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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방울 수사기밀 유출, 계좌영장 등 통째로 넘어가…공소장 입수

입력 | 2022-09-07 18:05:00


“쌍방울 관련 사건으로 검찰에서 무엇을 수사하는지 범죄사실만이라도 좀 알려달라”(쌍방울 임원 A 씨)

“선배님 저번에 부탁하신 것 가지고 있습니다.”(검찰 수사관 B 씨)

올 5월 검찰 수사관 출신인 쌍방울그룹의 대관 담당 임원 A 씨와 쌍방울 관련 수사를 담당하는 수원지검 형사6부 소속 검찰 수사관 B 씨는 이 같은 대화를 나눈 것으로 밝혀졌다. 검찰 수사 결과 당시 B 씨가 쌍방울 측에 넘긴 수사기밀에는 상세한 범죄사실, 금융계좌 추적 대상자들의 이름, 법인, 계좌번호 등 쌍방울에 대한 검찰의 계좌압수수색영장 내용이 통째로 담긴 것으로 드러났다. 

● 계좌 압수수색영장 내용 통째로 넘어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전주혜 의원실이 법무부로부터 제출받은 A4용지 8장 분량의 쌍방울 수사기밀 유출 의혹 사건의 공소장에는 올 5월부터 이뤄진 지속적인 수사기밀 유출 상황이 고스란히 적시돼있다. 앞서 수원지검 형사1부(부장검사 손진욱)는 지난달 23일 쌍방울 임원 A 씨와 검찰 수사관 B 씨를 각각 구속기소했다. 또 쌍방울의 변호인으로 활동했던 검찰 출신 변호사 C 씨도 불구속 기소했다. 

  공소장에 따르면 올 5월 A 씨는 검찰 수사관으로 근무할 당시부터 친분이 있던 후배인 B 씨에게 먼저 연락해 수사기밀 유출을 요청했다. A 씨는 B 씨에게 올 5월 중순 “쌍방울그룹 배임 횡령 사건과 관련해 검찰에 무엇이 수사되고 있는 것인지 범죄사실만이라도 좀 알려달라”고 말했다. B 씨는 올 2월부터 쌍방울그룹의 수상한 자금 흐름 의혹 사건을 수사 중인 형사6부에서 근무했다. 

  B 씨는 올 5월 24일 수원지검 내 사무실에서 형사사법정보시스템(KICS·킥스)에 접속해 검찰에서 수사 중인 쌍방울그룹에 대한 계좌압수수색 내용을 열람한 뒤 이를 고스란히 복사해 워드프로세서 파일로 옮겨 넣었다. B 씨가 복사한 영장 내용은 피의자에 대한 각종 정보 및 향후 검찰의 수사 방향까지 가늠할 수 있는 극도의 보안이 요구되는 핵심 수사기밀이었다. 

  이후 B 씨는 그날 저녁 오후 6시 30분경 A 씨에게 카카오톡 보이스톡 통화를 통해 “선배님 저번에 부탁하신 것 가지고 있습니다. 저희 집 앞에 있는 한 주차장이 있는데 그리로 오십시오”라고 밝혔다. 그날 밤 약속된 장소에 도착한 A 씨에게 B 씨는 자신이 출력한 영장 내용 등을 전달했다. 

  다음날인 5월 25일 A 씨는 확보한 수사기밀을 가지고 쌍방울의 법률대리를 맡고 있던 법무법인M의 C 변호사에게 찾아가 해당 자료를 전달했다. C 변호사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변호인단으로 활동했던 이태형 변호사와 같은 법무법인에 근무하고 있었다. C 변호사는 자신의 사무실 직원에게 해당 수사기밀을 PDF 파일로 변환해 보관할 것을 지시했다.  

  이들의 범행은 올 7월 이 대표의 변호사비 대납 의혹 사건을 수사 중인 수원지검 공공수사부(부장검사 정원두)의 압수수색 과정에서 발각됐다. 수원지검 수사팀이 법무법인M의 이태형 변호사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면서 법인 직원의 PC에서 수원지검 형사6부에서 생성한 수사기밀 자료가 보관돼 있던 것을 발견한 것이다. 

  쌍방울에 대한 수사기밀 유출이 시작된 시점인 올 5월 24일은 윤석열 정부의 첫 대규모 검찰 간부 인사가 단행된 직후로 전날 홍승욱 수원지검장이 부임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 친정권 성향으로 분류된 신성식 전 수원지검장 재직 시에는 쌍방울 관련 사건이 제대로 수사되지 않았다는 평가가 많았다. 하지만 검찰 지휘부 교체 후 대대적인 검찰의 수사가 시작될 것을 우려한 쌍방울 관계자들이 수사 내용을 파악하기 위해 무리수를 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법조계에서 나온다.

● 수사기밀 유출, 5~6월 사이 최소 3차례 
  공소장에 따르면 쌍방울에 대한 수사기밀 유출은 일회성에 그치지 않았다. A 씨는 올 6월 B 씨에게 “도대체 압수수색은 언제 나오느냐, 압수수색 시기를 알게 되면 좀 알려달라”는 요청을 지속적으로 했다. 이후 실제로 수원지검 형사6부가 올 6월 20일 법원에 쌍방울 그룹 본사 및 계열사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청구했고, 다음날인 21일 B 씨는 “어제 압수수색영장이 청구됐으니 참고하세요”라며 A 씨에게 수사상황을 알렸다. 다음날인 6월 22일에도 B 씨는 A 씨에게 재차 연락해 “오늘은 압수수색 안 나간다”면서 압수수색 집행시기를 쌍방울 측에 유출했다. 

  올 6월 23일부터 수원지검 수사팀은 쌍방울그룹 및 계열사에 대한 대대적인 압수수색을 나섰다. 하지만 쌍방울 핵심 관계자들의 PC 및 휴대전화 등이 대거 교체되거나 자료가 삭제되는 등 조직적인 증거인멸이 이뤄진 후였다. 더군다나 쌍방울의 실소유주인 김모 전 회장은 수사기밀 유출이 이뤄진 뒤 1주일 만인 올 5월 31일 싱가프로로 출국했다. 현재는 태국에 체류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검찰은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를 통해 김 전 회장에 대한 적색수배를 발부했고, 외교부를 통해 여권 무효화도 요청한 상태다. 

  국민의힘 전주혜 의원은 “쌍방울 수사 과정에서 조직적 은폐 사실이 드러난 만큼 그 배후에 누가 있는지 낱낱이 밝혀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