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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기브 앤 테이크 명확히”…‘조원태 회장님 상소문’에 들썩

입력 | 2022-09-05 14:34:00

대한항공 직원, 실명 이메일 공개 화제
삼성 SK 현대차 등 MZ세대 “할 말은 한다”




“성과 배분 시 ○○부서라는 이유로 뒤로 밀려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최근 대한항공의 한 직원 A 씨가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에게 ‘조원태 회장님 상소문’이라는 제목으로 보낸 이메일 내용 중 일부다. A 씨는 자신이 소속된 부서원들에게 참조를 걸어 이 메일을 보냈다. 이후 내용이 다른 부서로도 공유되면서 사내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본인 실명과 소속, 근속 연수 등을 모두 밝힌 A 씨는 “블라인드나 익명 게시판에 쓸까 했으나 회장님께 실명으로 직접 메일을 보내는 것이 건강한 해결 방법이라 생각해 사내 메일로 드린다”며 “불평, 불만, 하소연으로 보지 말고 긍정적으로 읽어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했다.

A씨는 소속 본부에서 있었던 사직 사례와 대우 문제, 동료들이 몸이 아프거나 다쳤을 때도 회사에 출근했던 일, 급여 문제, 다른 부서보다 진급 시 소외되는 인사차별 문제 등을 지적했다. A씨는 “직무전환제도가 있으면 뭐하나요? 해주질 않는데. 진급이든 성과급이든, 기브 앤 테이크(give & take)를 명확히 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OO본부의 수고를 알아 주셨으면 합니다” 등의 내용을 적었다. 공정한 대우 및 보상에 대한 문제를 그룹 총수에 직접 요청한 것이다.

대한항공 내부에서는 A씨의 이메일이 납득하기 어려운 근무 행태 및 진급 문제, 인사차별 등에 대한 내부 의견을 종합적으로 보여준다는 얘기들이 나온다. 직원들 사이에 존재하던 각종 불만들이 터져 나왔다는 것이다. 대한항공의 한 직원은 “특정 대학 출신 우대, 일부 부서 인사 편향, 불만을 제기하면 낙인찍히거나 해서 쉬쉬하던 문제 등을 토로한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직원은 “사실 이런 글이 있어도 직원들끼리는 ‘어차피 안 바뀐다’ ‘부서만 난리 났겠다’ 이런 분위기다. 그럼에도 직원들이 공론화하길 꺼려하는 문제를 실명으로 밝힌 것은 용기 있는 행동 같다”고 말했다. 대한항공 측은 “회사 직원과 면담하고 소통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렇게 직원들이 그룹 회장 또는 최고경영자 등에게 직접 편지를 쓰거나, 회사 공개 게시판 등에 글을 올려 할말을 하는 건 대한항공만의 일은 아니다. 지난해 1월 SK하이닉스의 입사 4년차 직원은 ‘성과급 산정방식을 밝혀 달라’며 회사 대표 등에게 항의 메일을 보냈다. 이에 다른 직원들의 비슷한 불만이 터져 나왔고,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내 급여를 반납하고 소통하겠다”며 진화에 나섰다. SK하이닉스는 결국 노사협의를 통해 성과급여 지급 방식을 일부 바꿔야 했다.

삼성전자는 입사 7년차 직원이 연봉 산정 방식 오류 등을 지적하면서 공개적으로 대표이사에게 글을 쓰기도 했다. 현대자동차도 한 직원이 사장과 부사장, 노조위원장 등에게 편지를 보내 실적에 따른 임금 인상 문제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다. 블라인드나 익명 게시판을 통해 각종 문제를 지적하던 것을 넘어 직접 소통을 시도하는 사례가 잦아지고 있는 것이다.

재계 안팎에서의 해석은 다양하다. 일부에서는 그 동안 불만이 누적되다 결국 터져 나온 것일 뿐이라는 의견이 있다. ‘할말은 하는’ MZ세대(밀레니얼+Z세대) 직원들의 특징에서 비롯된 트렌드로 풀이되기도 한다.

항공업계 한 임원은 “과거엔 직원들이 그냥 참고 넘겼던 문제들을 가감 없이 공개적으로 밝히고, 당당하게 요구를 한다”며 “방식은 다양하지만 공정하지 않은 문제라고 여겨지는 건 반드시 짚고 넘어가려는 직원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한 항공사 노조 관계자는 “MZ세대 직원들은 인사나 성과급, 진급 등에 대해서 납득할 만한 설명을 요구하지만 만족스런 답변을 못 듣는 경우가 많다”며 “감정적인 불만토로가 아니라면 회사도 진정성 있는 설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 대기업 임원은 “회사 측에선 솔직히 ‘어차피 너 아니어도 이 회사에 입사하고 싶은 사람은 많다’고 생각하기도 한다”면서 “하지만 그런 생각이 결국 인재를 내보내고 회사 손해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이 임원은 이어 “정상적인 경영진들이라면 직원들의 요구에 어떻게 대응을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변종국 기자 bj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