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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돛’을 단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신아형의 코스모스]

입력 | 2022-09-09 10:00:00


아르테미스 계획 상상도. 나사 


미국 항공우주국(NASA·나사)이 아폴로 17호 발사 이후 50년 만에 달 탐사 미션을 재개했습니다. 태양의 신 아폴로의 쌍둥이 여동생, ‘달의 여신’ 이름을 따 ‘아르테미스’라고 명명한 프로젝트인데요. 하지만 지난달 29일에 이어 이달 3일 연료 누출 결함으로 아르테미스 로켓을 쏘아 올리지 못하면서 프로젝트가 연기되고 있습니다.

6일 미국 플로리다주 케네디우주센터 이동식 발사대에 아르테미스의 발사 로켓인 스페이스론치시스템(SLS)이 세워져 있다. AP 뉴시스 


아쉽게도 웅장한 발사 장면은 아직 보지 못했지만, 엔지니어들이 분주히 문제를 해결하는 동안 아르테미스에 대해 예습을 해볼까 합니다. 
우주선에 돛을 달다

태양광 돛 일러스트. 나사


아르테미스 프로젝트를 통한 나사의 궁극적 목표는 2025년 인간을 다시 달에 보내는 겁니다. 하지만 이게 다는 아닙니다. 나사는 아르테미스 프로젝트의 첫 미션으로 42일간 약 210만km를 비행하면서 달 뒷면 너머 약 6만4000km까지 도달해 우주생물과 우주 환경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 등 다양한 연구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더 멀리, 더 오랫동안 우주탐험을 하기 위해선 그만큼 더 많은 양의 연료가 필요하겠죠. 하지만 우주선에 싣고 갈 수 있는 연료의 양은 한정적입니다.

최소한의 비용으로 조금이라도 더 오래 비행할 방법은 없을까요? 과학자들은 그 해결책으로 아르테미스 우주선에 ‘돛’을 숨겨놨습니다. 네, 지금 여러분이 떠올리고 있는 배에 다는 그 돛 맞습니다. 아르테미스의 돛은 86제곱미터 크기로 은색의 알루미늄 폴리머로 만들어졌습니다. 사진에서 보다시피 쿠킹호일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훨씬 얇습니다. 

태양광 돛 실제 모습. 나사

광자로 항해하다

우주 공간은 바람도 불지 않는 진공 상태인데 웬 돛이냐고요? 바람이 없어도 괜찮습니다. 아르테미스의 돛은 태양열의 ‘광자(photon)'로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과학용어가 나왔다고 당황하지 마세요. 포기하긴 아직 이릅니다.

광자, 쉽게 말해 빛의 알갱이입니다. 빛의 가장 작은 단위의 입자로, 더 작은 무언가로 쪼갤 수 없습니다. 탁구공 하나가 광자 입자 한 개라고 상상해보세요. 가만히 서 있는 물건에 탁구공 하나를 던지면 별 타격이 없겠죠. 하지만 수만, 수억 개의 탁구공을 던지면 물건을 움직이게 할 충분한 힘을 가할 수 있을 겁니다.

광자 일러스트. 천문학 월간지 에스트로노미 캡처 


사실 해가 떠있는 동안 우리 몸도 햇빛의 광자에 계속 두들겨 맞고 있는 중입니다. 다만 태양과 떨어져 있는 거리 등의 이유로 우리는 광자가 우리 몸을 밀치는 걸 느끼지 못할 뿐입니다. 

아르테미스 우주선의 경우 태양에 더 가까이 접근할 수 있겠죠. 이때 빛의 반사가 가능한 충분히 넓은 면적의 돛을 펼치면 수많은 광자들이 이 돛에 부딪혀 튕기면서 움직이게 만듭니다. 돛의 각도를 바꾸면 탐사 경로도 조정할 수 있죠. 이 원리를 ‘태양 항법(solar sailing·솔라세일)'이라고 부릅니다. 아르테미스도 솔라세일을 이용해 주어진 연료로 우주의 더 깊은 곳까지 탐사할 수 있게 된 겁니다.

미 국제민간우주기구 행성협회의 태양광 돛 ‘라이트세일’



여기서 잠깐 사실 광자는 질량이 없습니다. 질량이 없는데 에너지를 가할 수 있는 이유는 물체의 운동을 지속토록 하는, 또는 운동을 멈추기 어렵게 만드는 물리량인 ‘운동량(momentum)'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광자를 연료 대신 사용할 수 있는 근원, 바로 광자의 ‘운동량‘입니다. 

