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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에게 주식투자 묻자 ‘로또’ 답변… “학교서 금융교육 강화해야”

입력 | 2022-09-15 03:00:00

통장 비밀번호-저축목표 설정 등 어릴때 금융 기본상식 가르쳐야
게임머니 결제 등 금융사고 예방… 청소년 주식 투자 느는 추세에도
학교에서 관련 교육 접하기 어려워
재무제표 등 부모와 공부하면 도움



13일 서울 송파구 남천초등학교에서 진행된 금융수업에서 청소년금융교육협의회 박소연 강사가 지폐의 위조 방지 장치를 설명하고 있다. 이 수업은 학생들에게 돈의 흐름, 다양한 금융기관의 역할, 저축과 투자의 개념 등을 알려주는 프로그램이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주식 투자가 뭔지 아나요.”

13일 서울 송파구 남천초등학교 4학년 3반 교실. 청소년금융교육협의회(청교협) 박소연 강사가 학생들에게 물었다. 22명 중 9명이 손을 번쩍 들었다.

아이들마다 가지각색의 대답이 나왔다. 한 학생은 “아빠가 로또를 사면 계속 ‘꽝’이 나온다. 그게 주식 투자 같다”고 말했다. 다른 학생은 “여윳돈을 더 크게 만들 수 있는데, 꼭 도박 같다”고 답했다. 주식 투자에 대한 개념을 어렴풋하게는 알지만 부정확하거나 부정적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았다. 박 강사가 “저축은 돈을 안전하게 모으는 것이라면, 주식 투자는 우리가 손해를 볼 수도 있지만 더 큰 돈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회사를 믿고 돈을 맡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학생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 초등학생은 합리적인 ‘저축 계획’부터
이 수업은 금융산업공익재단과 청교협이 진행하는 ‘슬기로운 경제·금융생활’ 프로그램이다. 초중고교생의 ‘금융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정부와 민간 금융 기업들이 공동으로 마련한 과정이다. 초등학생에겐 용돈 관리 방법, 보험과 투자의 의미 등 금융의 기본 개념을 가르친다. 중고교생에게는 신용 관리의 중요성, 투자 종류, 금융 사기 예방법 등을 알려준다.

이날 수업에서 ‘통장 비밀번호는 기억하기 쉽게 생일로 저장한다’는 ○× 퀴즈에 3분의 1가량은 “그렇다”고 답했다. ‘저축 목표는 클수록 좋다’는 문항에는 절반이 양손을 들어 동그라미를 그렸다. 어른들에겐 당연한 금융 상식이지만 아이들은 낯설어했다. 박 강사는 “물론 돈을 많이 모으면 좋겠지만 목표가 너무 높으면 쉽게 포기할 수 있다”며 “달성할 수 있는 수준에서 목표 금액을 정하는 것이 좋다”고 설명했다.

학생들은 ‘대출’ ‘신용’ 등 생소한 개념이 쏟아져도 집중력을 유지했다. 40분짜리 2교시 수업이 끝난 뒤 고범찬 군(10)은 “앞으로 돈을 어떻게 모아야 할지 자신감이 생겼다”며 “열심히 저축해서 꼭 집을 사고 싶다”고 말했다.

학교에선 오래전부터 금융 교육의 필요성을 실감하고 있다. 이 학급 담임인 윤정민 교사는 “요즘 아이들은 예전보다 용돈이 많아졌고 인터넷 결제 등 다양한 경제활동을 경험하고 있다”며 “무분별한 게임머니 결제 등 금융 사고를 예방하려면 일찍부터 돈에 대한 개념을 잡아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투자에 관심 커진 중고교생
최근엔 특히 주식에 관심을 갖는 중고교생이 크게 늘었다. 부모가 증여 목적으로 주식 계좌를 만들어주거나, 학생 스스로 돈을 불리기 위해 투자하는 경우다. 서울 강남의 한 고교 교사는 “지난해 주식 열풍이 불었을 땐 학생의 3분의 1가량이 주식을 보유하거나 직접 투자를 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학생들을 직접 만나본 금융 강사들은 “주식 투자를 제대로 이해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우려했다. 투자를 어떻게 하는지 물으면 ‘떡상’(시세 급등), ‘존버’(흔들리지 않고 버틴다), ‘올인(다걸기)’만 외치는 학생이 많았다. 종목을 분석하고 자금을 분산하는 등 세밀한 투자 계획을 세우기보단 일확천금을 얻기 위한 ‘한 방’으로 주식 투자를 이해한다는 것이다. 청교협 김애영 강사는 “부모가 주식 투자에 실패했거나 부정적인 주식 관련 기사를 접한 학생들은 ‘주식은 위험하고 나쁜 것’이라는 선입견을 갖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돈’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은 높아지고 있지만 학교에서 금융 상식을 배울 기회는 턱없이 부족하다. 고교 사회과 공통 과정 9개 대단원 중 금융 지식을 배우는 대단원은 ‘시장경제와 금융’뿐이다. 그 안에 4개 중단원 중 3개는 일반경제 내용이다. 1개 중단원만이 ‘자산관리와 금융생활 설계’다. 그나마 2025년부터 적용되는 ‘2022 개정 교육과정’에 ‘금융과 경제생활’이 신설될 예정이지만 선택 과목으로 개설돼 얼마나 많은 학생이 수업을 들을지는 불확실하다.
○ 투자 공부도 부모와 함께

전문가들은 공교육에서 실생활과 밀착된 금융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성인이 된 후에도 예금과 적금의 차이, 학자금 대출 ‘거치 기간’의 뜻 등을 모르는 대학생도 많다. 돈을 더 잘 모을 수 있는 저축 방법, 돈을 빌리는 것이 향후 얼마나 큰 상환 부담으로 돌아오는지 등을 학교에서 배울 필요가 있다.

학교뿐 아니라 가정 내 금융 교육도 중요하다. 전문가들은 경제관념이 잘 잡힌 학생이라면 본인 명의의 체크카드를 만들어주고 스스로 돈을 쓰고 모으는 방법을 연습하도록 지원하라고 권한다. 투자에 관심이 많다면 자녀가 정한 종목의 재무제표를 함께 들여다보고 투자를 결정하는 것도 좋은 연습이다. 청교협 정민주 강사는 “투자의 위험성과 손실 책임도 본인에게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구본경 금융감독원 금융교육국장은 “경제가 발전하면 성인들도 새로운 금융 지식이 필요하다”며 “부모를 위한 금융 교재를 공부한 뒤 아이들과 함께 저축과 투자 방법을 같이 상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박성민 기자 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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