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인상의 그늘] 작년 법정 최고금리 20%로 낮춘뒤 최대 11만명 제도권 밖으로 밀려나 “불법업체여도 돈 빌릴 데는 여기뿐” 급전 필요한 취약계층 사채에 기대 금감원 “법정금리 초과 이자는 무효”
경기 부천시에 사는 50대 주부 A 씨는 2월 온라인 대출중개 사이트에서 알게 된 대출업자에게서 30만 원을 빌렸다. 일주일 뒤 50만 원을 갚는 조건이었지만 당장 생활비가 바닥난 A 씨가 손 벌릴 곳은 이 사이트밖에 없었다. 대출업자는 A 씨의 가족관계증명서와 친척, 지인 6명의 연락처를 받아갔다.
한 달 뒤 50만 원을 갚았지만 대출업자는 약속 기한인 일주일을 넘겼다는 이유로 연체료 50만 원을 요구했다. A 씨가 거절하자 가족과 지인들을 해코지하겠다며 협박 문자와 전화를 이어갔다. A 씨는 “30만 원에 삶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금융당국에 신고해 추심 협박에서 겨우 벗어났다”고 했다. 그가 낸 대출 이자를 연 환산하면 3470%나 된다.
고물가, 고금리가 계속되는 가운데 돈줄이 막힌 서민들이 불법 사채 시장으로 내몰리고 있다. 특히 지난해 법정 최고금리가 20%로 낮아진 뒤 취약계층 최대 11만 명이 제도권 대출 시장 밖으로 밀려난 것으로 추산된다. 지난달 윤석열 대통령이 불법 사금융 척결을 지시하면서 금융당국도 특별 점검에 나섰다.
○ “30만 원, 1주일 뒤 50만 원으로 갚아라”
최근엔 악성 소액 단기 대출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30만 원, 50만 원을 빌려주고 일주일 뒤 각각 50만 원, 80만 원을 갚게 하는 ‘30-50’ ‘50-80’ 대출이 대표적이다. 일주일 내 갚지 못하면 A 씨처럼 초고금리 연체 이자까지 붙는다.
구정한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팬데믹 장기화와 물가 급등, 금리 인상이 맞물리면서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서민이 크게 늘었다”며 “이 중 제도권 금융에서도 돈을 빌릴 수 없는 취약계층을 사채업자들이 소액 단기 대출로 노리고 있다”고 했다.
13일에도 주요 대부 사이트에는 ‘오늘 중 10만 원 급합니다’ ‘급하게 100만 원만 빌려주실 분’ 등 소액 급전을 문의하는 글이 수백 건 올라왔다.
○ 취약계층 11만 명, 제도권 밖으로
특히 지난해 7월 법정 최고금리가 연 24%에서 20%로 내려간 뒤 취약계층은 제도권 대출의 마지막 보루인 대부업에서도 밀려나고 있다. 대부업체마저 고신용, 담보 위주의 대출에 나섰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현재 대부업 이용자는 112만 명으로 최고금리가 낮아진 뒤 11만 명 줄었다. 금감원은 이 중 상당수가 불법 사금융 시장으로 내몰렸을 것으로 보고 있다. 급전이 필요한 취약계층이 불법 대출인 것을 알면서도 사채 시장에 기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사회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서민금융연구원이 신용등급 6∼10등급 대출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57.6%가 불법업체인 것을 알고도 대출받았다고 했다. 인천에서 소규모 사업체를 운영하는 50대 김모 씨도 올 초 가족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사채업자에게 300만 원을 빌렸다. 그는 “불법업체여도 돈 빌릴 데는 여기밖에 없었다”고 했다.
김자현 기자 zion3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