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방울 관련 사건으로 검찰에서 무엇을 수사하는지 범죄사실만이라도 좀 알려달라”(쌍방울 임원 A 씨)
“선배님 저번에 부탁하신 것 가지고 있습니다.”(검찰 수사관 B 씨)
올 5월 검찰 수사관 출신인 쌍방울그룹의 대관 담당 임원 A 씨와 쌍방울 관련 수사를 담당하는 수원지검 형사6부 소속 검찰 수사관 B 씨는 이 같은 대화를 나눈 것으로 밝혀졌다. 검찰 수사 결과 당시 B 씨가 쌍방울 측에 넘긴 수사기밀에는 상세한 범죄사실, 금융계좌 추적 대상자들의 이름, 법인, 계좌번호 등 쌍방울에 대한 검찰의 계좌압수수색영장 내용이 통째로 담긴 것으로 드러났다.
● 계좌 압수수색영장 내용 통째로 넘어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전주혜 의원실이 법무부로부터 제출받은 A4용지 8장 분량의 쌍방울 수사기밀 유출 의혹 사건의 공소장에는 올 5월부터 이뤄진 지속적인 수사기밀 유출 상황이 고스란히 적시돼있다. 앞서 수원지검 형사1부(부장검사 손진욱)는 지난달 23일 쌍방울 임원 A 씨와 검찰 수사관 B 씨를 각각 구속기소했다. 또 쌍방울의 변호인으로 활동했던 검찰 출신 변호사 C 씨도 불구속 기소했다.
공소장에 따르면 올 5월 A 씨는 검찰 수사관으로 근무할 당시부터 친분이 있던 후배인 B 씨에게 먼저 연락해 수사기밀 유출을 요청했다. A 씨는 B 씨에게 올 5월 중순 “쌍방울그룹 배임 횡령 사건과 관련해 검찰에 무엇이 수사되고 있는 것인지 범죄사실만이라도 좀 알려달라”고 말했다. B 씨는 올 2월부터 쌍방울그룹의 수상한 자금 흐름 의혹 사건을 수사 중인 형사6부에서 근무했다.
B 씨는 올 5월 24일 수원지검 내 사무실에서 형사사법정보시스템(KICS·킥스)에 접속해 검찰에서 수사 중인 쌍방울그룹에 대한 계좌압수수색 내용을 열람한 뒤 이를 고스란히 복사해 워드프로세서 파일로 옮겨 넣었다. B 씨가 복사한 영장 내용은 피의자에 대한 각종 정보 및 향후 검찰의 수사 방향까지 가늠할 수 있는 극도의 보안이 요구되는 핵심 수사기밀이었다.
이후 B 씨는 그날 저녁 오후 6시 30분경 A 씨에게 카카오톡 보이스톡 통화를 통해 “선배님 저번에 부탁하신 것 가지고 있습니다. 저희 집 앞에 있는 한 주차장이 있는데 그리로 오십시오”라고 밝혔다. 그날 밤 약속된 장소에 도착한 A 씨에게 B 씨는 자신이 출력한 영장 내용 등을 전달했다.
다음날인 5월 25일 A 씨는 확보한 수사기밀을 가지고 쌍방울의 법률대리를 맡고 있던 법무법인M의 C 변호사에게 찾아가 해당 자료를 전달했다. C 변호사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변호인단으로 활동했던 이태형 변호사와 같은 법무법인에 근무하고 있었다. C 변호사는 자신의 사무실 직원에게 해당 수사기밀을 PDF 파일로 변환해 보관할 것을 지시했다.
쌍방울에 대한 수사기밀 유출이 시작된 시점인 올 5월 24일은 윤석열 정부의 첫 대규모 검찰 간부 인사가 단행된 직후로 전날 홍승욱 수원지검장이 부임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 친정권 성향으로 분류된 신성식 전 수원지검장 재직 시에는 쌍방울 관련 사건이 제대로 수사되지 않았다는 평가가 많았다. 하지만 검찰 지휘부 교체 후 대대적인 검찰의 수사가 시작될 것을 우려한 쌍방울 관계자들이 수사 내용을 파악하기 위해 무리수를 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법조계에서 나온다.
● 수사기밀 유출, 5~6월 사이 최소 3차례
공소장에 따르면 쌍방울에 대한 수사기밀 유출은 일회성에 그치지 않았다. A 씨는 올 6월 B 씨에게 “도대체 압수수색은 언제 나오느냐, 압수수색 시기를 알게 되면 좀 알려달라”는 요청을 지속적으로 했다. 이후 실제로 수원지검 형사6부가 올 6월 20일 법원에 쌍방울 그룹 본사 및 계열사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청구했고, 다음날인 21일 B 씨는 “어제 압수수색영장이 청구됐으니 참고하세요”라며 A 씨에게 수사상황을 알렸다. 다음날인 6월 22일에도 B 씨는 A 씨에게 재차 연락해 “오늘은 압수수색 안 나간다”면서 압수수색 집행시기를 쌍방울 측에 유출했다. 올 6월 23일부터 수원지검 수사팀은 쌍방울그룹 및 계열사에 대한 대대적인 압수수색을 나섰다. 하지만 쌍방울 핵심 관계자들의 PC 및 휴대전화 등이 대거 교체되거나 자료가 삭제되는 등 조직적인 증거인멸이 이뤄진 후였다. 더군다나 쌍방울의 실소유주인 김모 전 회장은 수사기밀 유출이 이뤄진 뒤 1주일 만인 올 5월 31일 싱가프로로 출국했다. 현재는 태국에 체류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검찰은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를 통해 김 전 회장에 대한 적색수배를 발부했고, 외교부를 통해 여권 무효화도 요청한 상태다.
국민의힘 전주혜 의원은 “쌍방울 수사 과정에서 조직적 은폐 사실이 드러난 만큼 그 배후에 누가 있는지 낱낱이 밝혀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