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트 미술관 이끄는 그녀, “예술은 새로운 세상을 꿈꾸게 한다”
안녕하세요,
지난주 영국 테이트 미술관을 이끄는 관장 마리아 발쇼가 한국을 찾아 직접 인터뷰를 하게 되었습니다!
테이트 미술관은 영국의 최대 공립 미술관으로 런던에 2개(테이트 모던, 테이트 브리튼) 미술관과 테이트 리버풀, 테이트 세인트아이브스 등 4개 미술관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아마 런던 여행을 간다면 테이트 모던은 많은 분들이 방문하는 코스이기도 할텐데요.
그녀는 자신이 워킹 클래스 출신으로 미술과 거리가 먼 유년 시절을 보내다, 우연히 TV로 접한 작품을 보고 호기심에 이끌려 미술의 세계에 발을 들였다고 하는데요. 자신을 지금의 자리에까지 이끌어준 것, 그리고 미술관의 새 역할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를 들려 주었습니다.
영감한스푼 미리보기
테이트 미술관장 마리아 발쇼 인터뷰마리아 발쇼는 30여 년 동안 테이트를 이끌었던 니콜라스 세로타 경의 뒤를 이어 디렉터가 됐다. 이 때 옥스브리지(옥스퍼드+케임브리지) 출신도, 런던 출신도 아닌 그녀의 이력이 화제가 됐다.
발쇼는 워킹 클래스 가정에서 자라 미술관과 거리가 먼 유년 시절을 살았다. 그러다 TV로 우연히 본 실험적 영상 작품을 보고 예술에 매료됐고, 예술을 통해 누구나 새로운 세상을 상상해보게 한다는 사람에 대한 애정으로 지금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그녀는 “어떤 작품이 좋고 별로인지 정해주는 미술관은 나쁜 미술관”이라며 “미술관은 모든 사람이 서로 동의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의 몇 안 되는 장소”라고 이야기했다.
여러분은 미술관에 친구와 가면 좋아하는 작품이 똑같나요?
마리아 발쇼는 한국에서 흔히 상상하는 ‘미술관장’과는 다른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미술관장을 ‘좋은 작품을 선별하는’ 권위있는 사람의 이미지로 생각했다면, 지금의 글로벌 미술 기관장들은 대부분 시대의 흐름을 빨리 파악하고 그것에 호응할 줄 아는 능력이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습니다. 이와 더불어 미술관 운영을 잘할 수 있는 경영자의 마인드도 필요합니다.그런 점에서 발쇼는 흥미로운 경력을 갖고 있습니다. 우선 그녀는 미술사가 아닌 문화 비평을 오랫동안 공부했고, 영국에서 권위있는 학교로 생각하는 옥스브리지(옥스퍼드+케임브리지) 출신이 아닙니다.
또 예술로서는 그리 주목받지 못했던 지역인 맨체스터 대학의 미술관장으로 일하며 리노베이션을 성공적으로 해내고, 관객 수를 두 배로 늘려 화제가 되었죠. 처음엔 맨체스터 대학 미술관만 맡다가 나중에는 시립 미술관장까지 겸했고, 2017년 테이트 디렉터를 맡게 되었습니다.
그런 그녀는 제게 ‘어떤 작품이 좋고 별로인지 정해주는 미술관은 나쁜 미술관’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한국을 찾은 마리아 발쇼 테이트 미술관장.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마: 미술관은 ‘열린 질문’을 하는 곳이에요. 당신은 이 작품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드나요? 어떤 감정이 드나요?를 물어볼 뿐 거기에 답은 없어요. 사회에서 대부분의 기관에는 답이 정해져있으니, 이런 질문을 받을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죠. 그렇지만 미술관은 언제나 다른 답을 듣고 싶어하고, 거기서부터 생산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내고자 합니다.
민: 미술관이 던지는 그 ‘열린 질문’을 어려워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아요.
마: 미술관에 친구와 갔을 때를 생각해보세요. 전시를 보고 나서 두 사람이 좋아하는 작품이 전부 일치했던 적이 있나요? 사실 대부분은 ‘난 그 작품 별로인데’, ‘그 작품이 왜 좋아??!’ 하면서 논쟁이 일어나죠. 그게 좋은 대화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지금처럼 이런 불확실성의 시대에. 미술관은 ‘생산적인 논쟁’을 위한 안전지대에요. 심지어는 사회적인 이슈도 미술관에서는 자유롭게 논의될 수 있죠. 미술관이 때로는 사람들을 화나게 할 수도 있지만 저는 그것도 좋다고 생각해요. 그것 역시 감정을 이끌어낸 것이기 때문이죠.
예술가들은 관객에게 세계를 보는 다양한 관점을 제시해주고, 보는 사람은 그것을 통해 비판적인 사고를 하게 되죠. 그런 것을 쉽게 할 수 있는 곳이 미술관이에요.
