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스리랑카·태국·파키스탄, 고물가-경제위기에 정치도 ‘휘청’

입력 | 2022-09-07 15:28:00


최근 고물가 등 글로벌 경제 위기와 자국의 불안한 정치·경제 상황으로 일부 아시아 신흥국들이 잇단 정치적 부패와 혼란에 빠졌다. 스리랑카 태국 파키스탄 등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주력 관광산업 퇴조 등 경기 침체가 이어지면서 정치적 불안정의 도화선이 된 것이다.


‘국가 부도’ 스리랑카 전 대통령, 해외 도피 후 복귀

지난달 30일 스리랑카 수도 콜롬보에서 경찰이 반정부 시위자를 연행하고 있다. 콜롬보=AP 뉴시스


4월 국가 부도를 내고 반정부 시위대를 피해 해외로 도피한 고타바야 라자팍사 전 스리랑카 대통령은 이달 3일 돌아왔다. 라자팍사 전 대통령은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외화 수입의 14%를 차지하는 관광산업이 붕괴하는데도 지나친 감세 정책 등을 밀어붙이며 국가재정을 위기로 몰아넣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스리랑카는 경제난에 재정 정책 실패, 그리고 에너지 부족까지 겹치며 생계가 위기에 처한 민심이 폭발했다.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수도 콜롬보를 비롯해 각지에서 벌어지고 대통령궁까지 점령당하자 라자팍사 전 대통령은 해외로 도피했다.

앞서 스리랑카는 1일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구제금융 29억 달러를 받게 됐지만 물가상승률은 5월 45%, 6월 59%, 7월 67% 등 민생 안정은 갈길이 멀다. 여기에 라자팍사 대통령이 돌아왔다는 소식에 민심은 다시 들끓고 있다. 

콜롬보 청년기자협회 타린두 자야와르다나 대변인은 미국의 소리 방송(VOA)에 “우리는 정부가 라자팍사 혐의를 조사하라고 요청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스리랑카 교원노조 사무총장은 APF통신에 “라자팍사는 기소돼야 한다. 그는 2200만 스리랑카 국민을 고통으로 몰아넣은 혐의로 체포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리랑카 정치평론가 자야데바 우야오다는 “그의 복귀는 반정부 시위대가 제기한 문제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정부는 반정부 시위의 기억을 지우고 다시 한번 정치 지배력을 공고히 하고 싶어 한다”고 분석했다.


‘직무 정지’ 태국 총리 활동 재개에 야권 반발

지난달 24일 태국 수도 방콕에서 반정부 시위자가 쁘라윳 짠오차 총리 집권 반대 포스터가 달린 차량에서 내려오고 있다. 포스터에는 '그의 시간은 끝났다'라고 쓰여 있다. 방콕=AP 뉴시스

관광산업 붕괴를 비롯한 국정 관리 실패를 이유로 2019년 이후 불신임투표를 4차례 치른 쁘라윳 짠오차 태국 총리는 임기 논란으로 헌법재판소 결정이 내릴 때까지 직무 정지 중이다. 

태국은 2019년 코로나19를 기점으로 경제난에 빠졌다. CNBC방송에 따르면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관광산업은 태국 국내총생산(GDP) 약 11%를 차지했다. 그해 해외에서 관광객 4000만 명이 태국을 찾았다. 그러나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지난해 태국 경제성장률은 1.5%를 기록하며 동남아시아 국가 중 가장 낮았다. 물가상승률도 7월 7.61%, 8월 7.86%를 기록하며 14년 만에 최고치를 보였다.

야권은 7월 코로나19 대응 및 국정 관리 실패, 부패 심화, 민주주의 탄압 등을 이유로 쁘라윳 총리에 대한 불신임안을 제출했다. 그러나 투표에서 쁘라윳 총리가 신임 256표 대 불신임 206표로 재신임을 받자 야권은 8월 헌법재판소에 총기 임기 종료 시점 판단을 요청했다. 야권은 쁘라윳 총리가 쿠데타로 총리직에 오른 2014년 8월 24일부터 따져 헌법상 총리 임기인 최장 8년을 마쳤다고 주장했다.

6일 방콕포스트 등에 따르면 헌법재판소는 새 헌법이 공포된 2017년 4월을 기준으로 쁘라윳 총리 임기를 2025년까지로 결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쁘라윳 총리는 정치 활동 재개를 선언했고 야권은 거세게 반발하면서 태국 정치권 혼란상은 지속될 것으로 전망이다.


○ ‘기록적 홍수 피해’ 파키스탄, 분열된 정치권

6일 파키스탄 북서부 페샤와르에서 임란 칸 전 총리를 지지하는 시위가 열렸다.  페샤와르=AP 뉴시스

최근 기록적 홍수로 국토 3분의 1이 물에 잠긴 파키스탄은 정치권 분열도 심화하고 있다. 4월 경제 회복 실패 등을 이유로 퇴출된 임란 칸 전 총리는 테러방지법 위반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고 셰바즈 샤리프 신임 총리는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하며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파키스탄 경제는 과도한 인프라 투자 등으로 대외 부채가 1300억 달러에 달하는 상황에서 코로나19까지 겹치며 수렁에 빠졌다. 2018년 집권한 칸 전 총리는 코로나19로 인한 경제난, 부패 척결 공약 등을 지키지 못했다는 이유로 4월 의회에서 불신임 받아 총리 직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불신임 이후에도 전국을 순회하며 지지자를 결집한 칸 전 총리는 지난달 20일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열린 집회에서 현 정부를 비판했다. 다음날 파키스탄 경찰은 칸 전 총리를 테러방지법 위반 혐의로 입건했다. 

샤리프 신임 총리는 야권을 결집해 칸 전 총리를 끌어내는 데는 성공했으나 의회 칸 전 총리 지지 세력을 포섭하지 못하는 등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엄청난 홍수와 치솟는 인플레이션으로 휘청거리는 파키스탄에 가장 불필요한 것이 정치적 위기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파키스탄 정부와 칸 전 총리의 교착 상태로 정치 위기마저 봉착했다”고 분석했다.

2010년 ‘아랍의 봄’이 아시아 신흥국들에서도 터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글로벌 리스크 컨설팅업체 베리스크 메이플크로프트는 1일 발표한 ‘사회소요지수(Civil Unrest Index)’ 보고서에서 198개국 중 101국에서 위험이 증가했다고 밝혔다. 2016년 해당 지수를 집계한 이래 가장 많은 나라에서 위험이 커졌다. 보고서는 “높은 인플레이션으로 많은 국가가 사회경제적 임계치에 달하고 있다. 개발도상국에서는 최악의 경우 폭동, 약탈, 정부 전복 시도가 일어날 수 있다”며 대표적 고위험군으로 스리랑카 파키스탄 등을 꼽았다.


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