돛대 대신 ‘큐브셋’
이 돛은 어디에 숨어 있는 걸까요? 배처럼 돛대에 달아놨다가 밧줄을 당겨 펼칠 수는 없을 텐데 말이죠.

아르테미스 우주선 ‘오리온’에 부착된 큐브셋들. 나사



아르테미스는 발사체 역할을 하는 스페이스론치시스템(SLS)과 우주선 오리온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이중 오리온에는 초소형 인공위성인 ‘큐브셋(Cubesat)' 10개가 부착돼 있습니다. 큐브셋 하나가 신발상자 크기 정도 되는데요. 최대한 가벼워야 하기 때문에 무게는 최대 10kg 이하로 디자인됩니다. 

큐브셋들은 로켓이 발사된 뒤 우주에 진입하면 오리온과 분리됩니다. 돛은 바로 이 큐브셋에 있습니다. 추진력이 필요할 때 고이 접어 넣어둔 얇은 돛이 십자형으로 펼쳐지죠. 이후 각각의 큐브셋은 달뿐만이 아니라 소행성 등으로 흩어져 필요한 과학 데이터를 수집합니다.

우주에 떠다니는 큐브셋. 나사 


우주에서 돛 펼치는 큐브셋. 나사


큐브셋은 아르테미스 프로젝트에서 핵심적 역할을 합니다. 큐브셋 안에는 카메라와 작은 전자 장치, 부품 등이 들어 있는데, 이것들로 다양한 관측 활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죠. 예컨대 달의 햇빛을 받지 못하는 영구적으로 그늘진 지역인 이른바 ‘콜드 트랩’에 물이 얼음 형태로 보존돼 있을 가능성이 꾸준히 제기돼 왔지만 과학자들은 아직 얼음의 존재를 직접 확인하진 못했습니다. 나사는 큐브셋에 탑재한 레이저 광학 수신기를 이용해 직접 이 콜드 트랩의 얼음을 찾아 나설 예정입니다. 만약 성공하면 앞으로 달에서 식수와 로켓 연료를 구하게 될 수도 있겠죠. 
케플러-맥스웰-세이건의 이루지 못한 꿈
사실 솔라세일은 아주 오래 전부터 천문학자들의 연구 대상이었습니다. ‘모든 행성은 태양을 초점으로 타원궤도로 공전한다’는 ‘케플러 법칙’을 만든 독일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가 1610년 가장 먼저 ‘바람을 이용해 움직이는 돛단배처럼 우주에서도 돛을 달고 다닐 수 있겠다’는 아이디어를 제시했죠. 당시에는 다소 추상적이었지만 ‘전자기학의 아버지’ 제임스 클라크 맥스웰은 1873년 이 구상이 실현가능하다는 사실을 수학 공식으로 증명해냅니다.

요하네스 케플러

제임스 클라크 맥스퉬 



이후 1900년대 중후반 각국의 우주연구소들은 솔라세일 개발 경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듭니다. 나사와 러시아연방우주국, 일본 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 등이 너 나 할 것 없이 태양광 돛을 만들기 시작했죠.

이중 제일 먼저 성공한 나라는 일본입니다. JAXA는 2010년 세계 최초로 가로세로 길이 14m, 두께 0.0075mm 돛을 단 우주 범선 ‘이카로스’를 발사해 태양광만으로 6개월 만에 금성 근처 궤도까지 이동했습니다. 과연 나사 아르테미스의 돛은 이번에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까요?

이카로스의 태양광 돛. 일본 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



어쩌다 보니 이번 편도 미국 천문학자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에 나오는 문구로 마무리하게 됐네요. 참고로 칼 세이건은 솔라세일 원리 주창자로서 미 비영리 국제민간우주기구 행성협회의 태양광 돛 연구를 이끌었답니다.

1976년 미 유명 TV쇼 ‘투나잇쇼’에 출연해 솔라세일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칼 세이건. 유튜브 캡처 



“우리는 나그네로 시작했으며 나그네로 남아 있다. 인류는 우주의 해안에서 충분히 긴 시간 동안 꿈을 키워 왔다. 이제야 비로소 별들을 향해 돛을 올릴 준비가 끝난 셈이다”




신아형 기자 abr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