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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생망? 게임처럼 다시 시작”… MZ세대 마음 대변 웹소설-웹툰 인기

입력 | 2022-09-14 03:00:00

‘회귀물’이 인기작 절반 차지
‘환생’ ‘빙의’ 등 하위 장르 낳아… 여성 독자들엔 ‘로맨스 회귀물’ 인기
드라마-영화 등 다른 영역 확산… 전문가 “MZ세대 좌절과 욕망 투영”




“(과거로) 돌아와서 좋구나. 다시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몸이 근질근질하다.”

네이버 웹소설 플랫폼 시리즈의 ‘광마회귀’는 요즘 국내 웹툰이나 웹소설에서 보통명사로 취급받는 ‘회귀물’ 중 하나다. 제목에도 회귀(回歸·제자리로 돌아간다)가 들어간 이 작품은 무림 고수 이자하가 싸움 끝에 목숨을 잃지만 ‘기연(奇緣·기이한 인연)’을 얻어 젊은 시절로 돌아간다는 줄거리. 모든 기억과 경험을 지닌 채 과거에서 다시 시작하니, 미래를 내다볼 수 있고 실력도 쉽게 쌓는다. 말도 안 되는 얘기로 치부할 수 있겠지만, 2020년부터 연재한 소설은 누적 조회 수가 5000만 회를 넘긴 초대형 히트작이다.

시장 규모가 3조 원에 육박하는 국내 웹툰·웹소설계를 최근 1, 2년 새 회귀물이 휩쓸고 있다. ‘광마회귀’뿐만이 아니다. 시리즈의 종합 10위 안에서 6개,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웹소설 플랫폼인 카카오페이지도 톱10에서 5개가 회귀물이다.

웹툰 역시 엇비슷한 상황. ‘화산귀환’ ‘내가 키운 S급들’ ‘천마육성’ ‘나 혼자 만렙 뉴비’ 등 과거로 돌아갔거나 미래를 알고 있다는 설정의 회귀물이 인기 순위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한 웹툰 제작사 관계자는 “정확한 수치는 없지만, 대략 웹소설의 70% 안팎이 회귀물이라 보면 된다”며 “인기 회귀물 웹툰도 대부분 웹소설이 원작인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이렇다 보니 최근 독자들은 회귀물도 세분화해서 부를 정도다. ‘광마회귀’처럼 자신의 과거로 돌아가는 게 ‘본격 회귀물’이라면, 아예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나는 ‘환생 회귀물’이나 다른 사람의 몸에 영혼이 들어가는 ‘빙의 회귀물’ 등 다양한 하위 장르를 낳고 있다. 종전에는 무협소설이나 게임소설이 다수였지만, 최근엔 ‘언니, 이번 생은 내가 왕비야’처럼 여성 독자들이 좋아하는 ‘로맨스 회귀물’도 인기다.

10∼30대가 주로 즐기는 웹툰·웹소설에서 회귀물이 쏟아지는 이유는 자명하다.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이라는 유행어처럼, 현실에 좌절하다 보니 옛날로 돌아가 새로 시작하고 싶다는 바람이 담겼다. 이융희 세종사이버대 만화웹툰창작과 겸임교수는 “모바일 환경에 최적화된 웹소설과 웹툰은 독자의 정서가 적극적이고 빠르게 반영된다”며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가면 현재의 정보를 이용해 성공할 수 있다는 MZ세대의 욕망이 투영돼 있다”고 분석했다.

주로 게임하듯 아이템을 모으고 능력치를 올리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것도 청년에게 익숙한 코드이기 때문이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게임이 생활화된 젊은 세대는 혹시 죽거나 망하더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고, ‘치트키’ 등을 이용해 손쉽게 ‘레벨 업’하는 설정을 선호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회귀물이 웹툰·웹소설에서 인기를 끌면서 다른 영역으로도 확대되는 추세다. 올 4, 5월 방영했던 SBS드라마 ‘어게인 마이 라이프’도 2번째 인생을 사는 검사를 다룬 동명의 웹소설이 원작. 영화 ‘신과 함께’ 1·2를 만든 제작사 리얼라이즈픽쳐스가 현재 영화화 중인 작품은 누적 조회 수 1억8000만 회를 넘긴 웹소설 ‘전지적 독자 시점’이다. 이 역시 자신이 읽은 소설에 나온 이야기가 실제로 벌어지며 새로운 삶을 산다는 변형 회귀물 가운데 하나다. 원동연 리얼라이즈픽쳐스 대표는 “현실에선 ‘루저’인 청년이 인생을 다시 시작해 세상을 구한다는 설정이 젊은 세대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누군가는 현실 도피라고 비난할 수도 있지만, 독자의 심리가 반영된 회귀물 유행은 당분간 대중문화 전반으로 널리 퍼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