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김남복 기자 knb@donga.com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
우리는 늘 다양한 방식으로 소리를 내며 살아갑니다. 음성, 행동, e메일, 사회관계망으로. 겉보기에 가장 강한 형태는 고함지르기일 겁니다. 고함지르기의 사촌 격으로는 호통치기가 있습니다.
누구나 이유 없이 고함을 지르거나 호통을 치지는 않습니다. 모든 행위에는 무의식에서 비롯되었거나 뚜렷하게 의식하는 목표가 있습니다. 개인의 행위가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일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지난날에는 누가 고함을 지르거나 호통을 친다고 해도 파급 효과는 미미했습니다. 이제는 완전히 다릅니다. 손가락을 몇 번 움직이면 해당 동영상을 무제한 반복해서 보고 들을 수 있습니다. 호통치는 장면에 노출되면 마음이 복잡하고 몸은 혈압이 올라가고 맥박이 빨라집니다.
호통치는 사람에게는 당연히 이유가 있을 겁니다. 조직에 대한 충성, 동료들에게 인정받으려는 전략이거나 피를 끓게 하는 뜨거운 동지애의 발현일 수도 있습니다. 자신이 겪고 있는 인생의 불운이 상대나 상대가 속한 집단에서 비롯됐다는 믿음이 있다면 호통치는 정도가 더욱 강해질 겁니다. 호통이 먹히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험한 말을 하는 일도 가리지 않습니다. 누가 부여했는지 모르겠으나 자신에게 아무 말이나 가리지 않고 마구 할 권한이 있다고 믿는 듯 보입니다. 감정에 치우쳐서 유치한 말로 호통을 치다가 결국 바닥이 드러납니다.
호통치기는 공격성의 표현입니다. 목소리가 커질수록 공격의 정도도 늘어납니다. 호통치기에 담긴 부정적 감정은 공격 대상은 물론이고 듣고 보는 사람들의 마음에도 오래 남습니다. 습관이 되면 장소와 상대를 묻지 않는, 강박적인 호통 행위로 나타납니다.
우리가 참으로 듣고 싶은 것은 가슴을 벌렁거리게 하는 큰소리가 아닌, 이성적 언어로 표현되는 설득력 있는 말입니다. 차분한 말은 차분한 풍경을, 거칠고 큰 소리는 황량한 풍경을 만들어 냅니다. 서로 다른 말이어도 조용하게 나누면 상대가 듣습니다. 큰소리에는 귀를 막고 마음을 닫습니다.
호통 소리가 높아질수록 과격하게 흥분한 그 사람의 이미지만 기억되고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잊힙니다. 스스로 통제가 안 되는, 감정을 조절 못 하는, 소통이 미숙한 사람으로 인상이 정해집니다. 호통치기로 승리감에 도취하기 전에 자신이 불특정 다수에게 읽히고 있다는 냉엄한 현실을 떠올려야 합니다.
열화같이 역정을 내다가도 더 늦기 전에 멈출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이 느낀 분노의 뿌리를 찾아 사태를 파악하고 진정하고 멈춰야 합니다. 튀어나와 설치고 있는 ‘상어’를 달래서 마음 깊이 돌려보내야 합니다. 아군과 적군을 확실하게 구별하면서 상대를 곤경에 처하게 할 필요가 있어도 호통에만 치우쳐서 흥분하고 판을 깨면 후회할 일들이 생깁니다.
도대체 왜 호통을 칠까요? 첫째, 평소에 고집하는 소통 방식일 겁니다. 그렇게 해야 상대가 자신의 말을 제대로 듣는다고 착각하지만 천만의 말씀입니다. 호통은 소통을 막을 뿐입니다. 호통치는 습관에서 스스로 벗어나지 못하면 자신의 건강도 해칩니다. 심하면 호통치다가 쓰러질 가능성도 없지 않습니다. 둘째, 자신이 유리한 입장을 차지해서 상대보다 우월함을 과시하려는 방책입니다. 그러나 열등감은 그런 식으로 보상받을 수 없습니다. 셋째, 상대에게 무례하게 굴어서 마음에 상처를 주고 모멸감을 느끼게 하려는 전략입니다. 그러나 의도가 읽히면 전략은 실패하고 자신의 이미지만 손상됩니다.
결론적으로, 호통치기는 의도한 바와 달리 자신이 지닌 좌절감과 열등감을 스스로 고백하는, 모순적인 행위입니다. 고치면 얻는 것이 많지만 한번 맛을 들이면 촉발 원인을 알려고 하지 않고 쉽게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숨을 돌린 상대는 반박하고 공격할 궁리를 열심히 할 겁니다.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