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한번의 결혼식, 두번의 ‘프러포즈’…MZ세대 ‘新 결혼풍속도’

입력 | 2022-09-13 07:10:00

ⓒ News1


김성식 김규빈 권진영 기자 = “결혼 전 마지막으로 둘만의 재미있는 추억을 만드는 거죠”

지난 6월 서울의 한 호텔에서 두 번째 프러포즈를 받은 예비 신부 박모씨(30·여)는 ‘이미 결혼할 사이 아니냐’는 질문에 이같이 대답했다. 박씨는 “‘2차 프러포즈’ 혹은 ‘형식 프러포즈’라고 많이들 부른다”며 “결혼을 준비하다 보면 양가 상견례에 청첩장 모임까지 사람 만나느라 정신없이 바쁜데 모처럼 둘만의 시간을 만들고 추억을 남길 수 있어 좋았다”고 소감을 전했다.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한 세대) 사이에서는 결혼을 약속한 사람에게 또 다시 청혼을 하는 ‘2차 프러포즈’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방식은 다양하지만 특급호텔에 투숙하며, 결혼반지를 교환하고 이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인증샷’으로 올리는 방식이 대세다.

대신 혼인 의사를 묻는 1차 프러포즈는 간소해졌다.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깜짝 이벤트(행사)처럼 진행되던 프러포즈는 이제 영화나 드라마 속 장면이 된 셈이다.

◇‘재미’는 물론 ‘실용성’까지 염두…‘평등’ 인식, 신부가 답례 프러포즈 준비하기도

지난해 10월 스몰웨딩을 올린 강모씨(30·여)도 양가 상견례를 다 마친 후 남편에게 다시 프러포즈를 받았다고 했다. 강씨는 꽃과 풍선으로 꾸며진 호텔 방에서 명품백과 함께 반지를 선물받았다고 말했다.

강씨는 “남편과 결혼식 스드메(스튜디오·드레스·메이크업)를 알아보러 다니던 중 또다시 프러포즈를 받아서 깜짝 놀랐다”며 “결혼 날짜를 다 잡고 난 후에 프러포즈를 또 받는 게 사실 이상했다. 하지만 예전에 비해 다들 결혼을 늦게 하다 보니 이벤트 하나하나 많이 챙기게 되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2차 프러포즈 후기는 관련 커뮤니티와 SNS 게시물 등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공유되고 있다. 이들은 프러포즈를 다시 하는 이유로 재미있는 추억 쌓기 외에도 △결혼 반지 등을 취향에 맞게 선택 가능한 점 △1차 프러포즈에 대한 답례 성격 △코로나19로 밀린 결혼식 일정 등을 꼽았다. ‘재미’뿐만 아니라 ‘실용성’과 ‘평등’을 중시하는 MZ세대의 성격이 결혼문화에서도 묻어난다는 분석이다.

결혼을 앞둔 A씨는 “처음에는 결혼 준비 다 하고 프러포즈하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면서도 “프러포즈를 갑자기 받았는데 반지가 안 맞아 아쉬웠다”고 토로했다. 이어 “차라리 예식 준비 후에 하는 프러포즈는 서로에게 딱 맞고 완벽한 반지를 골라줄 수 있어 좋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얼마 전 예비 신랑에게 답례 프러포즈를 한 B씨(29·여)는 “최근 예식장 예약이 워낙 어렵다 보니 결혼 시기부터 먼저 조율한 뒤 차근차근 상대가 좋아하는 선물을 준비해 다시 한 번 프러포즈 이벤트를 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이어 A씨는 “예비 신랑이 먼저 프러포즈를 했는데 ‘나도 예비 신랑한테 뭔가 해주면 어떨까’란 생각이 들었다”고 답례 이유를 설명했다.

◇ 2차 프러포즈 ‘과하다’…당사자들 “준비하기 나름”

ⓒ News1 DB

하루 밤 적게는 수십만원 많게는 수천만원이 들어가는 ‘2차 프러포즈식’을 두고 지나치다는 비판도 나온다. 결혼부담을 가중시킨다는 이유에서다. 결혼정보회사 듀오가 최근 2년 이내 결혼한 신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혼 비용 보고서’에 따르면 신혼 부부 총 결혼비용은 약 2억8739만원에 달한다.

한 호텔 관계자는 “생화로 꾸민 버진로드와 샴페인, 개인 버틀러를 제공하는 프러포즈 패키지 상품은 주말 투숙 기준으로 230만원 안팎”이라며 “하루에 딱 세 팀만 받을 수 있는데다 최근 ‘호캉스’ 열풍으로 투숙 수요가 급증해 한강 전망 주말 패키지는 다음달 셋째 주 예약까지 벌써 마감됐다”고 귀띔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2차 프러포즈에 대한 의견이 엇갈렸다. 한 네티즌은 “에루샤(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 가방과 특급호텔 숙박비만 합쳐도 1000만원은 훌쩍 넘는다”며 “사랑만으로 결혼한다는 말은 옛말 같아서 씁쓸하다”고 적었다.

그러나 2차 프러포즈를 체험한 당사자들은 일각의 ‘사치’ 논란에 대해 “준비하기 나름”이라고 입을 모았다. 박씨는 “호텔 투숙은 예정됐던 여행이었고 당일 주고받은 선물도 사실은 예물로 이미 맞췄던 거”라며 “예비신랑과 같이 양재동 꽃시장에서 10만원을 주고 생화를 산 것 빼고는 추가로 이벤트에 돈을 쓰진 않았다”고 말했다.

C씨는 “집값이 많이 올라 예단과 예물을 생략하는 대신 서로를 위한 소소한 이벤트를 챙겼다”며 고가 논란엔 선을 그었다. 이어 “인생에 한 번 있는 일인데 영상편지 등으로 서로에 대한 마음을 다시 한 번 표현해 행복했다”고 소감을 전했다.

◇전문가들 “가족 간 대결합→당사자 간 이벤트…바뀐 결혼 인식도 한몫”

전문가들은 인식변화도 다소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동귀 연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옛날에는 ‘결혼’을 가족 간의 결합이라고 생각했다면, 요즘은 당사자 간의 중요한 ‘이벤트’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다”며 “가까운 친구들, 가족들만 참석하는 스몰웨딩 등이 대표적인 예시”라고 설명했다.

구정우 성균관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좀 더 비정형화되고 재미있는 둘만의 예식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결혼 건수는 계속 줄고 있지만, 이혼 건수는 지속되기 때문에 서로에 대한 약속을 다시 한 번 함으로써 관계를 지속하자는 쌍방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구 교수는 “비용도 적게 들이면서 답례라는 상호 평등 문화를 기초한다면 허례허식이라고 무조건 비판할 것도 없다”고 덧붙였다.

권익수 한국외대 영어학과 교수는 “청혼(propose)‘은 발화와 동시에 상태변화를 가져오는 대표적인 수행동사”라며 “2차 프러포즈가 필요 없다고 보는 사람들은 이러한 문화가 청혼의 엄숙성이라든지 진지함의 정도를 떨어뜨린다고 인식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권 교수는 이어 “사람마다 청혼에 대한 언어인지적 배경이 다른 것이니 어떤 게 바람직하냐를 논할 순 없다”고 덧붙였다.

(서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