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당구 선수 히다 오리에(47·SK렌터카)에게 정상은 늘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오리에는 1995년 3쿠션 선수로 데뷔한 이래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네 차례 우승하며 일본 3쿠션계의 간판으로 자리잡았다. 오리에는 세계캐롬당구연맹(UMB) 랭킹 3위에 올라있던 지난해 7월 우선등록 선수로 한국 무대인 여자프로당구(LPBA)에까지 도전장을 내밀었다.
세계 무대에서 승승장구하던 오리에였던 만큼 LPBA 첫 시즌 부진은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오리에는 2021~2022시즌 개막전인 블루원리조트 챔피언십부터 예선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그해 오리에는 총 4개 대회에 출전해 8전 5승 3패로 최고 성적 17위에 그쳤고, 지난 시즌 에버리지가 0.620으로 낮을 만큼 경기 내용도 좋지 않았다.
히다 오리에가 11일 경기 고양시 소노캄고양에서 열린 여자프로당구 TS샴푸·푸라닭 챔피언십 결승에서 샷을 준비하고 있다. LPBA 제공
우승 전부터 오리에의 성적은 기지캐를 켜고 있었다. 3개 대회를 치르며 오리에는 이번 시즌 에버리지를 0.912까지 끌어올렸고, 최근 14번의 경기에서 12승(2패)을 거두며 승률 0.857을 기록했다. 경기 후 오리에는 “한국에 온 뒤 일본 팬들에게 좋은 경기를 보여주지 못해 걱정을 끼쳐드렸는데 이제 우승을 해서 기쁘다”고 말했다.
히다 오리에가 11일 여자프로당구 TS샴푸·푸라닭 챔피언십 결승에서 우승을 차지한 뒤 트로피를 들어올리며 웃음짓고 있다. LPBA 제공
오리에는 지난 시즌 부상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지난해 3차 대회인 휴온스 챔피언십 이후 왼쪽 눈에 망막박리 증상이 나타나면서 수술을 받게 된 것이다. 아버지도 앓았던 증상이었지만 당구에만 집중해왔던 오리에는 자신의 눈에 조금씩 찾아온 변화를 빨리 알아차리지 못했다. 오리에는 “(질환) 발견이 늦어서 시력이 많이 떨어졌다. 선수 생활을 포기할 생각도 했지만 한국의 좋은 병원에서 수술을 하게 되면서 재기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재활 기간에도 오리에는 큐를 놓지 않았다. 의사는 당구를 비롯한 운동을 금지했지만, 몰래 왼쪽 눈을 감고 스트로크 훈련을 하며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쓰지 않던 안경을 쓰면서 낮았던 스트로크 자세도 높일 수밖에 없었고, 스트로크에 힘을 실을 때에도 몸이 흔들리는 부작용이 생겼다.
강동웅 기자 lep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