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호 부총리. 뉴시스
정부가 예비타당성조사(예타) 면제 요건을 강화하고 재정준칙 적용 예외를 전시나 대규모 재난 등으로 한정해 재정누수를 막기로 했다. 고환율, 고물가, 저성장의 경제위기 상황에서 최후 보루인 재정 건전성을 확보하려는 조치로 풀이된다.
정부는 1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비상경제장관회의를 열고 예타 개편방안 및 재정준칙 도입방안을 발표했다. 추 부총리는 “최근 수년간 예타 면제 사업규모가 120조 원에 달하는 등 방만하게 운영돼 예산낭비를 사전에 방지하는 예타 제도 본래의 역할이 약화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예타 면제 요건을 사안 별로 구체화해 면제를 최소화하기로 했다. 문화재 복원사업의 경우 도로정비 등 복원 이외 사업이 전체 사업비의 절반을 넘으면 예타 면제 대상에서 제외한다. 지역균형발전 사업은 사업규모 등 세부적인 산출 근거와 더불어 재원조달·운영계획, 정책효과 등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예타를 면제받을 수 있다.
이밖에 재난복구 지원, 시설 안전성 확보 사업은 안전점검과 정밀안전진단을 통해 안전문제가 있다고 확인된 시설물에 한해 예타가 면제된다. 식품안전 문제로 시급한 추진이 필요한 사업도 식품안전기본법상 긴급대응 방안에 포함된 사업만 면제 대상이 된다.
대규모 복지사업의 경우 원칙적으로 시범사업을 실시해야 예타를 신청할 수 있다. 사업이 완료되면 예산투입이 중단되는 사회간접자본(SOC) 사업과 달리 복지사업은 한번 시작되면 장기간 지속되는 특성이 있어서다. 기재부 당국자는 “재난지원금 사업처럼 특정 집단에 한정해 시범사업을 하기는 힘들다. 긴급성이 큰 사업은 검토를 통해 시범운영을 거치지 않을 수 있다”고 밝혔다.
최상대 기획재정부 제2차관이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재정준칙 도입방안 및 예비 타당성조사 제도 개편방안 브리핑을 하고 있다. / 뉴시스
정부는 예타 면제 요건을 엄격하게 규정하는 한편 신속성이나 유연성을 높이는 방안도 제시했다. 신속 예타 절차를 도입해 시급한 사업은 지침에 정해진 대상선정 및 조사기간을 4개월 줄인다. 일반 예타 기간도 총 1년 6개월(철도사업의 경우 2년)을 넘지 못하도록 했다. 1999년 예타 제도 도입 후 23년간 유지된 ‘총사업비 500억 원, 국비 300억 원’의 예타 대상 기준은 SOC와 연구개발(R&D) 사업에 한해 ‘총사업비 1000억 원, 국비 500억 원’으로 상향 조정된다. 그동안 커진 경제규모를 반영해 예타 대상을 조정한 것. 단, 이로 인해 예타 대상에서 빠지는 총사업비 500억~1000억 원 규모의 사업은 소관부처가 사전 타당성조사를 실시해야한다.
재정준칙 기준은 문재인 정부가 사용한 통합재정수지(총수입―총지출)보다 엄격한 관리재정수지를 쓴다. 관리재정수지는 통합재정수지에서 국민연금 등 사회보장성 기금을 제외해 적자폭이 더 크다. 정부는 관리재정수지 적자 한도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3%로 정하되, 국가채무비율이 60%를 초과할 경우 그 한도를 2%로 축소 강화하기로 했다.
재정준칙 적용 예외 조건인 전쟁, 대규모 재난 등은 국가재정법상 추가경정예산안 편성 요건과 같다. 추경안 편성처럼 위기상황에서만 재정준칙의 예외를 허용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세종=서영빈기자 suhcrate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