. 2일 현장에서 만난 강정하 금호미술관 큐레이터는 “국내 메이저 화랑들 역시 전속계약을 맺은 해외 작가들이 적지 않은데도, 한국적 색깔이 분명한 작품들이 나와 큰 의의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개최 전부터 우려했던 대로 스포트라이트가 프리즈에 집중되며 키아프는 ‘상대적 박탈감’에 휩싸일 수밖에 없는 처지가 돼버렸다. 키아프에 작품을 출품한 한 중견 작가는 “전체적으로 함께 들썩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키아프 쪽은 민망할 정도로 한산하다”며 입맛을 다셨다.

국제적인 행사치고는 운영이 다소 미숙하다는 반응도 나왔다. 부스별로 한국인 스태프가 부족한 데다 안내지도 등도 금방 동이 나 불편해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관람객 김효경 씨(27)는 “모바일 입장권은 현장 스태프들도 혼란스러워하며 입장에 불편을 겪었다”며 아쉬워했다. 주최 측은 “관람객이 예상보다 훨씬 많아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 좀 더 원활한 진행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프리즈는 5일까지, 키아프는 6일까지 열린다.

한편 프리즈 서울과 키아프가 내년에 서울 종로구 송현동 ‘이건희 미술관’(가칭) 부지에서 열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미술계에 따르면 3일 저녁 오세훈 서울시장은 프리즈 서울 관계자 및 주요 VIP 만찬에서 최근 프리즈 측이 요청한 송현동 부지 행사 대여와 관련해 “내년 프리즈 서울과 키아프 개최지로 송현동 부지를 빌려줄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