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를 영화로 읇다] 〈44〉영광스러운 날의 회한
영화 ‘산딸기’에서 박사 학위 취득 5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이삭 보리(오른쪽)는 지난날에 대한 상념에 빠져든다. 백두대간 제공
잉마르 베리만 감독의 ‘산딸기’(1957년)에서 여든이 다 된 주인공 이삭 보리는 박사학위 취득 5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에 참석한다. 조선 후기 문신 정기안(1695∼1775)도 여든 되던 해 소과(생원·진사를 뽑던 과거) 급제 60주년을 기념한 의식에 다녀온 뒤 다음 시를 남겼다.
시인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젊은 날 친족 정사효가 무신란(戊申亂)에 연좌돼 죽자 자신의 본래 이름인 사안(思安)을 기안으로 바꿀 만큼 전전긍긍했다. 두 번이나 아내를 잃고 자식들을 앞세우기도 했다. 이 무렵 시인은 이영보를 꿈에서 만나고 서글퍼하는 시를 남겼다. 이영보는 진사 시험에 함께 합격한 각별한 벗이었지만 세상을 뜬 지 오래였다. 영화 속 주인공이 가족에게마저 냉정하고 완고한 학자였던 것처럼, 시인도 융통성 없고 직설적인 성격으로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했다. 하지만 이영보만은 시인을 믿고 받아주었다.
영화 제목 ‘산딸기’는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 개인적인 추억의 장소를 뜻한다고 한다. 영화에선 기념식에 참석하러 가는 길에 만난 사람들을 통해 주인공의 아픈 기억이 그려진다. 어떤 영광으로도 채울 수 없는 시인의 회한은 무엇이었을까.
임준철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