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백인 남성’ 일색이었던 영국 내각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6일(현지시간) 리즈 트러스 영국 새 정부 내각 인사가 속속 발표 중인 가운데 총리 포함 외무·재무·내무부 장관 등 4대 요직에 내각 사상 최초로 ‘백인 남성’이 사라져 이목이 쏠린다.
트러스 내각 초기 외무·재무 장관은 모두 ‘흑인 남성’이 차지했다. 트러스 총리 후임인 외무·영연방부 장관은 제임스 클레버리(53) 전 교육장관이, 재무장관에는 콰시 콸텅(47) 전 비즈니스·에너지·산업전략부 장관이 각각 임명됐다. 클레버리 장관은 서아프리카 시에라리온 출신 어머니와 백인 부친서 태어난 혼혈이다. 콸텅 장관은 부모가 1960년대 가나에서 건너온 이민 2세다. 이들은 보수당 내 흑인 유권자를 대표한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클레버리 장관은 2015년 영국 잉글랜드 동남부 에식스주 브레인트리에서 하원의원에 입성한 이래 무서운 속도로 당내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지난 7월 보리스 존슨 총리 사퇴 발표 이후 임시 내각에서 교육장관을 맡았다. 그 전에는 2020년 2월부터 외무부 차관으로 중동·북미·북아프리카와 유럽·북미 지역을 관할했다.
흑인 최초 재무부 수장에 오른 콸텅 장관은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나 명문 사립 남학교 이튼 칼리지 장학생으로 케임브리지대와 하버드대에서 동시 학위를 취득한 ‘브레인’이다. 존슨 내각에서는 에너지부 장관을 지냈다. AFP에 따르면 그는 트러스 총리와 같이 ‘대처리즘’을 추앙하며 낮은 세금·자유 시장을 근간으로 한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을 계승할 것으로 보인다.
콸텅 장관은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가장 어렵고 최악의 경제난이라던 1970년대 후반 대처 내각과 비슷한 경제 위기 속에서 임기를 시작한다. 그는 고조되는 생계비 위기 해결을 위한 감세 정책을 시행하면서 동시에 에너지가격 급등에 따른 겨울철 연료난 해소를 위해 일정 부문 재정 완화가 필요할 것이라고 밝혔다.
내무장관에는 수엘라 브레이버먼(42) 전 법무장관에게 돌아갔다. 브레버먼 장관 부모는 아프리카 케냐와 남아시아 인도양 모리셔스 출신으로 프리티 파텔 전 국제개발부 장관에 이어 두번째 ‘소수민족 여성’ 장관이다. 이 밖에도 국방장관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안팎의 위기에 잘 대처한다고 평가받는 벤 윌러스 현 장관이 유임됐다.
영국 내각은 2002년 노동당 정부에서 처음으로 소수민족 출신 폴 보아텡을 당시 재무장관으로 임명하면서 조금씩 변화의 물꼬를 텄다. 20년이 지나 총리 후보 최종 2인이었던 리시 수낵(42) 전 재무장관의 출신 성분이 과거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던 인도계라는 점도 주목할만한 성과로 보인다.
다만 기업과 사법부, 공직, 군대 등 상위 요직은 여전히 백인이 우세한 것으로 드러났다. 보수당 역시 여성 의원 비중은 전체 4분의 1에 그치며 소수민족 출신은 6%에 불과하고 로이터는 짚었다.
한편 트러스 총리는 이날 스코틀랜드 밸모럴성에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알현한 뒤 임명 절차를 마치고 정식 취임했다. 이로써 마거릿 대처, 테리사 메이에 이어 역대 세번째 여성 총리가 됐다. 또한 그는 2012년 자신을 처음 내각에 입성시킨 데이비드 캐머런 전 총리에 이은 40대 젊은 지도자 반열에 올랐다.
(서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