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철도공사(코레일)이 발주를 앞둔 고속철도 차량 입찰에 스페인 철도차량 제작사가 참여할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국내 고속철도 차량 제작 업계는 “한국 고속철 차량 산업이 붕괴될 수 있다”며 강하게 반발한다.
5일 관련 업계 등에 따르면 스페인 철도차량 제작사인 탈고(TALGO·Tren Articulado Ligero Goicoechea-Oriol)는 코레일이 7일 발주하는 평택오송선 EMU-320 고속차량 120량과 수원·인천발 16량 등 총 136량의 동력 분산식 고속차량 입찰 사업에 참여할 전망이다.
코레일 전자조달시스템에 올라온 사업 질의서에는 탈고와 컨소시엄을 맺은 A사가 해외 업체와의 공동 입찰 참여방법을 문의하는 내용이 올라와 이 같은 정황을 뒷받침하고 있다.
하지만 동력 분산식 고속차량 입찰로 진행하는 이번 사업에서 코레일은 입찰 참가자 자격을 제한하지 않아 탈고의 입찰 참여는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코레일은 2016년 발주했던 EMU-250이나 EMU-고속차량 등의 입찰에 시속 250㎞ 또는 300㎞ 이상 고속차량 제작 경험이 있는 경우에만 입찰 참여가 가능하도록 제한했지만 지난해부터는 아예 이 같은 제한을 없앴다.
이에 따라 탈고가 이번 사업 입찰에 참가할 경우 2005년 이후 17년 만에 국내 업체와 해외 업체 간 수주 경쟁이 벌어질 조짐이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고속차량을 제작하는 현대로템은 2005년 코레일이 발주한 고속차량 사업에서 프랑스 철도차량 제작사인 알스톰과 경쟁한 바 있다.
당시 현대로템은 코레일로부터 KTX-산천의 기반이 된 연구개발 차량 ‘HSR-350X(G7)’제작 실적을 고속차량 납품 실적으로 인정받아 최종 낙찰자로 선정됐다.
그동안 막대한 국고와 비용, 인력 등을 들여 개발한 국산 고속차량 기술이 자칫 사장(死藏)될 수 있어서다. 초기 기술 확보 단계부터 한국형 동력 분산식 고속차량의 개발·안정화 단계에 이르기까지 2026년 11개월 동안 투입된 민·관 투자액은 총 2조7001억원에 이른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동력 분산식 차량 납품 실적이 없는 탈고가 수주에 성공할 경우 10년여에 이르는 기술 개발·상용화 기간이 필요한 동력 분산식 고속차량을 적기에 납품할 가능성이 낮다는 우려도 나온다.
코레일이 발주한 수원·인천발 고속차량 가운데 가장 납기가 빠른 16량(2편성)은 4년 뒤인 2026년 11월까지 납품이 최종적으로 완료돼야 하는 상황이다. 평택오송선은 2027년 개통해 투입될 예정이다.
해외 업체의 국내 진입으로 수주량이 줄어들면 국내 영세 부품 협력사의 생존권도 담보할 수 없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비대위는 “발주 물량이 해외 업체에 몰릴수록 기술 자립은커녕 해외에 종속될 것”이라며 “이는 국내 산업 생태계 붕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또 “해외 업체의 국내 진출이 본격화하면 순수 국산 기술로 고품질의 고속차량을 생산하는 국내 완성차 업체들이 설 자리를 잃게 된다”며 “영세 사업장이 전체의 96%에 달하는 협력 부품 업체의 생존에 치명적이다”고 주장했다.
비대위는 “철도 부품 산업은 철도 산업의 근간”이라며 “‘철도주권’을 뺏기지 않기 위해 부품 제작사가 지속적으로 사업을 영위할 수 있도록 정부가 국내 시장을 보호해달라”고 밝혔다.
[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