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2세 英 여왕 서거] 자원입대 등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 군주제 찬반 양측서 모두 존경받아 阿 가나 대통령에 “우리 춤춰요” 제안… 아일랜드 찾아 화해의 계기 마련도 다큐 ‘로열패밀리’로 왕실 일상 공개… 前총리들 “여왕엔 솔직할 수 있었다”
9일(현지 시간) 서거한 영국의 여왕 엘리자베스 2세에 대해 영국 지역신문 기자인 멜라니 맥도널드 씨는 동아일보 기자를 만나 “여왕은 영국이라는 한 국가가 지속될 수 있음을 보여준 존재였다”며 이렇게 말했다.
2007년 11월 6일 런던에서 열리는 의회 개회식에 참석하기 위해 버킹엄 궁전을 떠나고 있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 뉴시스
미국 뉴욕타임스는 “격변하는 세계 속에서 유일하게 변하지 않는 존재였다”고 했다.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는 “바위처럼 든든한 존재”라고 여왕을 기렸다. 정치가 분열을 부추기고 위기를 극복할 해답을 제시하는 지도자가 보이지 않는 한국에 여왕의 리더십이 주는 시사점이 적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 군에 자원입대 ‘노블레스 오블리주’
“믿음을 얻으려면 (자신을) 보여야 한다.”
왕실이 국민 위에 군림할 수 없다고 본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1969년 당시로서는 파격적이었던 다큐멘터리 ‘로열패밀리’를 통해 왕실의 일상을 소탈하게 보여주며 군주제에 비판적이던 영국 국민의 인식을 바꾸려 했다. 2012년 런던 여름올림픽에서 ‘본드걸’로 영상에 출연하거나 올해 재위 70주년 기념식 영상에서 영국의 ‘국민 캐릭터’인 곰 인형 패딩턴 베어와 함께 출연해 화제가 됐다.
그러면서도 정치 현안에 대해서는 공개적인 발언을 삼가며 ‘정치 불개입’ 전통을 고수했다. 특히 즉위 직후부터 시대 변화에 맞게 고압적인 태도 대신 탈권위적이고 개방적인 발언과 행보를 보이며 주목받았다.
9일(현지시간) 엘리자베스 여왕의 추모사진이 런던의 버스 정류장에 설치됐다. 런던=AP/뉴시스
1961년 가나를 방문해 ‘아프리카 독립운동의 아버지’로 불리던 콰메 은크루마 초대 대통령과 춤을 추던 모습이 가장 대표적이다. 테러 우려에도 가나를 방문한 여왕은 카메라 앞에서 은크루마 대통령에게 춤을 먼저 제안했다. 군주인 백인 여성과 탈식민지 운동을 주도한 흑인 남성이 손을 잡고 춤을 추는 장면은 전 세계에 신선한 충격을 줬다.
○ 英 총리들도 속내 보이며 절대 신뢰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런던=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