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내각에는 ‘The Great Offices of State(국가 중요 관직)’라고 불리는 4개의 자리가 있다. 내각 구성원 중에서도 특히 역할이 중요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인데, 총리와 재무장관, 외교장관, 내무장관을 가리킨다. 6일 출범한 리즈 트러스 내각은 이 ‘빅4’를 모두 백인 남성이 아닌 인물들로 채웠다. 영국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보수당 소속이면서도 취임 일성으로 “개혁”을 외친 트러스 총리의 승부수다.
▷내각의 2인자로 평가되는 쿼지 콰텡 재무장관은 아프리카 가나 출신으로, 사상 첫 흑인 재무장관이 됐다. 영국인 부친과 시에라리온 출신 모친 사이에서 태어난 제임스 클레벌리 외교장관은 “혼혈이라는 이유로 어린 시절에 끊임없이 놀림을 당했다”고 스스로 밝히기도 했다. 출입국 정책 등을 담당하는 내무부를 지휘하게 된 수엘라 브래버먼 역시 아프리카와 인도 혈통이 섞인 비백인 여성이다. 보수층에서는 “주요 직위에 백인 남성의 자리는 없느냐”는 불만이 나온다.
▷반면 야당 노동당에서는 이들의 발탁을 놓고 “구색 맞추기에 불과하다”는 혹평을 내놨다. 불법 이민자 단속을 강화하겠다는 트러스 총리는 물론 세 명의 장관 모두 보수 일색이라는 것이다. 콰텡은 브렉시트와 감세에 적극 찬성했고, 클레벌리는 러시아와 중국에 대한 강경한 대응을 주문해왔다. 브래버먼은 학교가 학생들의 성(性)적 지향을 존중할 법적 의무는 없다는 칼럼을 쓴 적이 있다. 세 사람은 트러스의 당 대표 선거를 지원한 핵심 측근들이기도 하다.
▷영국 보수당은 전 세계 보수정당의 원조라고 할 만큼 역사가 길다. ‘토리’라는 정파가 생긴 지는 300년이 넘었고, 보수당이라는 이름의 정당으로 활동한 지도 200년 가까이 된다. 그동안 디즈레일리, 처칠, 대처 같은 지도자들은 원칙을 중시하면서도 정치·사회적 변화를 요구하는 민심을 적극 수용했고, 그 힘을 바탕으로 보수당은 유지돼 왔다. 트러스 총리의 성패는 이런 과거의 교훈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개선해서 실행할지에 달렸을 것이다.
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