테이트 브리튼에서 전시 중인 현대미술가 코넬리아 파커의 설치 작품. 사진제공: 테이트
워킹클래스 출신으로 미술관장이 되기까지
민: 관객들이 자유롭게 생각해도 되고, 심지어 작품을 싫어해도 되며 화를 내도 좋다니. 운영자로서 우선은 강한 멘털을 가져야할 것 같고, 또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 대한 신뢰와 애정도 필요할 것 같아요. 저는 이런 타인에 대한 신뢰가 과거에 좋은 기억으로 가능해진다고 믿어요. 그 좋은 기억으로 좀 더 용기를 낼 수 있기 때문이죠. 혹시 그런 기억이 있으신가요?마: 저는 아주 화목한 가정에서 자랐지만, 워킹 클래스 출신이에요. 제 유년 시절은 미술관과 거리가 멀었죠. 그렇지만 성장 과정에서 ‘야망을 갖고, 어떻게 세상을 바꾸고 싶은지를 생각하고, 그것을 실천할 방법을 고민하는 것’을 많이 배웠어요.
그리고 10대 때 예술가들의 작품에서 인생 최대의 영감을 받았습니다. 그 시작은 텔레비전이었어요. 1980년대 채널4 방송국이 굉장히 실험적인 프로그램을 많이 했는데, 예술가 데렉 자만(Derek Jarman)의 영상 작품을 우연히 TV로 봤어요. 당시에는 TV에서 쉽게 볼 수 없던 굉장히 급진적인 이미지였어요.
그 때 완전히 다른 세상을 경험한 느낌을 받았어요. 그리고 이 세계가 무엇일까 정말 궁금해졌고요. 제 생각에 저를 이끈 것은 용기가 아니라 호기심이었던 것 같아요. 호기심 때문에 저는 제가 살던 지역을 벗어나 기차를 타고 런던에 가서 전시를 봤고, 리버풀에서 공부를 하면서 테이트 리버풀을 드나들게 되었죠.
영국의 예술가 데렉 자만(Derek Jarman)
민: 호기심이 두려움을 이겼다고 해야겠네요?
마: 네, 정확해요. 그리고 지금은 미술관장으로서 다양한 예술가를 더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어요. 어릴 때 제가 누구나 볼 수 있는 TV로 데렉 자만의 작품을 본 것 처럼요. 더 많은 사람들이 호기심을 느껴서 미술관을 겁내지 않고 편하게 들어오길 바라죠.
민: 예전 인터뷰에서 ‘예술가들은 우리가 살고 싶은 세상을 탐구하도록 해준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어요. 이런 말들도 결국은 10대 때 경험에서 우러난 것일까요?
마: 그렇다고 볼 수 있죠. 그런데 과거뿐 아니라 지금도 예술가들을 통해 그런 것을 느껴요. 테이트 미술관이 코로나19로 10개월만에 재개관했을 때, 영국 작가 헤더 필립슨 설치 작품을 테이트 브리튼에서 전시했었는데요.
어두운 조명에 모니터에 기괴한 형상들이 비추면서 디스토피아같은 풍경이 연출됐어요. 그런데 그 끝으로 가면 마치 빛나는 태양같은 복숭아가 있었는데, 정말 많은 젊은 관객들이 이것을 보러 왔어요. 저희가 소셜 미디어에 따로 홍보를 안했는데도 틱톡에 다수 영상이 공유되면서 바이럴해졌죠.
팬데믹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겪은 공포와 불안 끝에 결국은 희망의 빛이 올 거라는 메시지로 저는 느꼈는데, 아마 많은 사람들이 그런 희망의 필요성을 느꼈기에 공감한 것이 아닐까요?
테이트 브리튼 미술관에서 헤더 필립슨의 설치 작품. 사진제공: 테이트
미술관 전시 인증샷, 오히려 좋아
민: 지금까지 일해오신 커리어를 보면, 교과서에서 말하는 미술사보다 작품들을 통해서 만들어질 수 있는 다양한 스토리의 가능성을 강조하는 느낌을 받았어요. 실제로 그런가요?마: 네. 미술사는 절대 고정된 이야기가 아니라 시대에 맞춰 항상 변하거든요. 21세기 초반까지 우리가 알았던 미술사는 대부분 남성과 미국인, 유럽인을 중심으로 하고 있어요. 그런데 이것은 완벽하지도, 절대적이지도 않아요.
지금 런던에 거주하고 있는 50%가 흑인과 소수 인종이에요. 게다가 항상 열심히 활동하고 있었지만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여성 예술가들, 거기에 한국과 일본 이집트 케냐 인도 등 정말 다양한 곳에 예술가들이 있잖아요. 우리 미술관이 피카소를 내다 버리진 않겠지만, 과거의 좁은 미술사에서 더 넓은 범위로 확장하려고 하는거죠.
