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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에서 세계 최고 무대로…안토니가 새로 쓰는 성공 신화[이원홍의 스포트라이트]

입력 | 2022-09-09 15:00:00

호날두 메시처럼 고난 극복한 스타 대명사될까
EPL 역대 4위 이적료로 맨유 이적
작은 지옥으로 불리던 브라질 빈민가 출신
드리블 돌파와 창의적 플레이로 주목




안토니(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5일 영국 맨체스터에서 열린 2022~2023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6라운드 아스널과의 경기에서 그라운드를 누비고 있다. 맨체스터=AP 뉴시스

“진짜 힘든 일은 빈민가에서 살 때였어요. 아침 9시에 학교로 가면 밤까지 굶을 수도 있었거든요.”

최근 네덜란드 아약스로부터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로 옮긴 브라질의 신성 안토니(22)가 영국 공영 BBC 등을 통해 힘겨웠던 어린 시절에 대해 밝혔다.

이적 전문 사이트 트랜스퍼마크트에 따르면 안토니의 이적료는 9500만 유로(약 1291억원)로 EPL 사상 4번째 거액이다.

EPL 역대 이적료 1위는 잭 그릴리시(27·영국)가 지난해 8월 아스톤 빌라(잉글랜드)에서 맨체스터 시티(잉글랜드)로 옮길 때 기록했던 1억1750만 유로(약 1597억원), 2위는 로멜로 루카쿠(29·벨기에)가 지난해 8월 인터밀란(이탈리아)에서 첼시(잉글랜드)로 이적할 때의 1억1300만 유로(약 1535억 원), 3위는 폴 포그바(29·프랑스)가 2016년 8월 유벤투스에서 맨유로 옮길 때 기록했던 1억5백만 유로(약 1426억 원)다.

안토니의 이적료는 축구계 전체에서도 역대 13위에 해당한다. 축구계 전체에서의 역대 이적료 1위는 네이마르(30·브라질)가 2017년 8월 바르셀로나(스페인)에서 파리 생제르맹(PSG·프랑스)으로 옮길 때 기록했던 2억2200만 유로(약 3016억 원), 2위는 킬리안 음바페(24·프랑스)가 2018년 1월 프랑스리그 소속인 모나코에서 PSG로 옮길 때 세웠던 1억 8000만 유로(약 2445억 원)이다.

●‘작은 지옥’ 출신의 성실함
축구계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안토니지만 어린 시절은 극도의 가난에 시달렸다. 그는 브라질 상파울루 외곽 지역인 오자스쿠의 빈민가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흔히 ‘파벨라’라고도 불리는 브라질 빈민가 중 한 곳이다. 그가 살던 동네는 ‘작은 지옥’이라는 별칭이 붙었을만큼 환경이 열악하고 위험한 곳이었다고 한다. 동네에서 마약 거래상들과 마주치기 일쑤였고, 범죄자들이 경찰에 쫓기는 모습을 보며 자랐다. 그의 집 근처에서 사람들이 피살되기도 했다. BBC는 “선수 경력 중 가장 힘들었던 시기가 언제였느냐”는 질문에 그가 “진짜 힘든 시기는 빈민가에서 살 때였다. 그게 좀 힘든 일이었다. 다른 일에는 모두 적응할 수 있다”고 답했다고 전했다. 밥을 굶어야했을 정도로 가난했던 점에 비하면 다른 일들은 별거 아니었다는 말처럼 들릴 수 있다.

그는 18세였던 2018년 11월 상파울루 1군 선수로 데뷔했다. 본격적인 활동을 눈앞에 둔 2019년 초 구단은 그에게 다시 20세 이하 팀으로 내려가 유스 대회에 참가하라고 했다. 상파울루 구단은 시즌 개막을 앞두고 미국 투어를 할 예정이었다. 많은 선수들이 해외 투어를 고대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다른 어린 선수들은 화려한 조명을 받게 되는 미국 투어에서 빠진 채 다시 20세 이하 팀으로 내려가라고 하면 불만을 터뜨리거나 거부했지만, 안토니는 군말 없이 이를 받아들였다고 당시 상파울루 고위 관계자가 BBC에 전했다. 상파울루는 미국 투어 기간 도중 프랑크푸르트(독일), 아약스(네덜란드) 등과의 경기를 앞두고 있었다. 안토니가 이 투어에 따라갔다고 하더라도 아직 신인이었던 그는 출전 시간을 보장받을 수 없었다. 그러나 유스팀에 가면 출전 시간을 더 늘릴 수 있었다. 본격적인 시즌 개막을 앞두고 안토니는 화려한 미국 투어 대신 실속 있는 훈련 및 경험을 늘릴 수 있는 유스팀 대회 참가를 택했다. 그리고 이 선택은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됐다.

안토니(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5일 영국 맨체스터에서 열린 2022~2023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아스널과의 경기에서 전반 35분 선제 골을 넣은 뒤 골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3-1로 이겼다. 맨체스터=AP 뉴시스

●“위협적인 존재가 될 것”
성실하고 겸허한 자세를 보인 안토니에 대해 구단의 인식이 달라졌을 뿐 아니라 조금이라도 더 훈련 시간을 늘리며 시즌을 대비한 안토니의 노력이 결실을 맺었다. 2019년 안토니는 브라질 1부 리그인 세리에A에서 4골 6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신인으로서는 놀라운 성적을 올렸다. 이 활약으로 눈에 띈 안토니는 아약스로부터 영입 제안을 받았고, 2020년 네덜란드 리그에 발을 디디며 유럽 무대에 진출했다.

