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불러줘…’ 국내 출간, 美 20대 흑인 시인 고먼 본보 단독 인터뷰 바이든 취임식 축시 낭송후 스타덤… “나는 흑인작가들의 딸, 투사의 후손” 시 낭송할 때마다 미리 속으로 외워… “2036년에는 시인 아닌 대통령이 꿈 ‘블랙핑크’, ‘사랑의 불시착’ 좋아해”
미국 청년시인 어맨다 고먼은 “대통령 취임식과 그 뒤로 이어진 시간들은 마치 로켓에서 발사된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처럼 짧은 시간에 높은 궤적을 그린 시인은 정말 드물 것이다. 하지만 그런 순간 뒤에는 그런 기회로 이어질 수 있었던, 헤아릴 수 없는 노력과 헌신이 있었다”고 전했다. ⓒDanny Williams
“우리가 함께 겪으며 살아나가고 있는 팬데믹(Pandemic)에서 중요한 건 ‘모두’라는 뜻이 담긴 ‘팬(pan)’입니다.”
지난해 1월 미국 백악관에서 열린 대통령 취임식에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조 바이든 대통령이 아니었다. 빨간 머리띠에 노란 코트를 입고 5분 40초 동안 축시를 낭독한 앳된 얼굴의 흑인 여성이었다. 시인 어맨다 고먼(24)은 10만 명도 되지 않던 트위터 팔로어가 취임식 직후 110만 명을 넘어설 정도로 세계적인 관심을 모았다.
“처음엔 주어를 ‘나’로 쓰기 시작했지만 어느 순간 ‘우리’가 돼 있었어요. 우리에겐 다른 사람들과 연결된 수많은 문과 다리와 틈이 있어요. 지금의 고통도 개인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겪고 있죠. 그래서 ‘우리’라는 단어를 많이 썼습니다.”
―캐나다 시인인 앤 카슨(72)의 ‘물어보는 사람은 역사가’라는 문장을 서문에 인용했더군요.
“저는 이번 시집을 ‘과거에 대한 심문’이자 ‘우리의 미래를 위한 증언’이라고 여겨요. 아직 태어나지 않은 다음 세대는 우리에게 묻고 싶은 질문이 많을 거예요. 왜 자신들이 이런 지구와 사회를 물려받게 되었는지 묻고 싶어 할 게 분명합니다. 그래서인지 책을 쓰는 동안 증인석에 서서 제가 본 것들을 증언하는 기분을 느꼈어요. 일어난 일들을 기록하는 목소리가 반드시 있기 때문에 우리 모두 (역사에) 책임을 져야 할 겁니다.”
―시 ‘그동안 우리가 한 것’에서 화상회의 시스템인 ‘줌(Zoom)’ 안에서 좀비처럼 변해가는 모습을 ‘줌비(Zoombie)’라고 표현한 게 인상적이었어요.
“제게 (시라는 형식의) 말놀이는 더 깊은 생각을 촉진하기 위한 도구예요. 단어 간 발음의 유사성은 시가 말로 낭송됐을 때 특히 강력한 힘을 발휘하죠. 그리고 ‘시가 어떤 식으로 쓰인다’ 식으로 독자들이 가진 기존 인식을 파괴하고 싶었어요. 뭣보다 팬데믹을 겪은 독자들이 시집을 읽고 자신의 경험을 새로이 볼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눈이 번쩍 뜨이는 경험을 했으면 좋겠다고 할까요.”
“네, 맞아요. ‘나는 흑인 작가들의 딸이며, 사슬을 끊고 세상을 변화시킨 자유의 투사들의 후손이다. 그들이 나를 부른다.’ (흑인 여성) 조상들을 기억하기 위해 꼭 이 문장을 외우곤 해요. 저를 이 자리, 이 순간에 있게 해준, 저보다 앞서 갔던 이들을 기리는 거죠.”
―미 대통령 취임식 축사를 한 가장 어린 작가로 화제를 모았습니다.
“취임식 시 낭송이 제 삶에 이렇게 큰 영향을 끼칠 줄 몰랐어요. 취임식을 본 사람 중 몇 명이라도 시를 기억하면 좋겠다고 생각하긴 했지만요. 하룻밤 사이에 받은 세계적인 관심은 제게 충격적이었어요. 적응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렸지만 전혀 후회하지는 않아요. 최근엔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 표지에도 사진이 실리고, 모델 에이전시 ‘IMG모델’과 계약도 체결했죠. 미국프로미식축구리그(NFL) 슈퍼볼에서도 시를 낭송했어요. 중요한 건 이 모든 게 ‘처음’ 있는 일이지만 ‘마지막’은 되지 않을 거라는 사실입니다.”
―여러 차례 2036년쯤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밝혀 왔어요.
“대선 출마는 중학생 때부터 열망해 왔던 일이었어요. 앞으로 14년 동안 무슨 일이 생길지 누가 알겠어요. 중요한 건 대통령 취임식에 시인으로서가 아니라 대통령으로 참석할 수 있다는 꿈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입니다.”
“물론이죠! 한국의 활기차고 창의적인 문화는 세계적으로 광범위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어요. 한국은 이전부터 문화 강대국이었지만, 그 사실을 이제 모두에게 인정받고 있어 기쁩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걸그룹은 ‘블랙핑크’란 얘기를 꼭 해야겠네요.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은 정말 수도 없이 돌려봤어요. 이번 시집도 한국의 영향을 받은 부분이 있어요. 일기 형식으로 쓴 시 ‘그 병사들(혹은 플러머)’은 재미교포 시인 최돈미의 작품들에서 영감을 얻었어요. 다른 작품에서도 슬픔과 그리움을 표현할 때에 한국인의 독특한 정서인 ‘한’이라는 개념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한국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여러분의 일상에 제 언어와 시를 기꺼이 받아줘 감사하단 말을 하고 싶어요. 이번 시집은 병 속에 담긴 메시지이자 팬데믹에 대한 공공의 기억을 보존하려는 시도입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를 되찾음으로써 우리가 누구인지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랐어요. 또한 이 시집은 누군가인 ‘당신께’ 드리는 선물입니다. 우리가 항해를 위해 배에 오를 때, 당신이 읽고 나누고 지니길 바랄게요.”
어맨다 고먼
지난해 1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쉬임식에서 축시를 낭옥한 시인 어맨다 고먼은 노란색 프라다 코트와 빨간 머리띠도 큰 인기를 끌며 ‘패션 스타’로도 떠올랐다. 동아일보DB
화합과 치유의 메시지를 담은 축시에 대해 당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지금 이 순간 이보다 더 적절할 수 없는 시를 낭송했다”고 극찬했다. 환경 및 인종 젠더 평등을 위한 사회운동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1998년 로스앤젤레스(LA)에서 태어나 중학교 교사인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그는 어린시절 청각 장애를 겪었지만 시를 쓰며 언어장애를 극복했다. 16세에 LA 청년계관시인으로 뽑혔으며, 하버드대에서 사회학을 전공했다. 2017년 미국에서 처음 제정된 전미청년계관시인으로 뽑혔다. 2021년 미 시사 주간지 타임의 ‘차세대 리더 100인’에 선정됐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