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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가 달러’에 각국 시름…“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냄새”

입력 | 2022-09-06 16:48:00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달러 가치가 계속 상승하는 ‘메가 달러’ 현상에 세계 각국이 몸살을 앓고 있다. 수입 물가가 상승해 경기 침체 위기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중국 경기가 급격히 둔화할 가능성이 제기되며 아시아 등 신흥국 통화 위기 적신호가 켜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블룸버그통신은 “최근 신흥국의 통화 불안은 25년 전 아시아 금융위기의 냄새를 풍긴다”며 “중국 위안화 가치 하락은 (세계 경제에) 위협으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 유로 파운드 엔 위안화 줄줄이 하락
6일(현지 시간) 오전 기준 세계 6개국 통화 대비 달러화의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109대를 유지하며 2001년 9.11 테러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도이체방크에 따르면 지난달 전체 자산 가운데 달러화보다 더 높은 수익률을 낸 것은 천연가스뿐이었다.

유로화는 이날 1유로 당 달러화 가치가 장중 0.99달러까지 하락하며 20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는 1년 전 1.19달러와 비교해 16.8% 하락한 수치다. 파운드당 달러화 가치는 장중 1.16 달러까지 떨어지며 1985년 이후 37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일본은 24년 만에 1달러 당 엔화가 심리적 마지노선인 140엔을 넘어서고 있다.

글로벌 전문가들은 영국과 중국의 경제 불안에 특히 주목하고 있다. 영국은 총리 교체에 따른 정계 불안과 경기침체 우려, 두 자릿수 물가상승률에 파운드화 가치 하락까지 겹쳐 1970년대 부채위기가 다시 올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쉐리아스 가펠 도이치뱅크 외환 애널리스트는 리즈 트러스 새 총리의 재정확대 정책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보고서를 내고 “영국은 (파운드화 가치 하락에 따른) 해외 투자자들의 이탈 현상을 가볍게 보면 안 된다”며 “영국 경제에 대한 투자자들의 기대가 더 떨어지면 영국은 부채위기를 맞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 위안화 가치는 전년 대비 약 6.7% 하락해 유럽 일본에 비해 하락폭이 적지만 최근 중국 경제의 적신호를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높다. 위안화 가치 하락은 미 연준의 금리 인상 영향보다는 상하이, 선전, 청두 등 잇따른 지역 봉쇄로 인해 중국 경기가 둔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반영된 결과라는 것이다. 블룸버그는 “중국 경기 둔화 속에 중국 시장 의존도가 큰 한국, 태국, 필리핀 등 아시아 신흥국 경제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 미국, 강달러 반기지만 ‘부메랑’ 우려도
미국은 강달러를 환영하는 분위기가 적지 않다. 소비자 구매력은 높아지고, 수입물가는 하락해 인플레이션 안정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미국 뉴욕시에 사는 직장인 에린 씨는 기자에게 “주변에서 이럴 때 유럽 여행을 가야 한다고 난리”라며 “휘발유값이 어느 정도 내리는 것을 보고 전보다 위기감이 줄어든 느낌”이라고 말했다.

연준의 금리 인상에도 달러 가치가 상승하는 가운데 미국 소비자들이 지출을 늘리면 연준이 목표로 하는 경기 연착륙이 가능해 질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하지만 강달러로 마이크로소프트(MS) 등 미국 수출 기업의 실적 저하로 이어지고 있는데다 세계 곳곳의 경제위기 우려가 정치 불안으로 이어져 미국에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채권운용사 핌코의 전직 최고경영자(CEO)인 모하메드 엘-에리언은 이날 블룸버그뉴스 칼럼에서 “미국은 동맹국들과 협력해 (강달러가) 글로벌 경제에 주는 피해를 줄이기 위한 정책을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