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즈 트러스 영국 외교장관은 ‘카멜레온’이라는 평가를 받는 정치인이다. 군주제 폐지와 마약 합법화 등을 외치며 진보당에서 활동하다가 보수당으로 옮겨 외교수장 자리에까지 올랐다. 2014년부터 8년간 환경·농림부와 법무부, 재무부, 통상부 장관을 두루 거쳐 “직업이 장관”이라는 말도 듣는다. 5일 당 대표 경선에서 승리하면서 그는 이제 마거릿 대처, 테리사 메이 전 총리에 이어 세 번째 여성 총리 탄생이라는 역사를 쓰게 됐다.
▷“당황스럽다. 왜 여성 정치인들은 늘 대처와 비교당하느냐.” 그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자신이 대처 전 총리의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는 세간의 평가를 반박했다. 그러나 인터넷에는 대처 전 총리와 트러스 장관을 비교하는 각종 사진이 넘쳐난다. 통이 넓은 흰색 리본 블라우스, 러시아 모스크바 광장에서 눌러쓴 모피 털모자 같은 패션부터 탱크 위에 올라탄 사진 구도 등은 30여 년 전 대처 전 총리의 것과 판박이다. ‘대처의 아바타’라고 불릴 법하다.
▷트러스 장관은 전속 사진사를 두고 인스타그램 활용을 극대화해 온 ‘이미지 관리의 달인’이다. 그런 그가 “나는 그저 나 자신일 뿐”이라고 강변해도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이는 많지 않았다. 대처 전 총리는 과감한 노조 개혁과 재정 개혁을 통해 1970년대 영국병을 치유해낸 ‘철의 여인’으로 평가받는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윈스턴 처칠에 이어 두 번째로 존경받는 지도자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다. 대처 전 총리에 이어 26년 만에 두 번째 여성 지도자가 된 메이 전 총리도 선거 과정에서 ‘제2의 대처’ 이미지 활용을 망설이지 않았다.
▷트러스 신임 총리가 직면하게 될 현실은 엄중하다. 영국은 브렉시트(Brexit)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여파까지 겹치면서 치솟는 물가와 인력난, 에너지난에 신음하고 있다. 대처 전 총리에 대한 영국인들의 향수가 점점 짙어지고 있는 것은 이런 국가적 위기 때문일 것이다. 대처 이미지의 모방을 넘어 그에 못지않은 리더십을 보임으로써 영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어 달라는 게 이들의 요구다. 영국 사상 최초 40대 여성 총리의 어깨가 그만큼 더 무거워졌다.
이정은 논설위원 light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