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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실 ‘군기 잡기’ [횡설수설/장택동]

입력 | 2022-09-14 03:00:00


“모든 보고는 내게 먼저 하라.” 2017년 7월 취임한 존 켈리 백악관 비서실장은 전 직원을 소집해 강경한 어조로 말했다. 4성 장군 출신의 켈리는 파벌 간의 암투와 보고체계 붕괴로 혼란스럽던 도널드 트럼프 초기 대통령실의 기강을 잡기 위해 투입된 소방수였다. 그는 실세로 평가받던 백악관 공보국장을 내쳤고, 대통령의 딸과 사위까지 먼저 자신에게 보고하도록 했다. 그가 근무했던 1년 반이 트럼프 시절의 백악관에 그나마 질서가 유지됐던 때였다.

▷한국에서도 대통령실의 기강이 해이해지면 대통령이나 비서실장이 나서곤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3년 비서관들의 ‘새만금 헬기 유람’으로 비난 여론이 커지자 직원 조회를 주재하면서 “(대선 공로에 대한) 보상의 유효기간은 어떤 경우는 6개월, 어떤 경우는 1년”이라고 경고했다. 이명박 정부 정정길 전 비서실장은 대통령실 직원의 성폭행 혐의 등으로 어수선했던 2009년 직원회의를 소집해 “작은 실수 하나도 국민에게 실망을 줄 수 있다”며 기강 잡기에 나섰다.

▷김대기 비서실장이 13일 첫 직원 조회를 연 것도 흐트러진 대통령실의 분위기를 다잡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앞서 대통령실은 지난달 말부터 이달 초까지 진행된 대규모 감찰 및 업무평가를 통해 행정관 및 행정요원급 직원 50여 명을 교체했다. 이렇게 단기간에 대통령실 실무진을 대거 교체한 것은 전례를 찾기 어렵다. 그만큼 내부 상황이 심각한 수준이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김 실장이 “어디서 날아올지 모르는 짱돌”이라는 직설적인 표현을 쓴 것도 이런 배경에서 나왔을 것이다.

▷문제는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한 반성은 없었다는 점이다. 윤석열 대통령 임기 초반부터 대통령실의 기강이 흐트러졌다는 것은 대통령실 첫 인사에 문제가 있었다는 점을 방증한다. 감찰 과정에서 “대통령실이 윤핵관의 비서들로 가득 찼다”는 말이 나올 만큼 여권 핵심 인사들의 사람 심기가 만연해 있었다고 한다. 윤 대통령 지인의 아들, 김건희 여사의 코바나컨텐츠 전 직원 등이 대통령실에 근무해 ‘사적 채용’ 논란도 있었다. 인사 라인에서 충분한 검증을 거쳐 채용한 것인지 의문이 여전하다.

▷현 정부 들어 대통령실에서 민정수석이 폐지되면서 공직기강비서관은 비서실장 직속으로 바뀌었고, 인사검증은 법무부로 넘어갔다. 오랫동안 유지돼온 시스템이 바뀐 만큼 관련 업무에 공백이 생길 여지가 있다. 또 수석비서관 이상에 대한 감찰을 강화하려면 특별감찰관 임명이 필요한데, 대통령실과 국회 간에 원활한 협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런 문제점들에 대한 보완과 개선이 병행돼야 기강을 바로 세울 수 있다. 비서실장 혼자서 군기 잡기에 나서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