민: 그런데 예술 작품에서 다양한 이야기가 나올 수는 있지만, 모든 이야기가 유효한 것은 아니잖아요. 설득력 있는 이야기를 만들기 위한 조건은 뭐라고 할 수 있을까요?
마: 사람들을 가장 강력하게 끌어들일 수 있는 이야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물론 기본적으로는 작품의 퀄리티가 좋아야 하죠. 작품 자체가 미적인 힘을 갖추는 것에서 시작해야 해요. 그런데 그것만이 사람들을 예술과 연결시켜주는 요소는 아니거든요.
그 다음에는 지금의 사람들이 관심 갖는 주제와 연결 지으려는 노력이 필요해요. 최근에 그러한 주제로는 많은 사람들의 걱정 거리가 된 기후 변화를 들 수 있겠죠. 예술가들도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니 자연스럽게 그런 작품을 하게 되고요. 만약 우리가 그런 것을 다루지 않는다면 예술가와 관객을 외면하는 꼴이 되겠죠.
기후변화뿐 아니라 권력의 문제, 사회적 불평등의 문제도 중요한 주제가 되고 있습니다.
야요이 쿠사마의 관객 참여 설치 작품 'The Obliteration Room'(2002)를 테이트 모던에서 2022년 재현한 작품. 사진제공: 테이트, ⓒLiam Man
민: 아까 잠깐 틱톡 이야기를 하셨는데, 한국에서도 소셜 미디어 발달과 함께 젊은 관객이 늘어났어요. 그러면서 큐레이터들은 ‘인증샷’을 위한 구도를 은연 중에 생각하게 된다고도 털어놓는데요. 이런 현상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마: 소셜 미디어의 영향은 저희 미술관도 많이 받아요. 저는 그런 현상이 우려스럽다기 보다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모든 시대에는 새로운 것들이 등장하거든요.
19세기 윌리엄 터너의 시대에는 되도록 많은 그림을 한 벽에 거는 게 트렌드였어요. 이 때는 내 그림이 좋은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중요했어요. 이런 스타일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항상 바뀌는 것이고, 지금은 젊은 관객과 연결되기 위해서는 소셜 미디어가 가장 중요한 시대인거에요.
물론 큐레이팅을 할 때, ‘인증샷’이 관람을 방해하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 하죠. 테이트 미술관이 인스타그램을 사용할 때는 ‘인스타그래머블’하거나 가장 유명한 작품 보다는 제대로 보여지지 않는 작품들을 조명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테이트 모던 입구 에스컬레이터에 로버트 인디애나의 ‘LOVE’ 조각상이 있어요. 뻔하지만 이 조각상을 많은 젊은 커플들이 ‘인증샷’의 배경으로 쓴답니다. 저는 그게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고, 인디애나도 살아있었다면 아주 기뻐했을 거라고 봐요.
다시 말해서 우리는 인스타그램이 사람들의 관람을 방해하지 않도록 주의하지만, 사람들이 자신의 감상을 자유롭게 공유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주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민: 결국 그런 친근한 접근이 더 깊은 예술을 경험하게 하는 관문이 될 수도 있겠군요?
마: 그렇죠.
민: 마지막으로 이렇게 언제나 ‘열린’ 미술관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마: 기본적으로 테이트 미술관의 소장품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입니다. 과거처럼 10% 상류층만을 위한다면 그것은 미술관의 원칙에 어긋나는 일이죠. 테이트 미술관의 40%는 영국 정부에서 지원을 받고 있기도 하고요.
여기에 미술관이 줄 수 있는 영감, 지적인 도전, 정치적인 논쟁에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것은 사회에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미술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공익을 위해 이 모든 일이 잘 이뤄지도록 노력하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마리아 발쇼 관장이 한국을 찾은 것은 ‘2022 미술주간(9월 1~11일)’의 일환으로 문체부와 예술경영지원센터가 개최한 ‘2022 한국 미술시장 학술대회’(KAMA 콘퍼런스)에 참석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콘퍼런스에서 발쇼 관장은 ‘테이트 컬렉션’에 관한 강연을 했습니다.
‘한국에도 미술관이 많이 생기고 있는데, 컬렉션이 부족하다. 이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겠느냐’는 질문에 발쇼 관장은 “관객들을 얕봐서는 안 된다”며 “어떤 상황에서는 최고의 작품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한다면, 지금처럼 디지털로 많은 것들이 연결된 시대에 자연스럽게 존재감이 드러날 수 있을 것”이라는 답을 해주었습니다.
※ ‘영감 한 스푼’은 국내 미술관 전시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아래 링크로 구독 신청을 하시면 매주 금요일 아침 7시에 뉴스레터를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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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