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제외 주요국 대부분 ‘9월 학기제’ 시행 ‘3월 입학’으론 유학생 보내기도 받기도 곤란 만 5.5세 입학 등 점진적 변화 필요하다
김도연 논설위원·서울대 명예교수
9월에 들어섰다. 추석 명절이 눈앞이니 애국가에 나오는 높고 구름 없는 가을 하늘도 곧 우리와 함께할 것이다. 조병화 선생은 ‘9월의 시’에서 ‘세상사 떠나는 거, 비치파라솔은 접히고 가을이 온다’고 했다. 만물이 무성하며 번다(繁多)했던 여름에 비해 가을의 분위기는 한결 정적(靜的)이다. 차분한 마음으로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기에 좋은 계절이다. 우리 초등학교를 비롯한 각급 학교들도 대부분 9월 1일을 전후로 새로운 학기에 접어들었다. 1학기에 이어 2학기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처럼 9월에 2학기를 시작하는 경우는 국제 사회에서 전혀 일반적이지 않다. 주요 7개국(G7)을 포함한 대부분의 나라는 9월에 입학하면서 첫째 학기를 시작하는 소위 9월 학기제를 택하고 있다. 여기에서 예외는 4월에 입학하고 10월에 2학기를 시작하는 일본인데, 우리도 8·15 광복 후 한참 동안 이 제도를 유지했었다. 1962년에 이르러 3월로 입학을 한 달 당겼는데, 아마도 혹서기와 혹한기 수업을 피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여하튼 우리의 현행 3월 학기제는 일본이 남긴 교육체계다.
사실 1년간의 교육을 3월이나 9월 어느 때 시작하건 교육 내용이나 성과에서 큰 차이는 없다. 그러나 9월 학기제는 절대적으로 많은 나라들이 택하고 있다는 점에서 글로벌 스탠더드인 셈이다. 교육만이 아니라 다른 여러 측면에서도 국제적인 기준과 다르면, 이미 지구촌화된 세계에서는 활동에 불편이 따를 수밖에 없다. 이슬람 국가의 휴일은 종교적으로 일요일이 아닌 금요일이어서 그들의 주말은 전통적으로 금, 토였는데, 최근 아랍에미리트(UAE) 등은 이를 토, 일로 변경했다. 이슬람이란 단어는 절대 순종을 의미한다. 그들은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추기 위해 종교적 신념을 무너뜨리는 엄청난 변화를 택한 것이다.
초연결된 디지털 문명 세계에서 활동할 우리 학생들을 위해 9월 학기제로의 변경은 마땅히 추진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이는 오래된 제도와 관행을 바꾸는 것이기에 쉬운 일은 아닐 것으로 믿어진다. 변경에 따른 갈등도 필연이다. 이번 정부에서 국민적 동의를 얻어 시작하고 다음 정부에서 계획이 완료되는 장기적인 변화를 모색하면 좋겠다. 면밀한 검토를 거쳐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정권과 상관없이 계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정부가 바뀌면 마치 컴퓨터를 리셋(reset)하듯 모든 것을 갈아엎고 단시간에 새롭게 시작하는 개혁은 교육에서는 금물이다.
9월 학기제를 추진할 경우, 구체적 방안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우선은 초등학교를 현재보다 6개월 일찍 입학하는 방향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오히려 늦추는 것은 그 역시 글로벌 스탠더드에서 벗어나는 일이며, 또 일찍 성숙하는 요즈음 어린이들에게 적합하지 않은 일이다. 지난번 교육부가 제기했던 만 5세 초등학교 입학이 아닌 만 5.5세 입학이 적절할 것으로 믿어진다. 이 경우에는 유아교육도 현행보다 6개월을 앞당겨야 할 것이다.
이런 원칙하에서 현재 각급 학교들이 채택하고 있는 1년 12개월 교육과정을 한 달 줄여 11개월로 압축할 수 있다면, 6년간의 과도기를 거쳐 9월 학기제로 전환할 수 있다. 즉, 첫 해에는 3월에 개학한 학기를 다음 해 2월이 아닌 1월에 모두 마치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해에는 2월에 개학해서 12월에, 그 다음엔 1월에 개학해서 11월에 학년을 수료하는 식이다. 제도 전환에 따른 재정이나 인력 측면에서 부담은 없지만 교육과정 압축 등을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을 갖고 치밀하게 준비해야 할 것이다. 공론화를 통한 사회적 합의를 이룬 후, 1년 정도의 준비 기간을 갖고 6년 계획으로 변화를 꾀하면 좋겠다.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교육개혁에 9월 학기제를 본격적으로 고려하기 바란다. 어렵다고 계속 미루기만 할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