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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 암초 만난 ‘주식 쪼개기 거래’… 정부 늑장에 혁신금융 지연

입력 | 2022-09-06 03:00:00

1주 아닌 소수점 단위 주식 거래… 적은 돈으로도 고가 주식에 투자
증시저변 확대-위험분산 등 장점… ‘주식투자냐 펀드투자냐’ 갈림길
결론따라 투자자 세금 달라져… 정부 유권해석 안나와 도입 지연




국내 기업 주식을 1주 단위가 아닌 소수점 이하 단위로 거래할 수 있게 하는 방안을 정부가 추진하고 있다. 개인투자자들이 비교적 적은 돈으로도 고가(高價) 주식에 투자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게 목적이다. 하지만 이런 ‘쪼개기 투자’에 어떻게 세금을 매길지 과세 당국의 판단이 나오지 않아 도입 시기는 다소 늦춰질 수 있다.

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올해 2월 소수 단위 주식거래를 ‘혁신금융 서비스’로 선정하고 올해 말 시행을 목표로 준비 중이다. 지금은 국내 주식을 매매할 때 최소 1주 단위로만 거래해야 하지만 소수점 거래가 도입되면, 가령 0.1주 또는 주식 1000원어치만 매입하는 게 가능해진다. 예를 들어 고객이 0.1주를 주문하면 증권사는 다른 고객들의 소수점 이하 주문을 취합해 1주 단위로 거래한 뒤 해당 고객의 후속 매매가 있을 경우 손익을 주식 비율에 따라 배분한다.

소수점 단위 거래는 해외 주식에서는 이미 시행되고 있다. 2018년 10월 신한금융투자를 시작으로 현재 총 17개 증권사가 해외주식에 한해 소수점 거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또 교보증권과 DB금융투자, 유진투자증권 등도 해당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 해외에 이어 국내에도 소수점 주식 거래를 도입하려는 것은 개인투자자들이 소규모 투자금으로 고액의 우량주 주식을 사는 게 용이해지고 증시 저변이 확대된다는 장점 때문이다. 또 투자자들이 주식 포트폴리오를 다양하게 구성해 위험을 분산할 수 있고, 소액으로 꾸준히 주식을 사 모을 수 있어 일종의 ‘적립식 투자’도 가능해진다.

하지만 이런 장점에도 이에 대한 과세를 어떻게 할지에 대한 정부의 결론이 나오지 않아 제도 도입이 지연되고 있는 실정이다. 소수점 거래를 주식 투자로 볼 것인지, 펀드 투자로 볼 것인지 정부의 유권 해석이 나오지 않은 것이다. 만약 주식 투자로 본다면 현행법상 매매할 때마다 0.23%의 증권거래세만 내면 되고 특정 종목을 일정 금액(내년에 100억 원) 이상 보유한 고액 주주만 양도소득세를 낸다. 게다가 거래세율은 내년 0.20%로 내려가고 2025년부터는 0.15%까지 더 낮아진다. 반면 펀드로 분류되면 15.4%에 달하는 배당소득세를 물어야 한다. 즉, 주식으로 분류돼야 소액 투자자에게 훨씬 유리하다. 앞서 올 7월 금융투자협회는 소수점 거래의 과세 방향을 국세청에 문의했고, 국세청은 세법 개정을 담당하는 기획재정부에 유권해석을 요청했지만 뚜렷한 결론이 나오지 않은 상황이다.

금융투자업계는 정부가 이를 주식 거래로 보고 증권거래세만 과세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기를 희망하고 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투자자들 입장에서 세금 부담이 적어야 시장이 활성화될 것”이라며 “만일 펀드로 분류돼 배당소득세를 물게 되면 개인투자자들의 부담이 커지기 때문에 제도 도입이 무의미할 수 있다”고 말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도 “삼성전자 주식을 1주 사면 주식이고, 0.5주를 사면 펀드로 분류한다면 제도 도입 취지에 맞지 않는다”며 “주식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소수점 주식을 일반 주식처럼 분류해 과세하는 것도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니다. 하나의 주식을 잘게 나눌 수 없다는 상법상 ‘주식 불가분의 원칙’과 충돌하는 면이 있어서다. 기재부 관계자는 “해당 사안을 최선을 다해 살펴보고 있지만 결정된 것은 없다”고 말했다.



이호 기자 number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