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차례상은 송편과 나물, 구이, 김치, 과일, 술이 기본이고 육류와 생선, 떡 정도를 추가할 수 있다.’ 성균관이 추석을 앞두고 차례 음식을 최대 9가지만 올리도록 간소화한 차례상 새 표준안을 발표했다. 차례 음식 가운데 며느리들의 원성이 자자한 전은 올리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동그랑땡 생선전 녹두전 등은 기름 냄새 맡으며 온종일 부쳐야 한다. 허리라도 펼라치면 ‘아이고’ 소리가 절로 나는 고역이다. 심지어 ‘명절 때 조상 덕 보면 해외여행 가고, 조상 덕 없으면 전 부친다’는 시쳇말이 있을 정도다.
▷전 없는 차례상의 근거는 조선시대 예학 사상가인 김장생이 사계전서(沙溪全書)에서 ‘기름진 음식을 써서 제사 지내는 것은 예가 아니다’라고 쓴 데 있다. 차례상은 조선 후기 양반 경쟁으로 인해 본래 예법과 다르게 호화스럽게 변질됐다는 게 정설이다. 석주 이상룡, 명재 윤증, 퇴계 이황 종가에서는 ‘제사상은 간소히 차리라’는 지침이 전해 내려온다. 제사상 크기는 가로 99cm, 세로 68cm로 정하고 유과나 전은 올리지 않도록 했다.
▷새 차례상을 반길 법도 한 며느리들이 되레 “그동안 전 부친 게 억울하다”며 성균관을 성토하고 있다. “왜 이제야 발표하나. 지난 명절에 이혼했다” “TV 보며 노는 남자들 밥상 차리는 게 더 열 받는다” “이미 차례 안 지내는 집이 많다”. 가족의 해체와 성평등 문화의 확산 등 우리 사회의 급격한 변화에 비해 성균관의 인식이 뒤처진다는 지적이다. 가족 간 거리 두기가 강제된 코로나19 팬데믹 동안 추석, 설 명절 문화가 과거로 돌아갈 수 없을 만큼 바뀐 탓도 있다.
▷가족이 모여 정을 나누고 나의 뿌리를 되돌아보는 것, 명절의 본질이다. 고루한 형식에 매몰돼 가족끼리 싸움이 나고 따스한 밥상조차 나누지 못한다면, 그 본질에서 한참 벗어난 것이다. 유서 깊은 종가에선 “남녀 구분 없이 함께 음식을 준비하고 불합리한 예법은 손질해 집안별로 가가례(家家禮·각 집안의 예법)를 세워 따르면 될 일”이라고 한다. 예법은 시대에 맞게 다시 쓰여야만 그 본질을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