아약스에서도 그는 총 82경기에서 24골 22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당시 팀을 이끌던 에릭 텐하흐 감독(52)의 눈에 들었다. 텐하흐 감독이 올해 7월 먼저 맨유 감독으로 자리를 옮겼다. 텐하흐 감독은 맨유의 전력을 보강하기 위해 이번 여름 이적 시장에서 공을 들여 안토니를 아약스에서 맨유로 데려왔다. 일부에서는 그토록 많은 이적료를 지불하면서까지 안토니를 데려올 필요가 있느냐는 지적도 나왔다.

하지만 그의 능력을 눈여겨 본 텐하흐 감독은 “위협적인 존재가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의 성장을 의심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안토니는 5일 영국 맨체스터에서 열린 2022~2023 EPL 아스널과의 6라운드 경기에서 전반 35분 선제골을 넣으며 팀의 3-1 승리를 이끌었다. EPL 무대에서의 첫 골이다. 이날 크리스티아누 호날두(37·포르투갈)를 대신해 선발로 나선 안토니는 호날두가 그랬던 것처럼 맨유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세계적인 선수로 거듭날 준비를 하고 있다.

안토니는 2021년 10월 베네수엘라와의 경기를 통해 브라질대표팀에서도 데뷔전을 치렀다. 그의 플레이를 본 네이마르는 주변에서 안토니가 드리블을 너무 많이 한다며 패스를 좀 더하라고 지적하자 “안토니가 더 드리블하게 놔두라”고 안토니를 두둔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토니의 드리블을 통한 돌파와 창의적 플레이를 평가한 것이다. 안토니는 올해 말 열리는 2022 카타르 월드컵을 통해서도 세계 축구팬들에게 자신을 알릴 기회를 기다리고 있다.

●호날두 메시 음바페에 이은 신화 준비
많은 선수들이 가난을 극복하고 성공 신화를 썼다. 현재 최고의 축구 스타로 꼽히는 호날두와 리오넬 메시(35·아르헨티나)도 마찬가지다. 포르투갈의 극빈 가정에서 태어난 호날두는 어릴 때 가난하다고 친구들이 축구놀이에 끼워주지 않아 혼자 흙장난을 하며 놀고는 했다.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 형은 마약 중독자였다. 어머니가 청소 일을 하며 가족을 부양했다. 축구에 눈을 떠 어렵게 시작했지만 심장에 이상이 있어 15세 때 수술을 받아야했다. 메시 역시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어릴 때 성장호르몬 결핍증을 앓아 성장이 느렸다. 재능은 있지만 왜소했던 메시는 이런 이유로 일부 팀에서 입단을 거절당하기도 했다. 구단이 그의 치료비를 대는 것에 부담을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호날두는 쉬지 않는 노력으로 정상에 올랐다. 호날두는 연습 벌레로도 유명하다. 맨유 시절 알렉스 퍼거슨 전 감독(81)이 호날두가 너무 훈련을 많이 해 일부러 쉬게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메시는 바르셀로나가 치료비를 대주는 조건을 포함해 계약했기에 치료를 받을 수 있었지만 아직도 169cm 단신이다. 하지만 키가 작은 대신 신체의 무게중심이 낮아 드리블을 잘할 수 있는 이점을 얻었다. 무게중심이 낮으면 쉽게 넘어지지 않고 몸의 방향을 순간적으로 바꾸는데 유리하다. 메시는 드리블의 달인이 됐다.

호날두와 메시를 뒤이을 최고의 축구 선수로 꼽히는 음바페도 마찬가지다. 음바페는 프랑스 파리 외곽 봉디 출신이다. ‘방리유’라고도 불리는 대도시 외곽의 빈민가 중 한 곳이다. 브라질에 ‘파벨라’가 있다면 프랑스에는 ‘방리유’가 있는 격이다. 방리유에는 가난한 이민자 출신들이 많이 산다. 범죄와 테러의 온상지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 음바페 역시 가난했지만 꿈을 잃지는 않았다. 그는 “사춘기 시절 축구에 전념하느라 보통 사람처럼 지내지 못했다. 하지만 그 덕에 지금은 내가 꿈꾸는 삶을 살게 됐다”고 말했다.

한 세대를 풍미했던 호날두와 메시에 이어 그 뒤를 이을 재목으로 꼽히는 음바페 모두 넉넉하지 못한 환경 속에서 자랐다. 뛰어난 재능도 있었지만 남다른 노력도 빠지지 않았다. 그 노력 속에서는 가난으로 겪었던 고난을 극복해보려는 의지도 작용했을 것이다. 안토니도 이제 주목을 받으며 세계 최고의 무대에 섰다. 그가 지금보다 더 높이 비약한다면 호날두 메시에 이어 고난 속에 꽃을 피운 또 다른 대스타로 기록될 것이다. 누군가는 그런 그를 보며 새로운 꿈을 꿀 수 있다.




이원홍 기자blues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